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상해에서 열린 HP 글로벌 인플루언서 서밋 2012의 6개 브레이크다운 세션 가운데 한 세션은 온전히 HP 프린터를 위해서 마련된 것이었다. 제품과 기술,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눈 다른 세션과 다르게 HP의 앨리슨 그레이스 인플루언스 그룹 담당자는 1시간 동안 할애된 이 세션에서 이와 같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출력물이 없는 세상에서 산다면?”
프린터 전문 기업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질문이다. 프린트 된 출력물이 없는 세상은 더 이상 프린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일 테고, 이는 결국 HP의 커다란 먹거리 중 하나가 사라진다는 간단한 결론에 이른다. 물론 프린터가 없어지는 것과 프린팅 기술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프린팅 기술은 단순히 출력물을 뽑는 게 아닌 회로 기판의 인쇄와 같은 이미 다른 산업과 접목되었으니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된 배경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지난 해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프린터 신제품 발표회에서 “앞으로 우리는 계속 프린팅을 하게 될까?”라는 수많은 의문이 섞인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배경은 매우 단순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 패드 같은 모바일 장치가 흔해지면서 개인용 프린터에 대한 의존도가 약해지고 있는 것을 우려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HP는 이러한 단순한 의문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그에 대한 답을 이 세션에서 보여주고자 했다. 프린트 물이 없는 세상을 실제로 구현해 그것이 얼마나 큰 불편을 초래하는지 실험한 뒤 그것으로 얻은 결론을 이 세션에서 읊었던 것이다. 그 실험 방법과 결론들을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오, 이런… HP가 이런 무리수를 두다니!”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실험은 이랬다. 샘플이 될 미국의 한 마을을 골라 그 마을에 있는 모든 물품에 붙은 출력물을 빠짐 없이 떼어 버렸다. 단순히 가정용, 사무용 프린터의 출력물만 없앤게 아니라 간판은 물론 빨래용 세제와 와인 병에 붙어 있는 프린트 라벨을 제거했고, 심지어 귀여운 캐릭터를 새긴 아이 티셔츠까지 없앤 것이다. 사람들은 출력물이 없는 모든 물품에 펜과 종이로 표시를 남겨야 했다. 결국 이 실험을 통해 HP는 사람들이 얼마나 프린트 물을 가깝게 접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편리한 일상 생활을 즐기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는 성공적인 결론을 얻는데는 성공했다. 이 실험에 참가했던 이들은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HP에게 전했다.
“프린트가 없는 세상은 눈먼 세상 같다.”
“프린트가 없는 세상은 정리가 되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프린트가 없는 세상은 외롭고 뿌리가 없으며 홍수 속에서 헤매는 것 같다.”
“프린트가 없는 세상은 무엇인가 성취한 것을 확인할 수 없고 내가 누군지 알기 어렵다.”
“프린트가 없는 세상은 어쩐지 안락함이 없고 허공을 헤매는 느낌이 있다.”
“프린터가 없는 세상은 고립되고 연결고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프린터가 없는 세상은 깊이가 없고 혼자만의 세상에 사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결론을 얻기 위해 했던 일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 극단적인 상황에서 출력물의 가치를 일깨우고자 했던 탓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출력물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을 고민하고 있지 않은 데, 하루 아침에 모든 출력물이 없는 그런 세상에 살아보라는 급진적 실험으로 인한 위협이나 나름 없어서다. 특히 위 피실험자들의 말에서 읽을 수 있는 불안한 정서는 사실 우리 일상에 영향을 주는 어떤 것이 없어져도 나올 수 있는 반응일 것이다. 이는 단지 출력물 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을 하루 아침에 없어졌을 때에 보이는 공통된 반응일 수도 있다.
때문에 HP가 프린팅의 가치를 중요하게 강조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이번 실험과 그 결과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 그들은 왜 프린팅이 필요없는 세상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 증명하려 했지만, 실험 방법과 결론을 받아들이기 힘든 때문이다. ‘왜 프린팅을 하지 않는가?’, ‘왜 우리 주변의 고전적인 출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가?’ 작은 의문에 대해서 이러한 방법으로 설명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부분이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이번만큼은 HP의 질문과 답이 잘못됐다.
덧붙임 #
HP는 이번 실험을 독립 영화로 제작해 곧 상영할 예정이다.
프린터를 만드는 HP라서 그렇겠죠?
만약, 디스플레이를 제조하는 회사였다면 프린터없이도 출력물보다 가볍고 빠르고 깨끗하고, 친 환경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디스플레이의 약점은 전기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치명적이고 전기를 친환경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현실을 따지면 그다지 친환경이라 말할 수 없을지도.. ^^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수많은 프린트물을 접하고 살아갑니다. 매일 읽는 신문이나 책은 물론이고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광고물, 표지판, 그리고 우리가 입고 있는 옷도 역시 프린팅의 결과물이죠. 제가 좋아하는 와인병에도 프린트를 이용한 라벨이 붙어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나 사탕 봉지도 예외없이 프린트 기술을 이용해 제작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 프린트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참으로 볼품없는 세상이 될것 같습니다. 예쁘게 프린트된 라벨대신 손으..
이 무슨……
출력물이 없는 세상을 꿈꾸기는 하지만, 대개 많은 사람들은 일상에서 접하는 A4 용지 종이를 생각하지 않나 싶네요.
무리수 인정! 🙂
네. 대개는 집에 있는 프린터를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출력물이 줄어드는 시장이 있는 반면 여전히 꼭 필요한 시장도 있는 법이지요. 꼭 필요한 시장이라도 잘 지키는 게 순리인 듯.. ^^
요즘 HP가 HP뿐만 아니라 MP도 딸리는거 아닐까 의심이 조금 드네요 ^^; (음.. 무리수인가요? ㅋㅋ)
프린팅은 감소하진 않고 단지 유형이 바뀌지 않을가 싶어요.
어떻게 보면 프린팅이 오피스가 아닌 팬시로 바뀌고(인스탁스의 부활처럼)
아기자기한 라벨 프린트로 변화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어짜피 ebook이나 epaper 가 충분히 저렴해지고 영화에서 처럼 제스쳐로
다른 장비로 문서를 편하게 공유해줄수 있다면 사무환경에서의 종이는 효용이 많이 떨어질테니 말이죠.
hp가 프린팅 분야를 세분화해서 그 시장 상황과 제품을 이야기해오던 관례와 많이 달라서 생기는 충돌이기도 합니다. 사무나 상업쪽에서의 프린팅은 여전히 유효한 반면 가정용은 교육 시장의 압박을 제외한 나머지 환경에서 출력이 스마트 장치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미치는 부정적 인식을 차단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긴 해요. 아무튼 무리수는 분명한.. ^^
@구차니님//
구차니님의 농담이 너무 재밌네요.ㅋㅋ”
저작권 허락 없이 다음에 써먹겠습니다. 😀
=3=3=3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