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트2가 가상 현실 생태계를 넓히는 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면, 어쩌면 메타에서 내놓을 새로운 퀘스트 프로에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건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결국 퀘스트 프로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철저하게 보급형으로 설계된 퀘스트2와 달리 퀘스트 프로가 고급 기능으로 채운 훨씬 비싼 헤드셋이라는 점을 모르진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몇 배나 비싼 몸값을 제대로 해내느냐 일테고.
10월 초 예약 때 자동으로 지정된 도착 예정일보다 며칠 앞서 퀘스트 프로가 배달됐다. 이미 오큘러스 리프트와 퀘스트, 퀘스트2 등을 거치며 가상 현실 장치에 대한 경험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대를 품고 퀘스트 프로를 상자에서 꺼낼 수밖에 없었다. 가상 현실이란 제한을 벗어나 물리 현실을 섞는 다음 단계의 헤드셋이기에 그랬다.
상자를 열어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 퀘스트 프로는 결코 작은 덩치는 아니었다. 퀘스트2보다 헤드셋 부분을 작게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진화를 갖췄다지만,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퀘스트2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게 착시가 아닌 이유는 분리할 수 없는 헤드스트랩 구조를 채택한 때문이다. 유연성을 가진 천 재질의 헤드스트랩을 가진 퀘스트2는 헤드셋 본체만 크기를 따지면 그만이었으나, 퀘스트 프로 는 앞쪽 헤드셋과 뒤쪽 배터리가 있는 고정 장치까지 이어지는 전체가 분리할 수 없는 형태로 고정해 버렸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퀘스트 프로가 퀘스트2보다 더 크다.
무게도 퀘스트 프로가 더 무겁다. 들자마자 퀘스트2보다 좀더 묵직하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다. 단단한 스트랩 구조를 채택한 만큼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다만 무게가 앞 헤드셋에만 쏠린 것은 아니다. 헤드셋에서 배터리를 분리해 뒤쪽으로 옮긴 터라 앞뒤로 무게 균형을 맞췄다.
아이러니한 점은 더 크고 무거워졌는데도 착용감은 오히려 퀘스트2보다 좋다. 퀘스트 프로를 쓴 뒤 얼굴에서 느끼는 불편이 단 하나도 없다. 평소 쓰던 안경을 쓴 채 착용했는 데도 답답함이 없다. 퀘스트2를 처음 썼을 때 얼굴에 느끼는 압박, 안경을 쓰기 어려웠던 착용의 문제들이 퀘스트 프로에선 나타나지 않는다.
퀘스트 프로를 착용하기 편한 이유는 얼굴 대신 이마로 헤드셋을 지탱하도록 설계한 때문이다. 신축성 헤드스트랩이었던 퀘스트2는 눈앞 전체를 가려야만 했기 때문에 이마보다 얼굴 광대를 압박하는 정도가 매우 심했던 반면, 퀘스트 프로는 이마에 얹는 헤드 쿠션과 뒤통수를 받치는 쿠션으로 고정해 얼굴 압박이 전혀 없다. 또한 이마쪽 헤드 쿠션을 앞뒤로 조절할 수 있어서 안경을 쓸 때 헤드셋 안쪽 공간을 넓힐 수 있다.
여기에 헤드셋 앞과 뒤를 연결하는 양옆 지지대도 귀에 닿지 않는다. 퀘스트2를 쓰면 헤드셋이 덜 흔들리게 스트랩 양옆 부분이 귀 위쪽을 꽉 누를 수밖에 없었지만, 퀘스트 프로는 오히려 귀 위쪽 머리 양옆으로 지지대가 닿지 않도록 좀더 넓게 벌려 놓았다. 다만 머리 크기에 따라 이 부분이 닿을 수도 있다는 점은 미리 알려 둔다.
