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라는 표현을 쓰는 IFA를 다녀오면서 가전이 아닌 PC 이야기를 하는게 생뚱 맞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IFA는 가전과 관련성이 적은 제품들로도 적잖은 공간을 채워왔고 ‘대세’ 모바일이 큰 축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PC는 IFA에서 또 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제품군이었다. 그런데 이번 IFA에서 PC는 마치 차디찬 얼음물 바구니를 뒤집어 쓴 것마냥 쪼그라든 상태다. 물론 이곳에서 기자간담회도 열고 부스도 운영하면서 여러 소식들이 전한 전통적 PC 업체들도 있지만, PC 사업을 병행하고 있는 대형 IT 가전 업체들 중 상당수가 전시대에 PC를 단 한 대도 깔지 않으면서 PC를 보는 재미가 사라졌다.
삼성과 LG, 소니, 우린 PC를 모른다
지난 해 IFA에서 이들 IT 업체들이 내놓은 PC의 존재감은 적었다고 보기 힘들다. 삼성이나 소니가 아티브 시리즈나 바이오 시리즈의 신형들을 위해 내어 준 전시 공간을 보면 결코 비중이 적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IFA가 끝난 이후 소니는 바이오라는 상표와 사업권을 저팬 인더스트리로 양도하고 PC사업에서 손을 뗐다. 지난 해 판매했던 제품의 AS에 대한 책임은 당분간 맡지만 PC 관련 제품은 더 이상 내놓지 않기로 한 상태여서 이번 IFA에서 제품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에 비해 삼성과 LG는 여전히 PC를 파는 상태다. 그럼에도 PC가 있을 것으로 짐작했던 공간에는 더 기막힌 신제품들로 채워놨을 뿐 새로운 제품에 대한 전시는 전혀 하지 않았다.
알맹이를 빼먹은 PC 업체들
그나마 PC 시장에서 잔뼈만큼은 굵은 에이서와 레노버, 에이수스가 이곳 베를린에서 아직 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세 회사 모두 3일과 4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새로운 PC 신제품을 공개하면서 아직도 새로운 유형의 PC를 기대하는 이들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이들의 제품 중 일부는 지난 컴퓨텍스에서 공개한 제품인 것도 있고, 각 업체의 기자 간담회에서만 살짝 공개하고 정작 부스에는 제품을 거의 전시하지 않은 게 태반이다. 에이서가 발표했던 여러 제품 가운데 아스파이어 R13만 공개했고, 아스파이어 R14나 스위치 12 등은 전시 품목에서 빠졌다. 에이수스는 부스가 없었으며 레노버도 신형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이들이 여러 PC 신제품을 IFA에서 발표한 뒤 공개했다는 보도자료는 참관객에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 물론 알맹이 없는 PC 업체들의 부스에서 PC를 만지며 오래 머무르는 관람객은 드물었다.
그나마 신제품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런 저런 발표 없이 새로운 PC를 전시한 곳은 도시바가 거의 유일하다 말해도 이상하진 않을 듯하다. 일단 도시바의 PC 제품들은 딱히 제품의 차별화를 시도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도시바가 집중 전시한 윈도 태블릿이나 크롬북은 만듦새의 차별화보다 가격적인 이점을 가진 제품들일 뿐이라서다. 이것 중 일부는 100~300달러 대의 8인치 태블릿과 크롬북인 점을 감안하면 특별한 그 무엇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도시바의 크롬북은 화면 해상도가 높아 작업이 좀더 편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도시바 이외에 다양한 PC 제품군을 볼 수 있던 곳은 인텔 부스다. 특히 인텔이 새로 발표한 코어 M 프로세서를 넣은 에이수스 젠북 UX305와 HP엔비 15 X2가 있었는데, 여러 제품과 섞여 있다보니 이 제품을 찾아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UX305는 매우 얇은 두께를 가진 울트라북으로, UX305는 마치 MS서피스의 15인치 버전처럼 보일 만큼 만듦새가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이 제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보다 인텔 부스의 마술쇼에 더 많은 참관객이 몰려 있었다는 건 안타깝다.
엇박자 난 인텔 프로세서 전략
인텔은 퍼스널 컴퓨팅 총괄 매니저인 커크 스카우젠을 IFA가 열리는 베를린으로 보냈다. IFA 직전에 발표했던 코어 M 프로세서를 좀더 자세히 소개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텔의 모바일 프로세서를 IFA에서 소개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브로드웰 Y 프로세서의 늦은 출시에 대한 결과 가운데 하나가 이번 IFA에서도 드러난 셈이다. PC 생산 업체들이 팬이 없고 가벼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코어 M의 특징을 반영한 제품을 내놓는 데에도 문제가 있지만, 프로세서의 양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머지 않아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전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텔은 연말 특수를 고려한 전략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연말에 기대할 만한 제품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점은 그 전략의 실패라 말하긴 어려워도 차질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여지가 크다. 여기에 PC 사업의 부진과 떨어지는 이익률에 고민하는 일부 업체의 철수설마저 돌고 있는 가운데 일시적 현상일 것으로 여기고 싶을 정도로 이번 IFA의 PC 제품군은 크나큰 걱정만 남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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