병신년(丙申年)도 채 열흘이 남지 않으니 슬슬 올해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IT 분야도 예외는 없는 법이다. 누군가는 올해의 제품을 뽑고, 누군가는 올해의 사건을 다룬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해설을 곁들인다. 그만큼 한 해를 정리하고픈 마음은 모두 다르지 않고, 테크G의 테크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지난 며칠 동안 올해의 IT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 공통점이 있는 5가지를 골랐다. 당연히 우리가 이슈를 선정한 의미와 해석도 곁들였다. 5위에서 1위… 논란이 있든 없는 우리의 선택은 이렇다.
NO.5 시작, 가상 현실
2016년 초에 개막한 CES2016에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가 곧 출시를 앞둔 상용 제품을 처음 전시했다. 곧장 이들 부스를 찾아갔다. 단 10분의 가상 현실 콘텐츠를 체험하기 위해 한참의 기다림을 마다 않고 줄 서 있던 참관객들. 그들의 평가는 곧 뉴스의 소재로 쓰여졌고, 1년 내내 가상 현실 뉴스는 쏟아졌다.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제품이 나오면서 꾸준했던 이슈. 사실 아주 뜨겁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식지도 않는, 적당한 온기를 품은 채 1년을 데운 가상 현실을 5위에 올렸다.
올해는 분명 대중화를 이끌 수 있는 가상 현실 하드웨어와 플랫폼의 전성시대다. 올초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 중심의 PC VR을 시작으로 하반기 콘솔 기반의 플레이스테이션 VR이 출시됐다. 구글은 모바일 장치에서 고급화된 VR을 경험할 수 있는 데이드림 플랫폼과 데이드림 뷰를 내놨고, 그 밖에도 백팩 PC나 무선 VR HMD 등 크고 작은 VR 관련 상품들이 쏟아졌다. 다채로운 가상 현실 하드웨어의 등장과 빠른 보급은 높았던 장벽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인정할 수 있는 부문. 하지만 창의적 콘텐츠의 부족과 제한된 활용 영역은 지금부터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 아닐까?
NO.4 뜨거웠다! 포켓몬 고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로, 들로 뛰쳐 나간 이들은 10대도 있었고, 20대와 30대도 있었으며, 심지어 40대 나이의 게이머까지 섞여 있었다. 포켓몬 고가 출시된 이후 세계에서 일어난 놀라운 광경이다.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 보이에서, 또는 TV 애니메이션으로 보던 포켓몬을 직접 현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흥분했다. 포켓몬 마스터가 될 수 있는 희망 앞에 기술이 대수는 아니었다. 포켓몬 고의 시작은 구글의 만우절 장난이었지만, 실제 현실로 등장한 포켓몬 고는 더 이상 장난이 아니었다.
포켓몬 고는 구글에서 독립한 나이언틱 랩스가 인그레이스를 출시한 이후 포켓몬 컴퍼니와 손잡고 만든 증강 현실 게임이다. 사실 포켓몬 고는 완벽한 AR 게임은 아니다. 공간 자체를 인지하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증강 현실이라고 해도 많은 이들이 소유한 스마트폰으로 포켓몬을 잡는 본질을 구현한 덕분에 가파르게 인기가 상승했다. 하지만 포켓몬을 잡으려는 과도한 열풍으로 서비스 초기 수많은 사건 사고를 부르는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정식 서비스 국가는 아니나 속초 인근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게이머들이 몰리면서 O2O의 가능성 등 포켓몬 고의 열풍과 관련된 수많은 분석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한국형’ 병이 도진 것만 봐도 그 인기를 확실히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NO.3 이세돌 VS 알파고
“이세돌 9단이 다섯 판을 모두 이기지 않을까?”. 뒤에 앉아 있던 중국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지만, 참으로 허망한 바람이 되어 버렸다. 대결 내내 이어진 희망고문 속에서 그래도 한판이라도 이긴 게 어딘가 싶었다. 최종 전적 1승 4패. 인공 지능 알파고는 예상보다 강했다. 유럽 챔피언을 이겼던 당시의 분석이 무색한 대전. 그렇게 인간과 인공 지능의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가 기록됐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은 2016년 3월 서울에서 이세돌 9단과 딥마인드 챌린지를 개최했다. 인공 지능으로 가장 정복하기 어렵다던 바둑으로 인간과 겨루는 공식 이벤트였다. 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졌고 알파고에 대한 수많은 사전 분석이 잇따랐다. 우승 상금은 100만 달러. 하지만 상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결 그 자체가 관심을 모았고, 알파고는 인간계에서 보기 힘든 신의 한 수를 놓으며 3번기를 제외하고 모두 이겼다. 직관력이 뛰어난 인간을 넘어서기에 인공 지능의 수준이 높지 않을 거라고 대부분의 예상을 깨는 데 성공한 것이다. 구글은 알파고의 학습 능력을 좀더 기후 예측 같은 보편화된 분야로 확대할 채비를 하고 있다. 그 한편으로 인공 지능의 역습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NO.2 배터리의 매직 쇼, 갤럭시 노트7
어라? 이게 왜 2위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갤럭시 노트7은 1위에 올려도 전혀 손색 없는 최고의 IT 이슈 후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매체가 찬양적 말들을 쏟아냈지만, 그 수식어를 스스로 거둬들이는 데 채 두어달도 걸리지 않았던… 그러나 갤럭시 노트7은 분명 모든 면에서 최고라 말할 만하다. 성능, 기능, 만듦새도 최고였고, 쓸데 없이 배터리에 불 붙는 것까지 최고였다.
흥미로운 것은 수백만에 이르는 갤럭시 노트7 구매자들 가운데 제품의 발화보다 제조사인 삼성전자의 대응을 탓하는 이가 더 많은 점이다. 첫 발화를 인정하고 공식 리콜에 나선 삼성전자의 기민한 대처를 칭찬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리콜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하지만 발화와 리콜, 또 다시 발화에 따른 생산 중단, 환불 또는 교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아마추어 같은 대응으로 불만이 폭발하고 그 여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유통의 왜곡된 민낯도 드러냈다. 430만 대에 이르는 폐기물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오리 무중이다. 이제 와서 ‘배터리만 불나지 않았어도’라며 책망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 말 못하는 배터리는 또 무슨 죄가 있겠나? 배터리가 불날 수밖에 없도록 설계한 인간들의 잘못일 뿐.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배터리가 왜 발화했는지 모르고 있다.
NO.1 태블릿 by 최순실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배터리를 누르고 1위로 올릴 만한 더 큰 이슈가 있겠냐 싶었는데, 놀랍게도 우리는 이슈 선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연히 발견한 이 이슈를 1위를 올리는 데 동의했다. 태블릿 PC다. 물론 2016년 태블릿 시장을 뒤흔들 만큼 뛰어난 제품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도 알 것이다. 배터리마저 방전된 채 서랍 속에서 잠자던 2011년 태생의 태블릿에 전원을 공급하는 순간 그것은 그냥 태블릿이 아니라 역사를 흔든 판도라의 상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 혹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촉발한 스모킹 건이 된 태블릿은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만약이지만 이 태블릿에 잠금 장치가 되었더라면, 모든 데이터를 암호화 했더라면, 정상적인 초기화 절차를 진행한 뒤에 버려졌더라면 이 태블릿은 결코 이슈의 중심에 서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잠시도 무시할 수 없는 개인 보안의 중요성을 이 태블릿은 가리킨다. 개인 보안에 실패한 태블릿 때문에 우리에게 보안의 중요성을 깨우치지만, 개인보안에 실패한 태블릿 덕분에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 또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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