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투아웃, 인텔 상대로 홈런 친 엔비디아

사용자 삽입 이미지PC 시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라이벌은 인텔과 AMD였습니다. PC의 핵심 부품인 CPU를 설계하는 두 기업의 경쟁 덕에 더 빠르고 더 강력한 성능의 PC를 이용자들은 쓸 수 있었지요. 하지만 같은 영역에서 경쟁하는 AMD와 달리 인텔은 다른 영역의 엔비디아와 자주 싸웠습니다. 그래픽 프로세서(이하 GPU)를 설계하고 공급하기에 경쟁자보다 보완적 관계라는 말이 더 가까워야 함에도 인텔에게는 상당히 골치가 아픈 상대가 다름 아닌 엔비디아였던 것이지요.


인텔을 향한 엔비디아의 공격, “‘CPU’보다 ‘GPU’야”


과거 2D 시대 때의 PC에서 인텔과 엔비디아는 확실히 상호 보완적 관계였습니다. 데이터를 CPU가 처리하고 이미지 처리는 그래픽 칩이 맡았지요. 그런데 3D 시대에 접어 들어 더 화려한 3D 그래픽의 게임과 영상이 늘어나면서 그래픽 칩에 대한 비중이 점점 높아집니다. 이미지를 처리하는 수준의 그래픽 칩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렌더링까지 처리하는 전문 프로세서(GPU)로 발전해가지요. 사실 이렇게 서로의 영역을 지켰으면 별 문제는 없는데, 엔비디아는 “더 화려한 그래픽을 구현해야 하는 현재의 추세로 볼 때 CPU보다 GPU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뱉습니다. 그동안 PC에서 가장 핵심으로 인식되어 오던 CPU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도발을 한 것이죠. 이로 인해 CPU와 GPU 논쟁은 촉발됐고, 그것은 결국 새로운 경쟁적 관점을 구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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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보드 칩셋, “엔비디아, 넌 만들지 마”


엔비디아가 한 때 인텔 메인보드 칩셋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인텔로부터 호환 칩셋을 만들 수 있는 면허를 획득한 이후 엔비디아는 열정적으로 메인보드 칩셋을 설계하고 공급했지요. 초기 엔포스 칩셋은 문제가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픽을 내장한 안정적인 칩셋으로 자리를 잡아 갑니다. 하지만 메모리 컨트롤러를 넣은 코어 i7을 발표하면서 인텔이 돌연 변심을 하게 되지요. 엔비디아가 획득한 종전 라이센스로 코어 i7을 위한 메인보드 칩셋을 만들지 못한다고 주장하자, 엔비디아는 곧바로 소송을 걸며 강력 대응에 나섭니다. 이에 대한 엔비디아 CEO인 젠센 후앙 씨는 매우 격앙된 어조로 인텔을 맹비난하기도 했는데, 결국 엔비디아는 메인보드 칩셋 개발을 중단하고 맙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톰 넷북 시대에 흡수력 전혀 없던 ION


엔비디아가 넷북(Netbook)/넷톱(Nettop) 시대를 겨냥해 야심차게 준비했던 것이 바로 아이온(ION)이었습니다. 넷북과 넷톱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그래픽 성능을 보강해 줄 메인보드 칩셋으로, 풀HD 동영상과 3D 게임까지도 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으로 기대를 모았지요. 그런데 아이온은 넷북/넷톱에 제대로 씨를 뿌리지도 못했습니다. 아이온, 아이온2 칩셋의 성능은 좋지만, 칩셋당 단가가 높아 넷북 판매가를 올려야 하는 부담감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더구나 넷북/넷톱의 성능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인텔은 내장 그래픽을 다이에 넣은 신형 아톰을 출시하면서 공급가를 낮춰 넷북 가격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비싼 아이온 넷북의 생산과 구매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엔비디아는 성능과 값을 낮춘 아이온 LE를 내놓고 끝까지 저항해보지만, 한번 밀린 시장에서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하지요. 엔비디아는 넷북 시장에서 물 먹은 상황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 이상 넷북이 이슈가 아니라는 점일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모바일 시대, 엔비디아의 통쾌한 복수?


PC시대에서 모바일 시대로 흐름이 바뀌면서 인텔과 엔비디아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PC 시장은 유지되고 있지만,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모바일 시장에 초점이 모아지면서 두 기업의 행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것이죠. 넷북으로 모바일 컴퓨팅 시장을 키우는 데 성공한 인텔은 손 안의 스마트 단말기 시장에선 이렇다할 성공 스토리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MID는 사실상 실패로 끝나가고 있고 스마트폰을 비롯해 스마트 패드(태블릿) 시장에 적합한 제품군을 제때에 내놓지 못하는 늦은 대응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이와 다르게 엔비디아는 일찌감치 모바일 시장에 씨를 뿌리고 나무를 가꾼 덕에 벌써 열매를 하나씩 따는 중이지요. 올해 들어 듀얼 코어 모바일 칩셋인 테그라 2를 채택한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ARM의 코어에 자사의 그래픽 기술을 얹은 모바일 프로세서로 경쟁력을 갖춘 덕분에 초기 고성능 스마트 단말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1~2년 뒤 인텔이 이 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제품군을 내놓더라도 엔비디아는 당장 물리치긴 어려운 경쟁자로 성장해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얼마 전 인텔은 엔비디아와 6년짜리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말은 그럴 듯 하게 크로스 라이센스라는데, 엔비디아 전체 특허를 이용하는 대가로 인텔이 15억 달러를 지불한다는 내용을 보면 돈 주고 기술을 산 거나 다름 없습니다. 앞서 인텔에 대한 엔비디아의 고소를 모두 취하하는 비용도 포함했지만, 이쯤되면 9회말 투아웃에서 동점 만루 홈런을 친 거나 다름 없는 상황인 셈이지요. 그렇다고 게임은 완전히 끝난 게 아니지요. 동점이니 이제 연장전을 치러야 합니다. 누가 이기던 관심 없습니다. 그저 흥미진진한 게임이 진행되기만을 바랄 뿐이죠. 엔비디아를 상대로 게임을 한다는 것, 인텔은 상상이나 했을까요?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18 Comments

  1. 2011년 1월 27일
    Reply

    모바일 다음의 경쟁분야는 뭘지도 궁금해지네요.

