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시장 궤도 수정한 HP… 원라이프 PC 전략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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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HP는 PC 시장에서 궤도를 이탈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델에게서 빼앗은 세계 1위 PC 제조사라는 타이틀을 몇 년 전 레노버에 내주기도 했고,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PC 시장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했으며, PC/프린터와 엔터프라이즈를 분리하는 HP의 조직 개편으로 한동안 PC 신제품을 볼 수 없던 것을 두고 정상이라고 말하긴 힘들었다. 자칫 삐뚤어 질 수도 있는 위기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HP를 덮친 것이다. 하지만 HP는 어두웠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고 PC 시장의 정상 궤도로 돌아오려는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PC 사업부의 혼란은 정리됐고, 새로운 제품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렇게 돌아올 채비가 끝났다는 것을 HP가 4월 7일 마카오 쉐라톤 호텔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디어 브리핑을 통해서였다.

짧고도 강한 방황을 끝낸 듯한 HP가 과거에 스스로 만들어냈던 PC 시장의 정상 궤도로 돌아오기까지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지만, 이날 브리핑과 질의응답에서 의외로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APJ(아시아태평양 및 일본) 시장을 맡고 있는 아넬리스 올슨 퍼스널 시스템즈 부사장과 코 콩 멍 SEAST-K 전무 이사에게 PC 시장의 1위 자리에 복귀하기 위해 HP.Inc(이하 HP)가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가를 물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이 낸 답안지는 거의 똑 같은 이미지가 보였다. PC 시장의 1위 복귀를 목표로 하겠다는 뉘앙스가 전혀 풍기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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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의외다. 어쩌면 예상된 질문이었을텐데 그때로 돌아가려는 욕심을 내비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설명은 끝까지 들어볼 부분이 있다. 1위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HP가 잘하던 것을 더 잘해야 하는 것이 지금 HP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HP가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 묻지 않을 수 없는데, 적어도 이 부분에서 기업용 PC 시장에 대한 HP 내부의 의견 접근이 이뤄진 듯이 보인다. HP는 현재 커머셜 PC, 그러니까 기업용을 포함한 상업용 PC 시장에서 시장조사기관 IDC 기준 1위, 전체 PC 시장에서 근소한 2위다. 여전히 수요가 많은 기업용 PC 시장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HP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기업에서 쓰기 위한 PC를 만드는 게 아니다. 결국 기업용 제품을 쓰는 사람들을 분석해 그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게 이들의 방향이다. HP도 최근 추세가 된 BYOD(Bring Your Own Device) 전략을 추구한다. BYOD는 이용자가 소유한 단 하나의 장치를 가정과 기업을 오가며 쓰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HP는 30~40대 밀레니얼 세대들이 어디에서나 하나의 PC 만으로 업무용으로도 쓰고, 원하는 컨텐츠를 즐기는 용도로 쓸 수 있는 제품 전략에 초점을 맞춘 HP ‘원라이프’(One Life) 전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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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는 단순히 신제품만 내놓고 원라이프를 말하지는 않는다. HP 원라이프는 디자인, 생산성, 보안, 엔터테인먼트 등 4가지로 나눠 각 항목을 얼마나 충족했는가를 살핀다. 분야를 제한하지 않고, 가구, 패션 등 트렌드를 아우르는 분야를 참고해 흐름을 담는 디자인, HP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장치와 데이터, 이용자들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든 보안, 이러한 보안을 기반으로 컨퍼런스콜을 비롯한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생산성, 뱅앤울룹슨과 제휴해 수준 높은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는 등을 담는다. 이러한 원라이프 전략은 앞서 출시한 엘리트 x2 같은 HP의 PC제품군에 이미 반영했지만, HP는 좀더 명확히 이 관점의 제품들, 이를 테면 1kg 미만에 내구성 실험을 거친 13인치 노트북인 HP 폴리오 같은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내놓는 것이다.

물론 HP 원라이프 전략이 일반 소비자용 시장을 등한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HP가 기업용 시장에서 더 잘하고 있으니 이를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 중 하나일 뿐, 일반 소비자들을 겨냥한 제품 시장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업 분리 이전 거의 무차별적으로 제품을 출시했던 HP도 이제 그것을 가려야 할 때가 됐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HP는 전체 PC 시장이 하락하고 있지만, 성장하는 시장과 수요층이 있는 PC 제품군에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확인해준 것이다. HP APJ의 아넬리스 올슨 퍼스널 시스템즈 부사장은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HP는 시장에서 성장 중인 주요 분야를 찾아 점유율을 넓히고자 노력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하고 “투인원, 컨버터블, 게이밍 및 얇고 가벼운 제품이 연구와 개발을 통해 제품을 내놓는 주요 시장”이라고 예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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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는 제품으로 예를 들었다. 그것이 HP 스펙터(Spectre)다. AAA 건전지와 똑 같은 10.4mm 두께를 가진 HP 스펙터는 얇은 만듦새에 고급스러운 재질을 써 어디든 이동하면서 PC를 쓰고 싶은 이용자들을 겨냥한다. 예전 같으면 적당한 두께의 제품을 내놓고 고객의 요구에 맞췄다고 했을 법한데, 적어도 이 제품을 볼 때 휴대성과 디자인이라는 메시지는 내보내고 있다. 지금 수요가 있는 초슬림 노트북 시장에 강력한 도전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HP가 모든 영역에서 스펙터 같은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이용자가 원하는 제품으로 이야기할 때는 된 듯한 인상은 남긴다.

그런데 HP가 원라이프로 그리는 PC의 미래는 전통적인 PC와 조금은 다를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HP의 시각이 그렇다. HP는 한 차례 스마트폰 사업을 했다가 발을 빼야만 했다. 웹OS를 인수한 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내놨지만, 좋지 않은 성적을 받고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스마트폰으로 돌아온 HP는 가까운 미래의 원라이프를 스마트폰에서 찾으려는 듯하다. 지난 MWC에서 공개했던 엘리트 x3가 그 예다. 이 스마트폰은 두 개 이상의 장치를 하나로 합쳐서 쓸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이 장치가 여러 주변 장치와 무선 기술로 확장될 수 있는 능력을 보이는 차세대 모바일 플랫폼이면서도 이용자의 원라이프를 실현할 수 있는 미래의 PC로 접근하고 있다. 아넬리스 올슨 부사장 역시 엘리트 x3를 스마트폰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PC 범주에 넣을 것이라고 말한다. 단지 당장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안이나 관리 용이성이 중요한 비즈니스 분야에 순차적으로 적용할 뿐이라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PC의 미래에 있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변화에 대비하는 인상을 남기는 선에서 엘리트 x3를 이야기했지만, 결국 하나의 장치가 여러 영역에서 쓸 수 있는 원라이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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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HP 원라이프는 하나의 장치를 여러 환경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이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BYOD’의 HP식 표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다만 포괄적인 업계 용어를 쓰는 대신 이용자의 삶에 맞춘 개별적 제품 전략과 이를 기반으로 성장하려는 HP의 의지를 반영한 전략적 용어일 수도 있다. 단지 이것이 전략적 용어라도 결국 그 의지를 실천하는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아넬리스 올슨 부사장은 인터뷰 중간 이런 말을 꺼냈다. 전체 PC 시장 1위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HP가 목표로 삼은 성장하는 시장에서 1위를 하겠다고. HP 원라이프 PC 전략이 그것을 이끌어낼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는지는 이제부터 지켜보면 될 일이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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