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 몬주익(Fira Montjuic)에서 새 전시장인 피라 그랑 비아(Fira Gran Via)로 옮긴 뒤 처음 치른 지난 해의 MWC는 너무나 어수선했다. 뇌를 뚫고 들어오는 것 마냥 강한 새 건물 냄새의 갓 세워진 전시동, 뒤죽박죽 되어 모든 위치를 새로 익혀야 했던 부스들, 예년 같지 않다는 소리를 딱 듣기 좋을 만큼 빈약했던 컨텐츠 등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해야 할 MWC는 오히려 이곳을 다녀간 모든 이에게 모바일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과제만 남긴채 끝내고 말았다.
그래도 지난 해 MWC는 그 빈약했던 컨텐츠 안에서도 HTML5 기반의 새로운 모바일 운영체제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일부러 약속한 것은 아닐테지만 파이어폭스, 우분투, 타이젠 등이 MWC를 통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안드로이드 일색이던 모바일 시장에 신선한 바람이 불 것이라는 가능성이라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이것이 바닥을 드러낸 지난 해 MWC에서 건져 올릴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이야깃거리이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모바일 운영체제의 등장은 특정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지배되고 있는 모바일 시장에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출구의 가능성을 열어 많은 이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새집 냄새도 거의 다 빠진 피라 그랑 비아에서 지난 주에 폐막한 2014년의 MWC를 취재하면서 지난 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컨텐츠의 질이나 내용이 훨씬 좋아진 반면 운영체제나 단말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졌다는 평을 듣곤 했다. 전시된 스마트폰이나 각종 장치에 목숨을 걸 듯 달려들어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았던 예년과 비교해 올해는 꽤 점잖은 풍경을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것이 옳은 평일지 아닐지는 그 평을 내린 이들만의 판단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단말이나 운영체제에 집중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주제의 다양성과 새로운 흐름들이 많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MWC의 모바일 장치의 운영체제와 단말들은 좀더 들여다 봐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지난 해처럼 HTML5 기반의 3대 운영체제 같은 딱 떨어지는 주제보다 더 폭넓게 봐야 할 부분이 생긴 점이다. 비록 HTML5 기반 운영체제들은 지난 해에 비해 이야기가 덜 됐다고는 하나 발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8.1홀에서 3홀로 부스를 이동한 파이어폭스가 25달러 스마트폰을 비롯해 100달러 미만 제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전시하며 저가 시장을 겨냥한 기세를 올렸다. 우분투는 지난 해와 비슷한 자리(8.1홀)에 그대로 자리를 유지했지만, 시제품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던 지난 해와 달리 참관객이 직접 시연할 수 있는 제품들-대부분 구글 레퍼런스에 설치-을 올려뒀다. 여기에 홍콩의 bq와 중국의 메이쥬에서 출시할 우분투 스마트폰의 목업 제품을 공개, 올해 상용 제품을 내놓을 차비를 거의 마친 상태다. 타이젠은 예상과 다르게 새로운 스마트폰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 해 외부 공간을 빌려 한시적으로 타이젠 공개행사를 잠시 한 것과 달리 올해 처음으로 MWC에 정식 부스를 8홀에 차리고 운영체제를 공개했다. 지난 해의 타이젠은 운영체제나 UI의 특징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올해 공개된 타이젠은 갤럭시 스마트폰의 터치 위즈 UI와 다른 편의성을 강화하고 위젯의 기능성을 보강해 안드로이드와 차별화하고 있음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이러한 HTML5 기반 운영체제의 진화보다 재미있게 본 것은 탈 구글 현상이다. 이는 탈 안드로이드와 구분지어서 봐야 할 대목이다. 분명 이번 MWC는 여전히 안드로이드의 강세였다. 수많은 제조사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채택한 제품을 내놓았으까.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안드로이드 오픈 소스 프로젝트(AOSP)를 통해서 파생된 다른 안드로이드다. 노키아와 OPPO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고, AOSP를 통해서 자체 운영체제를 만들고 이를 탑재한 제품들을 전시했다. 특히 노키아 X는 구글 서비스 중 일부를 MS의 서비스로 대체하고 자체 구축한 서비스를 얹어 저가 제품으로 출시했다. 구글의 서비스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오픈소스라고 불러왔던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답게 이용한 것은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다. 또한 세일피쉬 운영체제를 얹어서 내놓은 욜라 스마트폰도 구글과 거리를 둔 제품이다. 인텔과 노키아가 함께 만들던 미고(Meego) 운영체제가 공중분해된 이후 주요 기술은 타이젠으로 옮겨갔지만, 미고의 핵심 인력들은 따로 나와 노키아의 지원 아래 세일피쉬라는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그 세일피쉬를 얹은 욜라폰의 모든 서비스와 기능들, UI의 경험들은 대부분 구글과 다른 방식으로 적용한 것도 좀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색다른 폼팩터에 도전하는 제품도 여럿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 제품은 단연 요타폰2. 스마트폰의 앞과 뒤에 성질이 다른 두 개의 화면을 붙였다. 앞은 5인치 AMOLED를, 뒤는 4.7인치 e페이퍼 디스플레이를 넣었다. AMOLED 화면을 통해 색이 들어간 컨텐츠를 즐기는 반면, 4.7인치 e페이퍼 디스플레이는 빛의 반사를 이용해 화면을 보는 만큼 활자화된 컨텐츠를 보는 데 적합하다. e페이퍼 디스플레이도 터치가 모두 작동할 뿐만 아니라 이 화면만 이용하면 스마트폰의 배터리 시간을 좀더 늘릴 수도 있다. MWC에서 처음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고성능 카메라를 앞뒤 180도로 회전시키는 OPPO N1도 볼거리 중 하나였고, 스마트폰을 꽂아야만 태블릿이 되는 에이수스의 패드폰 미니도 완성도를 높여 공개했다. 특히 에이수스는 모든 모바일 제품을 인텔 아톰 기반 SoC로만 만들었는데, 이번에 출품된 대부분의 모바일 제품이 ARM 계열의 처리 장치를 싣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호환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파격적인 도전을 한 셈이다.
이처럼 MWC 2014에서 본 모바일 세상은 그리 심심하지 않았다. 운영체제의 진화와 기존의 틀에 대한 반항, 새로운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인한 파열음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물론 종전의 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진화를 택한 진영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이러한 도전들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에 이들의 미래는 어쩌면 어두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깨고 부술 때 나는 시끄러운 파열음이 아니라 화려한 불꽃놀이의 폭죽이 터지는 즐거운 소리다. 성공과 실패를 미리 단정하듯 냉정하게 시선으로 쏘아보고 분석하기보다 어떤 흐름을 만들고 바꿀 수 있는 우리의 선택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반가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부족한 시대에서 잃어버린 질서와 그것을 정리할 수 있는 이용자들의 선택권을 되찾을 수 있는 수많은 노력들에 환호하고 이들의 앞날을 지켜보며 선택할 때 정말 즐거운 모바일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MWC의 속삭임이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아직 들리는 듯하다.
덧붙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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