    • 칫솔
      2011년 1월 29일
      Reply

      전뇌화일지도. ㅋ

  2. 2011년 1월 27일
    Reply

    누가 이거던 관심없고 제발 싸게만 팔아주면 좋겠어요. 샌디브릿지 너무 비싸요 ㅠ,,ㅜ;;

    • 칫솔
      2011년 1월 29일
      Reply

      비싸다는 데 동의를 안할 수가 없다능~ ㅜ.ㅜ

  3. 2011년 1월 27일
    Reply

    모바일 시대에 떠오르는 또하나의 스타가 바로 엔비디아네요. 예전의 인텔은 어디로 갔는지? ^^

    • 칫솔
      2011년 1월 29일
      Reply

      예전의 인텔은 그대로죠. 그게 문제인거죠. ^^

  4. 2011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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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그라3가 정말 기대됩니다.
    금년 하반기나 내년 쯤이면 QUAD CORE ARM 프로세서를 달고 나오는 모바일 디바이스가 판을 치겠네요.
    이미 소니의 NGP가 한수 앞서서 쿼드 프로세서를 달고 나왔지만…
    모바일 관련 일대 혁명이 기대됩니다. 🙂

    • 칫솔
      2011년 1월 29일
      Reply

      코어가 늘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아지는 법이지만, 아무튼 더 좋은 성능을 값싸게 즐길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음 싶습니다. ^^

  5. 2011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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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이네요. 아마도 오히려 ATI의 기술력으로 APU에서 훨씬 좋은 기술력을 보여주는 AMD 의 영향도 있는 듯 합니다. 이번 퓨전플랫폼에 대한 평가가 의외로 좋거든요. 인텔의 GPU 가 아직 성능이 따라주지 않는 시점에서 엔비디아와 화해 하는게 나름 필요한 선택이었죠. 엔비디아는 오히려 AMD에 감사해야 할 듯 합니다^^

    • 칫솔
      2011년 2월 2일
      Reply

      글쎄요. 기본 처리 성능에서 전혀 우월함이 없는 AMD가 GPU 성능만 믿고 APU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아직 여력이 부족한 듯 싶습니다. 이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기에 APU를 밀 수밖에 없는 AMD가 이해는 됩니다만…

  6. 2011년 1월 30일
    Reply

    AMD + ATI가 분발해야 할텐데 말이죠 ^^;
    라고 하면서 openCL 보다는 CUDA를 공부중인 1인입니다만..

    아무튼 CPU의 시대는 끝났다 GPU의 시대다! 라고 하는 말은
    GP-GPU(General Purpose GPU) Programming 를 경험해 보신다면 충분히 납득하시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NVIDIA의 발표자료로는 최대 100배 최소 30배 이상의 성능을 GPU가 내어주니 저런 소리를 할만하거든요 ^^
    일단 개인이 느낄수 있는 걸로는
    BOINC / SETI@HOME 등의 수치연산에서 CPU로 23시간 걸리는 연산이 8800GT에서 GPU로 연산을 하면 25분만에 끝난다는 거죠. 단순계산으로는 46배 정도의 성능 향상이 있는거죠.

    • 칫솔
      2011년 2월 2일
      Reply

      그건 그래픽과 관련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입장에서는 확실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PC에 들어오는 수많은 데이터를 GPU가 다 처리하는 것이 아닌데 GPU의 중요성만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죠. 더 비싼 GPU를 꽂는다고 비디오 편집이나 컨버팅이 빨라지지 않는 건 뭐로 설명해야할까요? ^^

    • 2011년 2월 2일
      Reply

      64bit 시스템도 아직 제대로 안된것 처럼
      GP-GPU 역시 아직 제대로 환경이 구축이 되지 않아서겠죠 ^^;

      일단 ATI STREAM을 이용해서 동영상 인코딩을 빠르게 해주는 녀석들도 나오기 시작했고 CUDA SDK 3.2 에서도 H.264 Encoder가 내장되는 것을 보면서 동영상 편집/컨버팅에도 상당히 기대를 하는 편입니다.

      CS4 이상에서는 CUDA를 지원하고 NVIDIA 드라이버 260 이상을 사용해야 하는 제약이 있긴하지만, 포토샾에서도 GPU 지원을 받을수는 있으니까요 ^^

  7. 2011년 2월 7일
    Reply

    엔비디아는 그래픽 제조사로 만 알고 있었기에…
    지금의 관심은 스치는 바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력이 있군요.
    인텔의 샌드브릿지가 홍역을 치르고 있네요.
    모바일용 샌드브릿지 제품도 나오겠죠?

    • 칫솔
      2011년 2월 10일
      Reply

      모바일용 샌디브릿지는 이미 출하되고 있습니다. ^^

  8. 2011년 11월 23일
    Reply

    ㅎㅎㅎ 전뇌화라는 답변을 다신 칫솔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칫솔님이 전뇌화하면 전동칫솔…이라고 썰렁 개그를 생각해버렸습니다… 배꼽잡고 뒹구는 중ㅎㅎㅎ)

    • 칫솔
      2011년 11월 30일
      Reply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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