퀘스트2처럼 양옆이 열려 있는 점도 영향이 있다. 눈만 살짝 옆이나 아래로 돌리면 외부의 모습이 보이므로 몰입감은 떨어지지만, 가려지지 않은 만큼 답답함도 없다. 옆 부분을 가리는 액세서리를 사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 싶다. 더구나 헤드셋을 쓴 안쪽 얼굴이 가려울 때 손가락을 넣어서 긁을 수 있는 건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하다.
안경 착용자는 퀘스트 프로에 맞는 전용 렌즈를 따로 맞출 수 없다. 눈 추적을 위한 센서를 넣은 렌즈 구조가 바뀌면서 렌즈 어댑터를 쓸 수 없게 된 때문이다. 따라서 안경을 쓴 채 퀘스트 프로를 착용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퀘스트 프로의 양옆과 아래가 뻥 뚫려 있는 터라 습기로 인해 뿌옇게 보이는 현상은 사우나 안에서 쓰는 게 아닌 이상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안경 형태를 바꿔야 할 이유는 있기는 한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뒤에 이어진다.
퀘스트 프로를 쓰고 처음 전원 버튼을 눌렀을 때 해야만 하는 설정 과정은 퀘스트2와 거의 비슷하다. 앱을 설치해 놓은 스마트폰과 연동하고, 무선 랜 및 로그인 설정 절차는 다른 게 거의 없다. 공간 설정 방법도 똑같다. 이러한 절차가 마무리 되면 퀘스트2 때와 같은 가상의 홈이 표시된다.
사실 퀘스트 프로가 퀘스트2와 똑같은 가상 홈을 그대로 적용한 건 메타가 매우 안일하게 처리한 부분이다. 물론 나처럼 퀘스트2에 잘 적응했던 이용자에게 가상 홈은 익숙한 분위기에서 장치를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장치의 컨셉에 맞는 새로운 가상 환경을 원했던 내겐 별다른 감흥이 없다.
외부 환경 위에 메뉴를 표시하는 패스스루 홈은 더 난잡하다. 패스스루는 헤드셋을 쓴 채로 외부를 보는 기능으로, 퀘스트 프로는 흑백으로 볼 수 있던 퀘스트2와 다르게 컬러로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흑백 TV에서 컬러TV로 진화한 것이라 보면 된다. 그나마 나아진 점이라면 퀘스트 프로에서 쓸 수 있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동했을 때 그 위에 올려진 손이 흑백이 아니라 컬러라는 점이다. 퀘스트2에서 흑백으로 손을 보던 그 땐 마치 유령이 키보드에 손을 얹은 듯이 해괴했다.
너무 심한 반사 탓에 전면 사진을 찍는 데 애먹인 광택 패널로 덮은 퀘스트 프로의 앞쪽에 있는 카메라로 복잡한 외부의 모습을 흑백이 아닌 다채로운 색 그대로 거의 왜곡 없이 볼 수 있는 건 나쁘진 않지만, 그 위에 표시되는 메뉴들이 공간에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다. 그나마 넓은 공간에 띄운 메뉴는 어색하지 않지만, 가까운 벽 앞에서 연 메뉴는 형태나 기울기 등 벽에 맞춰 변형되지 않으므로 공간감도 없고 아주 어색하다. 패스스루 홈이 어색하지 않으려면 공간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맞게 메뉴 형태나 위치가 변형될 수 있게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그런 준비를 전혀 갖추지 않았다. 패스스루 홈은 퀘스트 프로의 장점은 컬러 패스스루를 활용하는 기능 중 하나면서도 동시에 그 단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퀘스트 프로를 출시하면서 메타가 실수한 또 한 가지는 패스스루 홈을 제외한 컬러 패스스루를 활용하는 기본 앱이나 기술 데모를 내놓지 못했다는 데 있다. 메타는 퀘스트 프로 출시와 함께 혼합 현실 관련 앱을 한 곳에 모아 놓은 페이지를 열었지만, 가볍게 체험할 만한 앱이 거의 없다. 심지어 마크 주커버그가 퀘스트 프로를 알리기 위해 시연해던 펜싱 게임 조차도 이 페이지에선 찾을 수 없다. 퍼즐링 플레이스, 블래스톤, 더 월드 비욘드, 피아노비전 등 혼합 현실 기능을 추가한 앱은 있지만, 정확한 공간 인지가 되는 앱은 극히 일부여서 메타가 퀘스트 프로로 보여주려는 이상적인 경험을 얻기는 어렵다.
