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수스는 10년 넘게 ROG(Republic Of Gaming)를 강력한 게이밍 브랜드로 키워냈지만, 최근 조각 하나가 빠진 퍼즐처럼 보였다. 분명 게이밍에 강한 메인보드와 그래픽 카드 등 PC 부품을 뽑아내는 실력과, 최적의 게임 환경을 위한 게이밍 노트북과 데스크톱을 위한 온갖 기술을 연구하는 열정과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거기에 가방과 책상까지 게이밍을 위해서라면 세심한 부분까지 모두 손을 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퍼즐의 빠진 조각은 점점 더 크게 다가온 것이다.
만약 게이밍을 위해 에이수스가 맞추고 있던 ROG라는 퍼즐이 오직 PC 게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오래 전에 ROG라는 퍼즐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에이수스가 조각을 하나씩 맞춰 가던 ROG라는 퍼즐의 그림은 사실 PC 게이밍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점을 너무 쉽게 지나친 것이다.
물론 에이수스는 PC 게이밍 자체를 포기하거나 여기에 다른 변화를 준 것은 없다. 여전히 PC 게이밍을 위한 하드웨어와 주변 장치, 그 밖의 상품으로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환경이 PC나 콘솔처럼 한 장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면서 즐기는 모바일 게임이 늘어난데다, PC에 버금가는 규모를 가진 모바일 게임의 등장으로 게이밍 환경이 넓어졌다는 데 있다.
이 같은 상황 변화는 에이수스에게 당연한 질문을 하나 남긴다. ‘에이수스는 왜 ROG 브랜드의 게이밍 스마트폰은 내놓지 않는가?’. PC 게이밍을 위한 브랜드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게이밍 브랜드를 지향하는 에이수스라면 언젠가 이 질문에 답을 언젠가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지금까지 게이밍 스마트폰에 대한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아마도 거의 똑같은 질문을 머리에 넣은 수많은 미디어들이 컴퓨텍스 2018 ROG 프레스 행사에 참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레스 이벤트에 앞서 진행한 미디어 브리핑에서 에이수스는 일부 제원을 올린 ROG 소환사 GL504와 ROG 스나이퍼 GL504라는 두 가지 노트북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기를 원하는 듯 보였다. 두 제품 모두 전작인 GL503보다 얇은 화면 베젤로 제품 면적은 줄이면서 큰 화면 효과를 낼 수 있는데다, TN 패널이 아닌 광시야각 패널로 144Hz 재생율을 실현했고, 먼지를 배출하는 안티더스트 시스템이나 12V 팬으로 빠른 열배출 등 기존 GL503에 적용된 특징까지 고스란히 담았다. 여기에 와이파이의 연결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멀티 안테나와 레인지 부스터라는 새 기술을 더해 30% 더 먼 거리에서 안정적인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참고로 GL504의 두 모델 제원은 거의 비슷하지만 스나이퍼 모델은 FPS, 소환사는 MMORPG에 맞춰 GPU만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미디어 브리핑이 여기서 끝났다면 6월 4일 저녁에 있을 ROG 이벤트의 주인공은 두 가지 ROG 노트북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도 모바일에 대한 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실망을 안고 돌아가야 하나 싶을 무렵 에이수스는 마침내 준비한 답을 꺼내놓았다. 그것이 ROG 폰(ROG Phone)이었고, 실제 미디어 브리핑 이후 대규모 ROG 프레스 행사의 준비된 시간 중 절반 이상을 ROG 폰에 할애할 정도로 에이수스는 ROG 폰에 대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ROG 폰은 모바일 게이밍을 위한 모든 조건을 고려한 제품이다. 앞서 ‘실종된 스마트폰의 성능 경쟁과 힌트를 가진 모바일 게이밍‘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게이밍 스마트폰에서 다져야 할 기본기를 고민했고, 그 능력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 것이다.
강력한 모바일 게이밍을 위해 에이수스가 ROG 폰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역시 발열 대책이다. ROG 폰은 3D 증기 체임버(Vapor Chamber)를 이용한 쿨링 기술을 적용했다. 내부에서 뜨거워진 열이 액체를 증기로 바꿔 상승한 뒤 식으면 액체로 되돌아와 다시 증기화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에이수스는 증기 체임버 쿨링을 구성하는 구리판의 면적을 일반 스마트폰보다 최대 16배 더 넓게 만들어 효율성을 높였는데, 일반 리퀴드 쿨링보다 60% 더 나은 쿨링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는지, 여기에 한 가지 쿨링 대책을 더 얹었다. 뜨거운 내부 증기를 좀더 빨리 식힐 수 있도록 엑스트라 쿨링 부스트(Extra Cooling Boost)라는 외부 방열팬을 기본 번들로 포함한 것이다. 말 그대로 스마트폰 후면에 부착하는 팬일 뿐이지만 바깥 공기를 꾸준히 밀어 넣어 열을 분산시키는 데 온도를 10도 이상 낮추는 동시에 40%의 전력을 더 공급하는 연쇄 효과를 갖고 있다.
