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WC를 참관하는 거의 모든 참관객들은 입장 배지를 목에 걸고 입장한다. 그런데 MWC 배지를 목에 걸기 위한 빨간 목줄을 유심히 보면 기업 로고가 새겨져 있다. 바로 화웨이의 로고다. MWC를 후원하는 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내는 메인 스폰서 가운데 하나인 화웨이가 목 줄에 자사 로고를 넣어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MWC의 화웨이 목줄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화웨이 목줄을 걸고 입장하는 것은 올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매년 가장 큰 규모의 스폰서를 유지할 만큼 매출이나 사업 영역이 넓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잘 전해지지 않았던 것일 뿐, 이곳에서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스폰서 마케팅을 통해 화웨이의 규모를 짐작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MWC에 부는 중국 스마트폰의 거센 도전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화웨이와 ZTE처럼 MWC의 단골로 인식되는 중국 제조사보다 실제 중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참여 여부에 따라 그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는 일이 있어서다.그 영향력이 가장 컸을 때가 지난 해. 낯설긴 했어도 오포(OPPO)를 포함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의 부스를 보면서 이제 중국 스마트폰이 밖으로 나오는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생각됐을 정도다.
그러나 이번 MWC에서 지난 해 7관의 일부를 장악했던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있던 자리에 갔을 때 ‘어? 오포가 없네?’, ‘그 옆에 중국 있던 중국 업체가 있었는데…’라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곳에서 중국 제조사를 찾을 수 없어서였다. 기억이 아직도 또렷한 오포의 부스에는 전혀 낯선 업체들이 들어 앉았고, 새로운 중국 제조사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도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샤오미는 MWC에 나올 수 없는 조건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제조사이기에 샤오미 부사장인 휴고 바라가 일부 행사에 참석한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 메이쥬는 우분투용 MX4와 칭화 텔레콤 부스에서 안드로이드 MX4를 대신 전시한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들 업체의 불참은 MWC에서 화웨이, ZTE, 레노버 같은 MWC의 단골 중국 제조사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도록 만들었다. 비록 통신 장비 시장에서 펄펄 날고 있으나 이들도 따지고보면 스마트 장치 분야에서는 강력한 추격자일 수밖에 없는 제조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업 구조의 재편으로 스마트 장치의 매출 비중을 조금씩 높여 온 터라 이들이 얼마나 이용자에게 친숙한 제품을 만들지 더 기대케 했다.
하지만 MWC에 내놓은 이들의 스마트 장치들은 그 기대를 충분히 채운 인상은 아니다. 화웨이는 대부분 지난 해 출시했던 화웨이 메이트 7 같은 플래그십과 화웨이 G, 화웨이 Y 같은 중저가 제품을 내놨고, 화웨이 워치와 화웨이 밴드톡 B2 같은 웨어러블에 더 집중했다. 미디어 패드 X2라는 7인치 풀HD 태블릿도 선보였으나 태블릿의 주목도가 낮아진 데다 화웨이 워치에 밀려 많은 주목을 받진 못한 인상이다.
ZTE는 스마트 장치 부문의 전략을 가늠하기 어려운 제조사 가운데 하나다. 확실히 그들은 추종자의 위치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제품은 어딘가 어설프다. 삼성 갤럭시 S6를 따라가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만듦새나 제원에 제법 신경 쓴 ZTE 스마트폰의 이름이 블래이드 S6라는 것에서 쓴웃음을 짓게 했다. 그 밖에 중저가 라인업의 제품들은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그 완성도를 고민하게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레노버라도 체면을 세우긴 했다. 레노버는 바이브 샷과 A7000이라는 만듦새와 기능, 성능에 각각 초점을 둔 새 제품을 MWC에서 공개했다. 바이브 샷은 카메라 기능을 특화, 카메라와 같은 생김새에 셔터 버튼을 따로 둔 제품이다. A7000은 딱히 뛰어난 제원이 아니어도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를 처음 적용한 것이 눈에 띈다. 두 제품 모두 플래그십이라 부르긴 애매한 제원이긴 하나 만듦새나 기능의 개성이 있는 제품들이었다.
화웨이, ZTE, 레노버가 중국발 제조 돌풍을 MWC까지 끌고 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현실을 볼 수 없던 것은 아니다. 선전을 비롯해 제조 산업이 활발한 중국의 몇몇 도시를 대표하는 제조 업체들이 6관에 모여 중국 부스를 운영한 것. 비록 저가 제품들과 이른바 복제품이 대부분이지만 값싼 제조 인력과 부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중국의 또 다른 현실을 이곳으로 옮겨 놨다는 점은 눈여겨 볼 부분이다. 그렇다해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한계는 이들도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에서 스마트폰 돌풍을 이끌고 있는 제조사들이 MWC에 나오지 않는한 그 파괴력을 체험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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