컬러 패스스루 자체 품질도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다. 마치 스마트폰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의 뷰파인더처럼 헤드셋 앞쪽을 카메라로 실시간 캡처해 보는 것이다 보니 이미지 센서와 광학 품질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모든 부분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고해상도 영상은 아니다. 또한 노출 조절을 보고 있는 방향이 아니라 현재 있는 공간의 평균 값으로 조절하기 때문에 실내에서 창밖을 보면 바깥 밝기에 맞게 즉각 노출을 맞추지 못한다. 가끔 모니터를 볼 때도 주변 밝기에 따라 모니터가 너무 밝게 보여 헤드셋을 쓴 채 패스스루로 작업하기 어렵다. 패스스루 노출 부분에 대한 옵션을 보강할 필요가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퀘스트 프로의 컬러 패스스루는 기능이나 환경 모두 아직 설익은 수준이다. 하지만 컬러 패스스루 기능을 접어두고 기존 퀘스트2를 즐기는 환경과 비교했을 땐 훨씬 뛰어난 면도 많다. 특히 디스플레이와 광학의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헤드셋 앞쪽 두께를 줄인 새로운 팬케이크 렌즈와 미니 LED 디스플레이는 시야각이나 선명도에서 퀘스트2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 넓게 보이고 글자도 더욱 또렷하다. 디스플레이 픽셀과 픽셀 사이가 벌어지는 스크린도어 효과도 알아채기 어렵다.
가장 확실한 변화라면 퀘스트 프로를 쓴 뒤 퀘스트2를 쓰면 좌우폭이 확 좁아지는 쌍안경을 보는 것 같은 착시를 느낀다는 점이다. 퀘스트 프로 디스플레이에 한번 적응하고 나니 퀘스트2를 보는 것이 고역으로 느낄 만큼 눈이 패치되므로, 퀘스트3 전까지 퀘스트2를 계속 쓸 생각이면 퀘스트 프로는 가급적 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안경을 쓰는 이들이면 안경테로 인해 넓어진 느낌을 덜 받을 수도 있다. 때문에 퀘스트 프로의 디스플레이 이점을 확인하려면 무테 안경을 쓰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또한 퀘스트 프로 안쪽 렌즈 둘레를 따라 눈 추적을 위한 센서가 들어 있는데, 무테 안경이면 이 센서를 방해하지 않을 가능성을 높여 준다. 그렇다고 테가 있는 안경이라서 눈추적을 못한다는 건 아니어서 꼭 무테 안경을 쓸 필요는 없지만, 무테 안경이 좀더 퀘스트 프로 환경에 나을 수 있는 점은 참고했으면 싶다.
