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헤드셋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지만, 페이스북은 단 하나의 관점을 줄곧 주장해 오고 있다. VR이나 AR 헤드셋이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을 위한 컴퓨팅 장치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컴퓨팅 작업들은 PC나 스마트폰 같은 컴퓨팅 장치를 이용해 처리하지만, 그러한 작업의 유형이 바뀌지 않더라도 그 일을 하게 될 공간과 행동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인터페이스 장치가 필요하기 마련이고 그런 역할을 앞으로 가상 현실 헤드셋이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공간 기반의 새로운 컴퓨팅 세상 안에서 일을 하더라도 그 이전의 작업 방법을 모두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끊임 없이 진화하는 컴퓨팅 기술과 하드웨어로 변화된 세상으로 이끌고 있으나 종전에 나왔던 컴퓨팅 기술을 활용하는 PC나 스마트폰 같은 장치를 이용한 작업 방법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가상 현실 헤드셋을 쓰고 공간 안에서 일을 하더라도 이 방식을 도입하지 않으면 다양한 일들을 처리하기 어렵다. 가상 현실을 위한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나오더라도 기존의 작업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과 도구 없이, 무한한 디스플레이를 활용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의 쓰임새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필요한 대안을 오큘러스 플랫폼에 적용하기 위해서 준비해 왔다. 특히 오큘러스 커넥트 5에서 페이스북은 VR 헤드셋을 쓴 채 가상 공간에서 PC와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무엇을 연구 중인지 설명했고, 2년 뒤에야 실제 적용 가능한 인피니트 오피스(Infinite Office)를 선보였다.
인피니트 오피스는 무엇인가?
인피니트 오피스는 지난 2020년 9월 17일에 열린 페이스북 커넥트에서 발표됐다. 당시 발표한 인피니트 오피스는 이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인피니트 오피스는 이용자가 매우 하루 종일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이 어디든 생산성과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작업 환경이다. 인피니트 오피스는 가상과 실제 현실을 아우르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가상 현실은 모니터를 대응하고 실제 현실은 이와 연동하는 키보드 같은 작업 도구를 연결한다. 즉, 가상 공간의 대부분을 모니터로 활용하면서 손 추적으로 다양한 개체를 다루는 작업을 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실제 키보드로 글자 입력을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키보드를 함께 이용할 때다. 인피니트 오피스는 물리 키보드를 연동할 수 있다. 그런데 이용자는 물리 키보드를 이용하기 위해 VR 헤드셋을 벗을 필요가 없다. 가상 공간을 분할해 하단부에 외부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가상 공간에 표시하도록 해서다. 실제 키보드를 이 공간에 표시할 수 있어 손쉽게 작업할 수 있는데,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의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손의 전환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인피니트 오피스는 곧바로 공개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2020년 말에 해당 기능을 배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배포 시기는 더 뒤로 미뤄졌다. 마침내 페이스북은 4월 14일부터 퀘스트2에 배포되는 V28 업데이트부터 해당 기능이 적용된다고 발표했고, 조금씩 이용자의 퀘스트에 배포되는 중이다.
생각보다 미흡한 인피니트 오피스
V28 업데이트를 마친 퀘스트2는 테스트 기능 메뉴에 ‘추적 키보드’라는 새로운 항목이 등장한다. VR에 블루투스로 연동된 키보드를 띄우는 기능으로 인피니트 오피스를 위한 새로운 기능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상 현실 공간에 띄우진 못한다. 현재 이 기능에서 지원할 수 있는 키보드는 인피니트 오피스 발표 당시에 언급했던 로지텍 K830이 유일하다.
로지텍 K830을 블루투스로 연동한 이후 키보드 추적 옵션을 켜고 키보드를 바라보면 K830의 키보드 화면이 떠 있다. 참고로 K830을 블루투스로 퀘스트2와 페어링 하려면 키보드의 <FN+Del> 키를 눌러 오른쪽 상단 LED가 깜빡이는 지 확인한 뒤. 오큘러스 퀘스트2에서 블루투스 키보드 페어링을 시도하면 된다.
