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GTC 2020, 컴퓨팅 시장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다

과거 엔비디아라면 게임을 위한 고성능 그래픽 카드를 떠올리는 대명사였다. 만약 지난 몇 년 동안 엔비디아가 3D 그래픽과 AI를 위한 GPU 기술 기업으로 이미지를 바꾸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그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었을 지 모른다. 이는 엔비디아는 GPU를 중심에 둔 컴퓨팅 분야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탈바꿈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특히 지난 9월 400억 달러에 ARM 인수를 확정하면서 엔비디아는 컴퓨팅 기업으로 변화를 가속할 수 있게 됐고, 지난 10월 5일부터 9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한 하반기 GPU 기술 컨퍼런스 2020(이하 GTC 2020)에서 변화의 이유를 이야기했다.

AI 위해 체질을 바꾼 성과가 나타나다

지난 2015년 CES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엔비디아는 테그라 X1(Tegra X1)이라는 모바일 SoC(System on Chip)를 발표했다. 얼핏 보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모바일 제품에 탑재되는 작은 SoC였지만, 이후 엔비디아의 발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제품을 기반으로 만든 것은 스마트 장치가 아니라 자동차용 제품인 드라이브 PX와 드라이브 CX라는 시스템이었다. 엔비디아는 이 제품을 공개하는 동시에 처음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다.

PC용 그래픽 카드나 모바일을 위한 프로세서가 아니라 자동차 제품을 만드는 엔비디아는 정말 어색했지만, 확실히 달라진 미래로 나아가는 시발점으로 이해한 것은 한참 지난 뒤의 일이다. 이듬해 CES는 컴퓨팅 및 자동차 업계의 강자들이 연합한 자율주행자동차 분야의 장밋빛 청사진으로 물들었고 여러 컴퓨팅 기업과 자동차 기업들의 제휴 발표가 활발해졌고, AI는 지금도 CES 같은 대규모 전시회의 핵심 키워드로 활용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하반기 GTC 2020에서 공개한 기술들(이미지 출처 : 엔비디아)

이 때 엔비디아는 자율주행의 핵심이 되는 AI 컴퓨팅의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추론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규모 기계 학습에 필요한 도구들을 동시에 꺼내놓았다.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계 학습을 진행하는 데이터 센터에 알맞은 GPU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를 쓸 수 있는 여러 소프트웨어 도구를 준비해 이를 차 안의 자율주행 컴퓨터에 연동하는 흐름도를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자율주행에 필요한 능력을 갖출 기계 학습과 이를 실행하는 추론 시스템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엔비디아도 그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의 사업이 전개된다. AI를 위한 다양한 컴퓨팅 제품군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뛰어난 그래픽 처리 능력을 가진 GPU 칩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고 제조사에 공급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AI 학습과 추론이 필요한 분야에 당장 적용 가능한 AI 컴퓨팅 제품들을 내놓았다. 새로운 GPU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분야는 물론 사물인터넷 및 로봇, 연구실, 데이터 센터 등 기계 학습 프레임워크로 작업하는 여러 환경에 맞게 변형한 GPU나 SoC를 탑재한 컴퓨팅 제품을 해마다 내놓은 것이다. 비록 자율 주행으로 시작했지만 사회 전반에 불어 닥친 AI 흐름에 재빠르게 대응하면서 엔비디아는 자연스럽게 AI 컴퓨팅 제품 기업으로 바뀌어 갔다.

엔비디아가 AI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내놓은 각종 도구들. (이미지 출처 : 엔비디아)

