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 못들었어요.”
이쯤 되니 화가 나다못해 지긋지긋하다. 누군가는 카톡을 보내고, 멜론에서 음악을 찾아줘서 좋다고 하는 데, 나는 왜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스피커 한 대에 정신 건강을 위협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카카오 미니, 문제의 그 녀석이다.
아직 ‘아’라고 말하면 ‘어’하며 찰떡 같이 알아듣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새로운 지능형 스피커에게 그런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 늦게 나온 만큼 다를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력이 더 진화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커지는 건 후발 주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일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카카오 미니는 단순히 그런 이유 만으로 기대했던 제품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첫 째’는 아니어도 ‘셋 째’라 부르면 서러워 할 인터넷 기업이면서도 주문 사이트 하나 제대로 운영 못하고 수많은 예비 구매자를 엿 먹이고 물 먹인 그 잘난 실력을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던 것.
어쨌든 카카오 미니가 손에 들어왔다. ‘미니’라는 이름처럼 작기는 하다. 한 손으로 충분히 움켜 잡을 수 있는 크기다. 네이버 웨이브를 옆에 놓으니 그 절반쯤 된다. 키만 낮은 줄 알았더니 차지하는 면적도 적다.그냥 책상 옆에 놓고 쓰기에 딱 맞는 정도다. 그래서 그랬나? 전원선을 정말 짧다. 딱 1m다. 책상 아래 전원 콘센트가 있다면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길이다. 배터리마저 내장하지 않았으니 다른 곳에서 쓰려면 항상 전원선을 함께 옮겨야 한다.
몸통은 패브릭으로 둘렀다. 소재 자체는 그리 비싸 보이진 않는데, 패브릭으로 몸뚱아리를 감싸지 않았다면 밋밋할 뻔했다. 평평한 머리 꼭대기에 음량 조절, 음소거, 음성 비서 호출에 쓰라고 4개 버튼을 달았다. 물론 이 버튼을 쓸 일은 거의 없다.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 누르는 것보다 멀리서 말로 하는 게 더 편하긴 하니까.
전원 케이블을 넣고 무선 랜 같은 간단한 설정을 마치고 카카오톡 계정과 연동까지 끝내면 기본 설정은 끝난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설정을 끝낸 뒤 카카오 미니의 호출 이름인 ‘헤이, 카카오’라 불러본다. 둥근 원을 그리며 LED가 켜진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기다리는 중이다. 일단 설명서에 있는 대로 하나씩 해본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팟캐스트, 카카오톡, 뉴스, 날씨, 타이머, 날짜, 환율, 운세를 물어본다. 스무고개로 놀아보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달라니 개사한 가요를 부른다. 다만 스무고개를 하다가 스스로 질문을 멈추는 순간 왠지 모를 뻘쭘함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정해진 것들은 잘 하긴 하는데, 별로 낯설지가 않다. 너무 익숙한 것들만 하고 있다. 물론 카카오 미니를 첫 지능형 스피커로 맞이한 이들에게 나의 말에 반응하는 모든 것이 신기하겠지만 이미 국내에 출시된 다른 지능형 스피커를 쓰고 있던 이들에게 카카오 미니의 재주들에 느껴지는 신비로움은 별로 없다. 아이를 위해 동요를 틀거나, 원하는 음악을 멜론에서 찾아서 재생하는 게 어디 카카오 미니만 내세울 재주인가 싶다.
그나마 카카오톡과 연동되는 재주는 유일하게 넣었기에 좀더 신경써 살폈다. 그런데 그것마저 뭔가 시원찮다. 카카오톡에 등록된 지인이나 나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은 되는데, 받은 답장은 읽지 못한다. 도착한 카톡의 숫자는 알려주는 데, 그걸 읽어 달라고 하니 업데이트 예정이란다. 카톡 읽기도 안되는 마당에 카톡 통화는 꿈도 꾸기 어렵다.
사실 카카오 미니 뿐만 지능형 스피커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검색에 필요한 문장의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지만, 카카오가 주장처럼 카카오 미니가 그 부분의 능력이 뛰어난 부분을 찾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평창 동계 올림픽에 대해 알려줘”라거나 “트와이스의 최신 곡 제목을 알려줘” 같은 요구를 했을 때 카카오 미니는 “네?”, “최신 곡을 찾지 못했어요” 같은 그 맥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답을 한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프로야구 코리안 시리즈가 한창 벌어지던 중 그 날 프로야구 일정에 대해 물었을 때 카카오 미니에서는 그날 프로야구 일정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영국 화폐와 무게 단위로 쓰이는 파운드에 대한 구분도 못한다. 요리법 같은 건 너무 어려운 요구다.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데, 그 말의 맥락을 제대로 짚고 대답하는 경우가 상당히 적은 것은 마치 누군가 카카오 미니를 위한 입력해 놓은 답이 없다는 인상만 강하게 든다.
분명 버거워 할 걸 알면서도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말을 할 줄 아는 수준의 지능형 스피커에게 여러 질문을 하는 것은 그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서다. 비록 사물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아도, TV를 켜고 끌 줄 몰라도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멜론의 1년치 구독 사은품으로 내세우지 않아도, 라이언이나 어피치 같은 캐릭터 상품을 미끼로 걸지 않아도 좋은 평가를 받을 텐데 안타깝다.
어쨌거나 카카오 미니에게 뭔가를 물을 때마다 왠지 안쓰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플러그를 뽑았다. 아직 더 배워야 하는 카카오 미니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고 싶어서…
리뷰 문의는 아닙니다만, 혹시 90년대말~ 2천년대 초에 지인이신 분 중에 ‘강성원’씨라고 알지 않으신지 문의드립니다.
90년 대 중반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