가상 화면에 떠 있는 키보드는 실제 키보드가 아니다. 실제 키보드의 레이아웃 그래픽으로 현재 퀘스트2는 K830 레이아웃만 지원한다. 따라서 다른 블루투스 키보드를 퀘스트2에 연동하더라도 이 키보드 레이아웃은 가상 공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 공간에 키보드가 있는지 없는지, 어떤 키로 구성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K830의 키보드 레이아웃은 위치와 너비 등을 실제 물리 키보드의 위치에 정확하게 추적한다. 컨트롤러를 내려 놓고 가상 화면에 떠 있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면 손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어떤 키보드를 누르는 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선명한 키보드 레이아웃 위에 반투명 그래픽으로 손을 표시하므로 마치 유령이 키보드를 쓰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키보드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다른 작업을 하다가 키보드를 입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퀘스트2가 로지텍 K830을 인식하고 키보드 레이아웃을 덧입히는 것은 아마도 컴퓨터 비전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K830이라는 페어링 이름으로 레이아웃을 불러오더라도 키보드의 너비나 위치를 모르면 레아아웃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퀘스트2의 외부 카메라로 키보드의 위치와 너비를 먼저 인식한 뒤 그 위에 키보드 레이아웃을 얹도록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K830 가상 키보드가 화면에 뜨기 전에 손을 먼저 올려 놓으면 키보드의 위치를 찾지 못해 레이아웃을 표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렇게 키보드를 연동하면 가상 공간에서 키보드 기반의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브라우저 기반의 웹앱을 활용할 수 있다. 오큘러스 브라우저에서 웹사이트에 접속해 정보를 보거나 구글 독 같은 웹 오피스를 띄워 문서 작업을 할 수 있다. 여기에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한 대화도 가능하다. K830의 오른쪽 터치 패드를 마우스 대신 쓸 수 있고 키보드를 연결하면 가상 공간에도 커서나 나타나므로 이를 이용해 거의 대부분의 옵션을 켜고 끌 수 있다.
하지만, 로지텍 K830을 연동한 인피니트 오피스는 이제 시작이라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일단 이 작업을 주로 쓸 수 있는 영역은 퀘스트2의 브라우저 뿐이다. 일반적인 퀘스트2 관련 앱에서 가상 키보드는 뜨지 않는다. 스페이셜(Spatial) 같은 공간 기반 회의에서 키보드의 활용도는 높을 듯하나 현재 시점에서 지원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브라우저가 불편하다는 점이다. 퀘스트2의 컴퓨팅 파워에 한계가 있음은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우리가 작업하는 모니터를 대신하기 힘들 만큼 브라우저의 작업 공간이 좁다. 사실 디스플레이 해상도나 광학 시스템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본 브라우저를 최대한 넓혀도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기에 넉넉하게 보이지 않는다. PC용 브라우저에 기반해 있는 데다 글자마저 너무 큰 탓에 브라우저가 키보드 입력 작업에 최적화된 형태로 제공되지 않는 상황이다. 사실 브라우저의 문제보다 브라우저를 포함해 이용자가 공간 내 디스플레이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아직 이 기능까지 제공하진 못하는 상황이다.
또한 퀘스트2의 시스템과 K830에서 언어 전환을 할 수 있는 전환 옵션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한글 입력을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스크린 키보드에서 한글 키보드는 제공하면서도 K830은 영문 입력만 지원하고 있는 데다 대체 키를 지정하는 옵션을 준비하지 않아 사실 한국에선 쓸모가 없다.
드디어 시작된 차세대 컴퓨팅 환경
인피니트 오피스는 이처럼 적지 않은 단점을 갖고 있고, 불편한 점도 한둘이 아닌 상황이다. 부족한 컴퓨팅 성능으로 인한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능이 앞으로 퀘스트2를 다른 용도로 쓰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 없다. 키보드를 연동한 작업 환경은 지금부터 이용자의 의견을 받아 개선될 것이므로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고 오히려 더욱 헤드셋을 오랫 동안 이용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어서다.
지금 대부분은 VR 헤드셋을 특정 목적으로만 활용하고 끝내지만, 인피니트 오피스는 헤드셋을 벗는 시간을 늦추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VR 헤드셋을 벗고 PC 앞에 앉아야만 할 수 있는 작업 가운데 일부를 가상 공간 안에 있는 여러 컴퓨팅 환경에서 처리할 수 있다면 굳이 공간과 장비를 옮겨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키보드 기반의 문서와 인터넷, 메신저, 소셜 미디어 등 작업에서 활용도를 높이면 그 작업을 위해 환경을 바꾸는 일을 덜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기존 PC나 모바일 장치에서 할 일 가운데 상당수를 가상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해 나감으로써 헤드셋 사용 시간을 늘린다면 가상 공간의 이용율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직 가상 현실 헤드셋의 평균 이용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데다 이것이 가상 현실과 관련된 불리한 지표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VR 헤드셋을 쓴 채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 이러한 지표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VR 헤드셋을 쓰고 일하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비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상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일하고 즐기는 삶의 방식에 적응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마냥 비웃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컴퓨팅 장치로서 VR 헤드셋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고, 오큘러스 퀘스트2의 인피니트 오피스는 그러한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발빠른 시도인 셈이다.
덧붙임 #
-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일이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21년 4월 20일에 공개되었습니다.
혹시 한글이 입력 되나요?
한글 입력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한영 전환이 안되요 ㅠㅠ
아직 한글 입력은 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과 로지텍이 한영전환과 관련된 키 매핑을 하지 않은 것 같더라구요.. ㅜ.ㅜ
[…] 불구하고 인피니트 오피스에서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피니트 오피스, 오큘러스 퀘스트2를 새로운 컴퓨터로 만들다‘라는 글에서 인피니트 오피스 환경에 대해 리뷰를 했지만, 인피니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