이러한 변화의 결과는 엔비디아의 매출 현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율주행에 대한 논의 이전이었던 2015년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게이밍을 위한 그래픽 카드가 엔비디아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 지는 구조(게이밍 20억 5천800만 달러, 데이터 센터 3억1천700만 달러, 차량 부문 1억8천300만 달러)였다. 이후에도 여전히 게이밍 분야는 엔비디아의 주요 캐시 카우로 남아 있다. 하지만, AI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던 2017년 데이터 센터(8억3천만 달러)와 차량 부문(4억8천700만 달러) 매출이 증가했고, 2020년 데이터 센터 29억8천300만 달러, 차량 부문 7억 달러를 기록하며 매출 비율을 바꿔 놓았다. 비록 2020년 5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긴 했어도 성장이 정체된 게이밍 부문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결국 엔비디아는 AI를 필요로 하는 분야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프로세서와 더불어 시스템, 알고리듬, 각종 소프트웨어 도구, 그 밖의 생태계 구성 요소를 구축하고 체질을 완전히 바꿨고, 엔비디아 CEO 젠슨 황도 온라인 GTC 2020에서 이를 강조했다. AI는 개발 방법이나 컴퓨팅 인프라, 도구, 소프트웨어 실행 방법, 배포 방법까지 다른 만큼 기존의 컴퓨팅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엔비디아가 AI 환경에 맞춰 모든 요소를 갖춘 AI 풀 스택 컴퓨팅 기업이라는 선언을 한 것이다.

AI와 GPU를 이용해 영상 전송 대역폭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엔비디아 맥신(이미지 출처 : 엔비디아)

이같은 엔비디아 CEO의 선언은 단순한 주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미 그래픽스, 고성능 컴퓨팅, 데이터 사이언스와 분석, 인공지능, 헬스케어, 자율주행, 로보틱스, 5G 엣지 등 수많은 데이터의 처리를 자동화하기 위한 훈련된 AI를 도입하려는 분야마다 엔비디아의 AI 컴퓨팅 제품이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즉, 엔비디아에서 만든 플랫폼 개발 도구를 이용해 엔비디아의 컴퓨팅 파워를 손쉽게 활용하면서, 모든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엣지에 있는 엔비디아 장치에 소프트웨어를 쉽게 배포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하반기 온라인 GTC에서 AI 풀 스택 컴퓨팅 생태계를 확고하게 다지기 위한 전략적 제품과 솔루션을 쏟아낸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GTC 2020에서 눈에 띈 것은 AI를 활용해 서비스 개발을 가속할 수 있는 엔비디아 AI 애플리케이션들이다. 의료 연구를 위한 엔비디아 클라라 디스커버리(Clara Discovery)를 비롯해, AI 기반의 추천 시스템을 만드는 멀린(Merlin), 영상 통화를 위한 대역폭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맥신(Maxin),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대화형 AI 서비스를 위한 엔비디아 자비스(Jarvis) 등 오픈 베타를 시작해 기업들에게 제공되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한 신약을 찾기 위해 데이터 분석으로 10의 60승개 화합물 중 약물 후보를 선별하는데 컴퓨팅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엔비디아)

또한 수많은 AI 제품과 솔루션이 인류를 위해 쓰일 수 있는 노력으로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해 영국에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를 구축한다는 발표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엔비디아는 케임브리지-1(Cambridge-1)라는 이름을 가진 400페타플롭의 DGX 슈퍼포드로 구성된 슈퍼컴퓨터를 영국 헬스케어 연구진에 제공하고, AI를 활용해 코로나19를 포함한 의료 분야의 시급한 사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를 연구하는 기업인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와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의료 기관인 가이스&세인트 토마스 영국국가보건서비스(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Guy’s and St Thomas’ NHS Foundation Trust),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of London), 옥스포드 나노포어(Oxford Nanopore)가 케임브리지-1을 이용해 좀더 안전한 백신과 치료제를 연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이보다 앞서 클라라 디스커버리를 기반으로 엔비디아와 매사추세츠 제너럴 브리검 병원(Massachusetts General Brigham Hospital) 연구진이 코로나19 증상으로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에 대해 초기 검사만으로 산소 보충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AI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반기 GTC 2020에서 공개한 엔비디아의 주요 제품과 파트너십

제품/파트너십

설명

DGX 슈퍼포드(DGX SuperPOD)

기업들이 강력한 AI 슈퍼컴퓨터를 획기적인 속도로 단 몇 주 만에 구축하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엔비디아의 AI 슈퍼컴퓨터인 엔비디아 DGX A100을 한 단위당 20대씩 묶어 100페타플롭의 성능을 보장하고, 복잡한 AI 작업을 처리할 수 있도록 최대 140대의 DGX A100 시스템을 연결해 700페타플롭의 성능을 낸다.