헤드셋 착용감도 좋지만 동공간 거리(IPD)도 퀘스트2보다 넓고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 조절 가능 거리는 제원상 55~75mm다. 3단계로 조절했던 퀘스트2와 다르게 퀘스트 프로는 원하는 간격을 렌즈 양옆을 밀거나 당기면 화면에 동공간 거리가 표시되고 정확한 IPD를 맞출 수 있다. 다만 양옆으로 최대 75mm까지 벌리려면 힘을 많이 줘야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퀘스트 프로에서 쓸 수 있는 눈 추적 및 표정 추적은 아바타를 쓸 수 있는 호라이즌 월드 같은 환경에서 테스트 할 수 있다. 문제라면 메타가 아직 우리나라에 호라이즌 월드를 공식적으로 서비스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물론 호라이즌 월드에 들어갈 수 없는 건 아닌데, 어쨌거나 들어갈 수만 있다면 눈동자가 움직이고 얼굴 표정이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퀘스트 프로나 퀘스트2에서 호라이즌 월드는 다운로드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미국이나 캐나다 등 호라이즌 월드를 서비스하는 국가에 VPN으로 접속한 뒤 스마트폰용 오큘러스 앱을 열어 호라이즌 월드를 찾아 다운로드를 누른 다음 퀘스트 프로를 쓰고 앱 메뉴를 열면 호라이즌 월드를 설치할 수 있다.)
호라이즌 월드 입구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말을 하거나 눈을 깜빡이고,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 아바타도 똑같이 표현한다. 혀와 눈썹 사이 주름 같은 세밀한 부분만 표현할 순 없을 뿐, 말에 따라 입모양이 변하고, 눈썹 위치, 눈꺼풀까지 실시간으로 바뀌는 게 재밌다. 가상 공간 안에서 실시간으로 아바타 표정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퀘스트 프로에선 아니다. 아바타가 참여하는 호라이즌 워크룸 같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할 때 퀘스트 프로의 눈동자 추적과 표정 추적은 아주 재밌게 쓸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퀘스트 프로 아바타끼리 가볍게 대화할 수 있는 메신저 개념의 공간이 있으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피커 품질은 퀘스트2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외장 스피커가 귀와 가까운 위치로 이동하고, 크기도 커지면서 표현력은 나아졌다. 다만 외장 스피커의 음량이 월등하게 커진 것은 아니여서 불만도 여전하다. 더구나 스피커 쪽에 손을 살짝 가져다 대면 음량이 확실하게 증가하는데, 귀마개처럼 생긴 퀘스트2용 서드파티 액세서리가 시급히 필요하다.
퀘스트 프로가 이어폰을 꽂아 소리 품질이나 음량을 보완할 수 있지만, 역시 케이블을 꽂는 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오디오 단자는 지지대 아래쪽 양옆에 모두 있는데, 모노 이어폰을 양쪽에 꽂아도 되고 스테레오 이어폰 또는 헤드폰을 한쪽만 꽂아도 된다. 블루투스 이어폰과 헤드폰은 아직 지연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컨트롤러는 가장 많은 변화를 확인할 수 있지만, 역시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단 퀘스트2 컨트롤러와 비교할 때 추적 링이 없는 만큼 훨씬 작아 보인다. 하지만 손잡이 부분과 버튼, 스틱이 있는 패널까지 크기는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손으로 잡을 때 두께는 비슷하다. 또한 배터리를 내장한 터라 이전보다 더 묵직하다. 아마도 가벼운 컨트롤러를 원했던 이들에게 이 부분은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추적 링을 없앤 프로 컨트롤러는 내장된 3개의 카메라로 촬영한 데이터를 스냅드래곤 665 프로세서로 처리해 위치를 추적한다. 추적링을 없앴음에도 컨트롤러 위치 추적은 거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특히 등 뒤로 컨트롤러를 숨기거나 책상 아래에서 컨트롤러를 다뤄도 알아챈다.
그런데 햅틱 피드백을 위한 진동 장치가 대거 추가됐음에도 이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손잡이뿐 아니라 트리거나 잡기 버튼에도 햅틱 피드백 기능이 있지만, 지금까지 다뤘던 앱 가운데 이 버튼을 누를 때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 손잡이에 있는 진동 모터는 기존 앱에서도 잘 작동한 대신 세기가 약해 몰입도를 살짝 방해한다.
