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Hewlett-Packard'(휴렛팩커드)를 줄인 기업 이름이라는 것은 IT 바닥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좀더 알고 잇다면 창업자의 이름을 합쳤다는 것과 왜 패커드 휴렛이 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일화도 알고 있겠지요. 하지만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아마 대부분은 HP를 그냥 PC나 프린터 업체의 이름 정도로 여기는 이들도 꽤 있을 테고요.
윌리엄 휴렛과 데이브 패커드의 이름을 합친 HP는 시작 당시에 이름을 줄인 HP 로고를 쓰다 1990년대 중반까지 휴렛팩커드와 HP가 함께 들어간 로고를 붙였고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휴렛팩커드를 뺀 HP라는 두 글자만 있는 로고를 줄곧 써왔습니다. 물론 그 사이 모양이 두어번 바뀌긴 했지만, 20년 동안 휴렛팩커드는 사라진 채 HP만이 그 정체성을 대변했지요.
HP는 이번 GIS 2012에서 공개한 스펙터 xt와 엔비 4 같은 프리미엄 제품에 처음으로 ‘휴렛팩커드’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그 이름이 보이는 부분은 경첩과 연결되는 본체 뒤쪽입니다. 노트북을 편 상태에서 이용자는 보이지 않고 노트북을 접어 들거나 뒤에서 바라볼 때만 보이더군요. 휴렛팩커드라는 이름이 길어서 보기 싫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과하지도 않고 모자르지 않게 적절히 배치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클래식 시그니처를 새긴 제품들이 앞으로도 통일성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지요. 필요하면 넣고, 필요 없으면 빼는 그런 이름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디자인 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인데, 이에 대해 20여년 가깝게 HP에서 PC 디자인을 맡고 있는 스테이시 울프 디자인 이사는 그런 우려에 대해 이렇게 답하더군요.
스테이시 울프 HP 디자인 부문 이사 “물론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프리미엄 노트북의 디자인에는 한 줄로 휴렛팩커드를 새겨놓았죠. 노트북의 선형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고, 중심축에 휴렛패커드를 두었습니다. 그것은 중심축을 중심으로 배열한 책과 마찬가지죠. 마치 시그니처처럼 프리미엄 제품의 이미지를 한데 결집시킬 수 있을 거에요. 노트북을 열었을 때 휴렛팩커드가 있는 것처럼 가치에 충실해질 겁니다. HP에는 제대로 된 인지도도 필요하지만, 휴렛팩커드라는 이름이 HP의 긴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시그니처를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다행히 HP라는 둥글고 짧은 이미지보다 길게 풀어 쓴 휴렛팩커드라는 시그니처에서 훨신 친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름 하나 새겼다고 갑자기 이들이 말하는 전통성을 느낀 것은 아니고, 단지 HP라는 짧은 단어 속에 숨겨진 것을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덕분에 상대적으로 친절하게 느껴졌다고 해야겠지요. 서양식 작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축약된 이름보다는 이 시그니처가 좀더 쉽게 다가온 것은 사실입니다.
정말 멋지네요..
레노보는 IBM의 아이덴티티(아. 키보드 그대여..ㅠ)를 버리기 시작해서 레노보를 탈선하는 매니아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노트북은 아마도 HP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리미엄 노트북군과 보급형의 균형을 잘 맞추는 제조사라고 생각해서 기대가 많이 되네요. 🙂
레노버도 씽크패드의 아이덴티티를 소비자 제품군에 반영하려고 많은 세월 노력했지만, 아직 그 성과가 뚜렷하게 나온 것 같지는 않긴 하죠. ^^
좋은 전략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록새록. 이런 게 성공하면 다른 곳도 응용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