엔비디아 클라라 디스커버리(Nvidia Clara Discovery)

의료 연구자를 위한 가속 및 AI 도구 라이브러리. 이미징, 방사선학, 유전체학 기술을 하나로 결합해 헬스케어를 위한 최대 연산 업무용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전 훈련된 AI 모델 및 특정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화합물 구축과 대응 개발 등으로 차세대 신약 발견 프로세스를 정의할 수 있다.

엔비디아 멀린(NVIDIA Merlin)

오픈 베타 AI 기반의 추천 시스템으로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기반으로 추천 모델을 실험하고 실제 적용까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다. 상품 구매에 연결되도록 각 서비스의 추천 알고리듬의 수준을 높이고 짧은 지연 시간, 높은 처리량, 생산 추론을 돕는다.

엔비디아 맥신(Nvidia Maxin)

영상 통화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클라우드 기반의 스트리밍 비디오 AI 플랫폼으로 AI로 얼굴의 중요한 특징을 찾아내 그 변화만 전송한 뒤 수신 측에서 얼굴을 다시 합성해 표시한다. 이를 통해 원본의 전송 크기를 10배 가까이 절감할 수 있고 송신자가 카메라를 정확하게 바라보지 않아도 수신 측에서 AI로 합성할 때 정면 이미지를 표시한다.

텐서RT 7.2 출시(TensorRT 7.2)

130만 번 다운로드되어 1만 6천 개 회사에서 사용 중인 텐서RT의 최신 버전. 2천 개 이상의 커널과 레이어를 최적화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에 엔비디아 AI 적용

엔비디아 AI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 적용해 스마트 문법 교정, Q&A, 텍스트 예측 기능을 제공하고, 이용자의 엔비디아 GPU를 애저에 연결해 200ms 이하의 응답 속도로 결과를 알려준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부정 탐지에 엔비디아 AI 도입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일어나는 매일 수천만 건의 거래에 대해 엔비디아 AI를 이용, 2ms 이내에 거래를 처리하는 동시에 부정 거래를 즉각 탐지한다.

엔비디아 자비스(Nvidia Jarvis) 오픈 베타

자비스는 대화 능력을 가진 엔비디아 AI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를 이용해 자연스러운 음성을 가진 대화형 AI를 만들 수 있다. GPU를 이용해 응답 속도를 300ms로 높였고, 엔비디아 타코트론(TacoTron)으로 음성을 합성하고 엔비디아 웨이브글로우(Waveglow)로 음성 인코딩을 해 전송한다.

VM웨어 및 클라우데라(Cloudera) 파트너십

AI 컴퓨팅을 요구하는 기업에 대응하기 위해 VM웨어 가상화와 클라우데라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VM웨어는 가상화 환경에서 엔비디아 AI를 제공하고, 클라우데라는 데이터 분석에서 엔비디아 AI로 가속해 전세계 기업에 서비스한다.

젯슨 나노(Jetson Nano) 2GB 개발자 키트

젯슨 나노는 지능형 사물 인터넷이나 지능형 로봇 등 AI로 작동하는 엣지 제품을 개발하거나 교육할 수 있는 만든 초소형 AI 플랫폼이다. 새로운 젯슨 나노는 2GB 메모리로 공급되고 59달러에 판매된다.

블루필드 2(Bluefield 2) DPU 및 로드맵 발표

증가하는 데이터 센터의 트래픽과 마이크로서비스로 인한 네트워크 부하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래밍 가능 ARM 프로세서다. 블루필드 2 DPU는 2021년부터 공급을 시작하고, 2024년까지 블루필트 4를 공개할 예정이다. 개발자들은 DOCA(Datacenter infrastructure on a chip) SDK를 통해 데이터를 서버나 가상 머신 또는 컨테이너 안팎으로 이동하기 위한 데이터 처리 가속화를 위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

 

ARM과 함께 하는 미래를 말하다

지난 몇 달 동안 소프트뱅크가 ARM을 매각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 어느 기업이 소유권 이전 문서에 최종 서명을 남길지 IT 업계의 관심은 매우 뜨거웠다. ARM은 모바일과 사물 인터넷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프로세서의 IP를 설계해 온 터라 관련 기업들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데다 인수 기업의 성향에 따라 ARM 생태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민감한 문제였다. 때문에 인수 가능성을 가진 수많은 기업들이 이름이 흘러 다녔지만, 계약 문서에 남은 이름은 엔비디아였다.

