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비극을 끝내려는 HP의 올인원 전략

HP 중국 시장 전략HP가 중국에서 여러 번 대규모 행사를 했지만, 올해처럼 절실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5월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상해에서 열린 HP 글로벌 인플루언서 서밋 2012(HP GIS 2012)는 HP가 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세계 각국에서 500여명의 영향력 있는 미디어 관계자들이 참석한 글로벌 행사였지만, 초점의 상당 부분을 중국 시장에 맞춘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왜 HP는 중국에서 찬양가를 부를 수밖에 없었을까?


말 한 마디에 시작된 HP의 비극


HP가 분명 세계 1위 PC 업체인 것은 맞지만, 지난 1분기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고작 5.3%(IDC 발표 인용)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레노버의 시장 점유율 35.5%보다 무려 30%나 적을 뿐만 아니라 현재 3위인 에이서 9.5%보다도 적은 수치다. 세계 1위 PC 업체의 자존심이 중국에서 사정 없이 짓밟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PC 시장 점유율이 낮아서 그렇지만, HP가 원래 중국에서 장사를 못한 것은 아니다. HP는 2010년 이전까지 중국 실적이 무척 좋은 편이었다. 3년 전에도 중국의 1위 PC 사업자는 레노버였지만, HP와 레노버의 격차는 그리 높지 않았으니까. 레노버가 19%대, HP가 16%대로 3%의 점유율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한순간 HP는 중국 시장에서 선두와 한참 격차가 벌어진 4위 PC 사업자로 추락해 버렸다. 무엇이 HP를 중국에서 추락하게 만든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레노버가 상대적으로 잘한 부분도 있겠지만, 점유율 추락의 원인은 다름 아닌 HP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단 한 번의 말 실수가 점유율을 다 까먹는 기폭제가 된 탓이다. 2010년 3월 15일, 중국 최대 관영 방송인 CCTV는 소비자의 날을 맞아 AS가 접수된 상당수의 HP 노트북 중 일부에서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가운데 절반은 V3000과 DV2000 시리즈에 몰려 있다고도 했는데, 두 모델은 학교와 같은 단체에서 대량으로 구매했던 모델이었다. 그런데 이 보도가 나가면서 HP의 AS 담당자는 노트북 고장의 원인을 중국 학생 기숙사에 벌레가 많은 게 원인이고 정상적인 제품이 그렇게 변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댔다. 이것이 중국 소비자를 기만한 행동으로 소개되면서 분노를 샀던 것이다. 결국 중국 소비자들은 고발과 소송 등으로 대응했고 사태가 확대되자 HP는 AS 기한을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AS 담당의 황당한 한마디에서 시작된 이 비극은 아직도 HP를 괴롭히고 있다.


설계부터 생산, 소비까지 중국에 올인원 시스템을 만드는 HP


만약 중국이 세계 최대의 PC 소비 시장으로 바뀌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다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세계 PC 시장을 주도했던 미국은 모바일 장치의 영향으로 PC 시장의 성장세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반면 중국은 가장 뜨거운 소비 시장으로 떠오른 때문이다. 시장 조사 기관들은 이미 중국이 세계 PC 점유율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으로 떠올랐으며 앞으로 성장가능성도 미국보다 높아 PC 업체들에게 매력 덩어리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는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점차 높아지는 중국의 경제력을 뒷받침하는 소비력을 감안하면 어느 산업이든 군침을 흘리겠지만, 저성장이 예상되는 PC 산업에서 중국 PC 시장은 PC 업체의 성장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HP 중국 시장 전략중국이 세계 PC 업체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전장으로 바뀐 지금, HP는 과거의 비극을 극복해야만 하는 절박함과 다른 언어, 문화 등 외국 기업의 가진 불리한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 한 가지도 힘든 데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풀어야 하는 숙제가 HP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는 통상적인 접근법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로 보이는 데, 결국 HP의 전략은 한마디로 ‘중국인을 위한 제품을 중국에서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HP는 중국에서 PC를 생산하고 중국에서 팔아왔다. 하지만 그 제품은 원래 중국인을 위해서 만든 제품이 아니라 글로벌 표준으로 생산한 제품을 중국에도 팔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판매량은 유지됐지만, 지난 사태 이후 이 정책은 무의미해졌다. 더 적극적인 전략을 내세워야 했던 HP는 GIS 2012에서 단순히 중국인이 생산과 유통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에 맞는 제품 설계까지 중국 안에서 할 것이라고 전했다.


HP 중국 시장 전략HP는 이미 베이징에 R&D 센터를 운영해 왔지만, 상하이에 디자인 센터를 새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곳 대학과 산학 협동을 시작했고, 중국 시장에 맞는 제품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PC 유형이나 재질, 색상까지 사전에 조사하고 이를 반영한 중국 친화적 제품 생산과 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곧 연구 개발에 필요한 고급 인력의 고용을 늘리고 이러한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현지화된 제품을 통해 제품만 팔아먹는 외산 업체라는 부정적 여론을 걷어내려는 포석도 담겨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멕 휘트먼 HP CEO가 직접 GIS 2012에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프린팅&퍼스널 시스템(PPS)을 총괄하는 토드 브래들리와 나란히 GIS 2012 현장에 나타난 그는 중국 시장에 대한 전략을 묻는 질문에 “중국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고 연구를 많이 했으며,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의지와 헌신을 갖고 중국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는 답을 내놓고 돌아갔다. HP CEO가 직접 나서서 중국 시장에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매우 크다. 하지만 CEO의 메시지가 중국 시장에 전달될지는 미지수다. 말 한마디로 시작된 비극이지만, 말 한마디로는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말보다 제품에 대한 신뢰 회복이 먼저이고, 결국 철저한 현지화라는 해법을 실험 중이다. 그것으로도 중국인들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하면 HP에게 PC사업의 미래는 밝지 못할 것이다.


덧붙임 #


역시 소비자는 단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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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5 Comments

  1. 임스
    2012년 5월 14일
    Reply

    중국에서 추락한 사연을 보니 중국 소비자가 정말 대단해보이네요.
    우리나라 소비자 운동은 언제쯤 이런 파워를 낼런지..흠..

    • 칫솔
      2012년 5월 15일
      Reply

      소비자들이 좀더 냉정해질 필요는 있겠죠.

    • ㅇㅁㄴㅇㅁ
      2012년 5월 27일
      Reply

      엄청더 냉철해져야죠

      오래전부터 무조건 제품은 국산이다라는 인식이 틀에

      박히신분들이 많아서요…물론 그게 결과적으로 지금

      좋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무조건 국산제품이라고 사주시면안됩니다.

      국민들을 호구로 보니까요

  2. 2012년 5월 20일
    Reply

    그래도 확실히 치부(?)를 건드렸기에 중국인들이 대대적으로 반응을 한거지
    우리나라처럼 미적지근하게 건드린다면 그렇게 까지 몰락하진 않았을것 같기도 해요.

    • 칫솔
      2012년 5월 20일
      Reply

      맞아요. 우리나라에선 이렇게까진 아니죠. 이렇게 주도할 언론도, 여론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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