이처럼 조금 과도하게 보일 정도의 발열 대책을 쓴 것은 퀄컴이 처음 공개한 2.96GHz 스냅드래곤 845의 성능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함이다. 3GHz에 가까운 스냅드래곤 845는 그 이전의 플래그십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퀄컴이 ROG 폰에 처음 공급한다. 더 높은 클럭의 AP를 쓴 터라 기존의 발열 대책으로 성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 에이수스가 ROG 폰의 안투투 벤치마크와 GFX 벤치, 3D 마크 등 벤치마크 결과를 프레스 행사에서 공개했어도 이러한 일시적인 성능 평가보다 스로틀링 없는 성능을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가 관건이다. 실제 에이수스도 이 부분에 더 신경 쓰기는 했다. 대외적으로 데이터를 공개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나온 게이밍 스마트폰과 비교했을 때 스로틀링이 거의 없는 상태로 장시간 게이밍을 할 수 있는 자체 측정 결과를 이미 갖고 있는 상태다.
고성능 AP의 스로틀링을 줄일 발열 대책이 없으면 사실 ROG 폰의 구성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는 문제다. HDR이 되는 AMOLED 디스플레이의 품질보다 게임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90Hz 화면 재생율의 효과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1ms초의 빠른 픽셀 반응 시간은 AMOLED의 특성을 반영하더라도 90Hz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결국 처리 성능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이 되는 발열을 해결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또한 ROG 폰은 모바일 게임을 위해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인 ‘X모드’를 탑재하고 있다. X모드는 모바일 게임을 시작하기 전 램에 상주해 있는 불필요한 찌꺼기를 정리해 여유 공간을 더 확보하고 게이밍을 방해하는 알림을 막는 한편, 프로세서를 고성능 모드로 작동하도록 설정한다. X모드 소프트웨어는 현재 ROG 폰의 내부 온도를 확인할 수 있고 프로세서의 작동 환경과 배터리 상황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장치의 관리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ROG 폰은 고성능을 유지하는 게이밍 스마트폰의 기본기 외에도 이를 다양한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확장성도 강화했다. 사실 확장성 강화라 말한 것은 한편으로 좋은 표현일 수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꼭 필요할 것인가 의문을 가질 정도의 주변 장치들도 있어 조금은 당황 스럽다.
도킹이나 조이스틱 정도는 모두 예상할 수 있는 옵션이다. 모바일 데스크톱 도크는 ROG 폰을 꽂아 데스크톱 형태로 즐길 수 있는 장치인데, HDMI로 출력할 때 지연 현상이 없는 게 눈에 띈다. 또한 ROG 폰 양 옆으로 조이스틱을 거치하면 비록 너무 긴 느낌이 들더라도 터치 스크린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무선 디스플레이 수신기와 트윈뷰 도크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무선 디스플레이 수신기는 802.11ad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해 ROG 폰에서 실행된 게임의 영상 신호를 받아 연결된 대형 TV에 표시하는데, 거의 지연 현상이 거의 없는 것이 강점이다. 이때 ROG 폰은 컨트롤러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게임을 콘솔 게임처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트윈뷰 도크는 또 하나의 모바일 도킹 장치다. 이 장치는 장치 자체에 트리거 버튼과 10,000mAh 배터리를 내장했을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디스플레이를 갖고 있다. 때문에 ROG 폰을 거치하면 ROG 폰의 디스플레이와 주변 장치의 디스플레이를 함께 쓰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를 테면 트윈뷰 도크의 세컨드 디스플레이에서 게임을 즐기는 동시에 ROG 폰에 트위치 같은 라이브 프로그램을 실행해 게임 장면을 생중계하거나 다른 이들의 게임 플레이를 함께 감상하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배터리가 넉넉하고 트리거 버튼이 있으므로 이전보다 색다른 모바일 게임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세컨드 스크린의 활용도가 얼마나 높을지 아직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일부 옵션에 대한 의문이 있기는 해도 ROG 폰은 모바일 게이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고려한 스마트폰이라는 점에 이견은 없어 보인다. 다만 이러한 성능과 환경을 갖춘 제품은 언제 얼마에 출시할 것이냐 같은 고민을 던진다. 아직 가격을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에이수스는 8GB 램에 128GB 저장 공간, 그리고 방열팬을 포함한 기본팩을 899달러(세금 제외)로 정했다. 국내에 출시한다면 세금까지 더해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격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때문에 한국 출시에 대해선 고민이 많다. 스마트폰을 판매하기 위한 이통 시장의 특수성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대를 접으라는 말보다 희망을 가져 보자고 이야기를 한다. 스마트폰 출시에 필요한 제품과 고객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는 이미 갖췄기 때문이다. 더구나 ROG 폰은 대중성을 강조하는 국내 플래그십 스마트폰 브랜드와 경쟁할 이유가 없는 제품이고 그만큼 부담은 적다. 에이수스 코리아 제이슨 우 지사장 역시 “ROG 폰은 카메라나 비디오, 인공 지능 같은 스마트폰의 수많은 기능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면서 “오직 게이밍만 이야기하면 되는 스마트폰”이라고 성격을 명확히 규정한다. 게이밍 판에서 더욱 커진 에이수스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된 ROG 폰. 한국에서도 그 퍼즐 조각을 완성할 수 있을지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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