엔비디아는 지난 9월 ARM 인수를 확정했지만, 당시 ARM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ARM은 수많은 처리 시스템의 IP만 설계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중립적 생태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ARM에 대한 엔비디아의 입장 정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엔비디아는 그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입장을 하반기 GTC 2020에서 아주 짧게 정리했다. 엔비디아은 ARM에 향후 계획을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ARM 파트너 강화, 둘째, ARM 제품 생태계 및 플랫폼 확대, 셋째, PC 그래픽 IP를 ARM으로 이전 등이다. 고작 세가지 뿐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이 내용을 들여다 보면 매우 의미 심장하다.

먼저 강화할 파트너를 보자. 엔비디아는 GPU, 네트워킹, 스토리지 보안 기술 분야의 파트너라고 콕 짚었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모바일이나 사물 인터넷 파트너십과 별도로 ARM의 새로운 시장을 위한 파트너를 확대한다는 의미다. 이 파트너의 활동 영역은 대형 컴퓨팅 분야다. PC부터 데이터 센터에서 활동하는 제조사나 서비스 사업자가 그 대상이다.

이는 기존 ARM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다. ARM이 저전력 수요가 강한 모바일이나 사물 인터넷에서 큰 역할을 해 왔지만, 여전히 강력한 처리 성능을 기반으로 하는 PC나 데이터 센터 시장으로 확장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었다. ARM 기반 프로세서 성능이 해마다 향상되어 왔지만, 성능에 대한 신뢰와 기존 응용 프로그램의 호환성에 대한 의문 제기로 시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구조에 변화를 주기 위한 방법으로 핵심 요소에서 ARM 기술을 활용할 파트너십 강화를 먼저 언급한 것이다. 다만 이번 발표에서 파트너 기업을 구체적으로 발표하진 않았다.

엔비디아는 400억 달러에 인수한 ARM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고 적용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공개했다. (이미지 출처 : 엔비디아)

ARM 제품 생태계 및 플랫폼 확대는 이러한 ARM 파트너와 함께 만들겠다는 것이 엔비디아의 입장이다. 엔비디아는 이미 몇몇 파트너와 HPC, 클라우드, 엣지, PC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고 하반기 GTC 2020에서 밝혔다. 단순히 엔비디아와 ARM 기반의 부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컴퓨팅 장치를 구성하는 칩과 시스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지금까지 ARM의 IP를 쓸 수 있는 면허를 구입해 자체적으로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사용했던 사업 방식과 상당히 다른 접근으로 엔비디아가 PC나 고성능 컴퓨팅 시장 등 특정 시장에서 직접 개발한 프로세서나 칩을 공급하고 시스템 사업자가 관련 제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방식을 예상할 수도 있다.

물론 엔비디아가 당장 CPU를 대체제를 공급하진 않을 것이다. 일단 CPU의 역할을 줄이는 작업에서 ARM 제품의 효율성부터 보여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제품이 하반기 GTC 2020에서 공개한 블루필드 2 DPU다. 데이터 프로세싱 유닛(Data Processing Unit)을 줄인 DPU는 그 자체로도 프로세서지만, 범용적인 역할 대신 네트워크 교환되는 데이터를 감시하고 선별하는 작업을 맡는다. 스마트NIC 같은 네트워크 어댑터에 탑재되는 DPU는 차세대 방화벽, 마이크로 세분화, 투명한 IPSec 및 TLS를 통한 인라인 암호화, 침입 방지에 대한 지원 등 보안 솔루션의 모든 구성 요소를 포함하는 전용 보안 엔진 세트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 센터의 하이퍼바이저 가상화 환경에서 네트워크 트래픽 감시를 위해 CPU 사용을 20~30% 줄이고 그 만큼 더 애플리케이션 성능 향상으로 돌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엔비디아는 VM웨어가 블루필드를 도입 중으로 가상화 컴퓨팅에서 더 나은 성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엔비디아 그래픽을 ARM에 적용하겠다는 셋째 대목이다. 구체적으로 엔비디아의 PC 그래픽 기술 가운데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Ray tracing) 같은 기술을 ARM에 포팅할 계획까지 공개했다. 태양이나 전등 같은 빛의 성질이나 위치에 따라 사물의 반사나 그림자의 위치와 길이가 달라지는 것처럼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은 3D 그래픽에 빛 효과를 즉각 반영해 실시간 렌더링하는 그래픽 기술을 모바일에 접목하겠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ARM보다 앞서 인수한 멜라녹스 기술을 활용해 블루필드 DPU를 개발했고, 이를 통해 ARM의 역할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미지 출처 : 엔비디아)