흥미롭게도 프로 컨트롤러는 퀘스트2 컨트롤러에 없는 재주가 하나 더 있다. 뒤쪽 스트랩을 빼낸 다음 스타일러스 팁을 꽂아 가상 펜으로 쓸 수 있는 기능이다. 물론 이 기능도 호라이즌 워크룸 같은 앱에서만 쓸 수 있는데, 가상 환경 안에서 메모를 첨삭하거나 간단한 그림을 그려야 할 때 활용하면 좋을 부분이다.
이처럼 카메라와 고성능 프로세서로 컨트롤러는 업그레이드 됐지만, 이로 인해 컨트롤러를 떨어뜨리거나 어딘가 부딪쳐 파손될 경우 손해도 매우 크다. 컨트롤러 한 개, 두 개도 아닌 한 개 가격만 해도 20만 원이 넘기 때문에, 어떤 실수로 고장나거나 부서지면 눈물을 흘리게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잘 아껴써야 한다.
퀘스트 프로의 배터리 시간은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설정에 따라 달라져서다. 컬러 패스스루, 눈 추적, 표정 추적 옵션을 모두 켜면 배터리 소모는 빨라지고, 이 옵션을 모두 끄면 배터리 시간은 크게 늘어난다. 예를 들어 추적 옵션을 모두 켜면 영화 한편은 보기 어려운 반면, 옵션을 끄면 영화 한편 볼 시간 만큼 충분히 작동한다.
퀘스트 프로는 마치 사람 얼굴 모양을 한 전용 충전 패드에 올려 충전해도 되고, 곧바로 USB-C 단자에 케이블을 꽂아도 된다. 전용 충전 패드는 퀘스트 프로와 프로 컨트롤러를 함께 충전할 수 있다. 퀘스트 프로와 프로 컨트롤러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게 45W 전원 어댑터가 퀘스트 프로에 제공된다. 참고로 충전 패드가 없을 때 퀘스트 프로는 USB-C를 이용해 충전할 수 있지만, 프로 컨트롤러는 반드시 호환 단자가 있는 전용 충전 케이블을 써야 한다.
확실히 퀘스트 프로는 하드웨어 관점에선 잘 만든 제품이기는 하다. 완성도 높은 만듦새 및 컬러 패스스루와 얼굴 추적 같은 새롭고 풍족한 기능만 놓고 보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제품이 담고 있는 함의를 충분히 전달할 만한 주변 환경은 갖추지 못했다. 앞서 출시된 퀘스트2까진 가상 현실만 집중해도 충분했던 반면, 퀘스트 프로는 물리적 현실을 가상 세계와 얼마나 잘 혼합하느냐를 보여줘야 할 의무를 가진 제품이어서다.
처음부터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는 갖지 않았지만, 최소한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어야 했다. 과거 오큘러스에서 내놓은 개발자 킷이었던 DK1은 가상 현실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를 발판으로 오큘러스 리프트라는 상업용 버전의 디딤돌이 됐던 것처럼 말이다. 분명 메타는 퀘스트 프로에 필요한 확실한 기술 데모를 내놨어야 했다. 그랬다면 긴 설명은 필요 없는 제품이 되었을 수 있다.
퀘스트 프로가 출시 초기여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로 이해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모든 제품이 출시 때부터 완벽하게 환경을 갖춰 출시하는 건 아니어서 그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퀘스트 프로는 제품 자체를 이해하기 쉽게 해주는 요소가 너무 부족하다. 퀘스트 프로가 가상 현실 하드웨어가 아닌 혼합 현실 하드웨어라면 그에 맞는 변화도 담아야 한다. 하물며 홈 UI라도 바꿔주는 것, 물리 현실을 이용자가 원하는 맞춤형 가상 환경으로 바꾸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현 시점에서 내릴 수 있는 평가는 기존 메타의 가상 현실 애플리케이션을 놀랄 만큼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비싼 하드웨어일 뿐이다. 시간이 흘러 환경이 개선되면 이 평가는 바뀌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덧붙임 #
이 글은 2022년 11월 7일에 공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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