이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할 때예상됐던 시너지 효과 중 하나다. 지금 대부분의 모바일 프로세서는 ARM의 그래픽 IP인 말리를 GPU로 쓰고 있으나 여전히 그래픽 품질이나 효과가 PC 그래픽에 미치지 못한다. 모바일 GPU가 전력 효율성을 고려해 설계되는 한계도 있지만, GPU 설계에 대한 기본적인 실력차도 존재해서다. 때문에 말리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시점에서 엔비디아에 합류하게 되어 그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그런데 엔비디아 입장에서 모바일 시장에 자사의 GPU IP를 공급하는 것은 두 가지 고민을 동시에 해소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먼저 모바일 시장에서 엔비디아 그래픽 IP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모바일 분야에 GPU IP를 공급하고 싶었으나 ARM 인수 이전까지 이에 호응하는 파트너를 만나지 못했다. 때문에 테그라 같은 GPU 성능이 뛰어난 모바일 프로세서를 직접 만들고 관련 제품까지 생산했지만, 엔비디아 GPU 기술을 탑재해 좀더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는 길은 찾지 못했다. 이제 엔비디아가 ARM에 결합할 수 있는 고성능 GPU 설계를 선보이면 ARM 기반으로 만드는 고성능 모바일 프로세서 기업들에게 새로운 더 나은 성능의 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하나는 그 동안 x86으로 대변되는 PC 아키텍처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는 레이트레이싱 같은 기술을 x86 시스템에서만 쓸 수 있었으나 이제 ARM 플랫폼에서 가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는데, 이를 풀어보면 인텔이나 AMD 등 x86 시스템 없이 엔비디아 GPU 기술을 쓰지 못하므로 그 생태계에 묶여 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ARM 생태계로 레이트레이싱 같은 그래픽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생태계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컴퓨팅 시장의 지각 변동의 열쇠를 갖다

아마도 아직 엔비디아에 대한 대체적인 시각은 GPU 전문 기업으로 머물러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GPU 역시 컴퓨팅의 매우 중요한 요소긴 해도 이를 컴퓨팅의 핵심이 아닌 보조 시스템으로서 여기는 것이 오랜 상식처럼 남아 있어서다. 여기에 1968년 설립되어 컴퓨팅 역사의 대부분을 써왔던 인텔이나 대중적 운영체제로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하면 1993년에 설립된 엔비디아가 컴퓨팅 기업으로 이미지를 전환할 계기가 최근에 만들어진 터라 그 변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남아 있을 것이다.

기존 GPU를 중심에 뒀을 때와 달리 AI 시대를 주도하면서 엔비디아 생태계는 급격하게 확장되는 중이다. (이미지 출처 : 엔비디아)

하지만 지금 엔비디아는 매우 드라마틱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 AI가 모든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한 이후 이를 처리하는 방식이나 프로그래밍에 대한 기존의 컴퓨팅 상식을 바꾸는 시점에서 그 흐름을 그저 좇는 것이 아닌 주도하기 위한 모든 일을 하고 있다. 효율적인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는 모든 컴퓨팅적 요소의 구축과 아울러 고착화되어 있던 기존 컴퓨팅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여건까지 마련했다. 때문에 GPU로 시작했고 그 이미지가 지금 엔비디아를 지배한다 해도 AI와 전력 효율이 강조되는 컴퓨팅 시대를 지속하는 동안 엔비디아는 새로운 이미지를 쌓을 기회를 충분히 얻지 않을까?

덧붙임 #

  1. 이 글은 KISA 리포트 2020.10에 기고한 것으로 편집본은 KISA 리포트 자료실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2. 이 글은 2020년 11월 2일에 이 사이트에 공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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