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VR 헤드셋을 업무용 도구로 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인피니트 오피스(Infinite Office)를 지난 해에 발표한 뒤 예정했던 시기보다 조금 늦은 올해 퀘스트2에 적용했다. 인피니트 오피스는 별도의 앱은 아니다. 단지, 퀘스트2의 가상 환경 안에서 VR 콘텐츠 외에 여러 컴퓨팅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키보드, 마우스 같은 장치 입력 및 다중 디스플레이를 구현한 것이다.
그동안 페이스북은 인피니트 오피스를 적용한 이후 이에 대한 완성도를 좀더 놓이는 데 필요한 요소를 하나씩 추가했다. 아직 제한적이기는 하나 키보드나 마우스 같은 입력 장치와 이를 다루는 손의 움직임 추적, 그리고 업무 환경을 구성할 물리적 책상을 가상 공간에 추적하는 등 기능을 조금씩 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피니트 오피스에서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피니트 오피스, 오큘러스 퀘스트2를 새로운 컴퓨터로 만들다‘라는 글에서 인피니트 오피스 환경에 대해 리뷰를 했지만, 인피니트 오피스는 매우 미흡한 수준이었다. 비록 가상 환경에서 물리적인 키보드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장치는 잘 갖췄으나 이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제약되어 있었다.
그 제약이란 브라우저를 기반으로 하는 웹 앱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비록 브라우저를 최대 3개 까지 띄워 놓고 작업을 할 수 있다곤 해도 브라우저를 통한 작업의 편의성은 높지 않았다. 또한 가상 공간에 만들어 놓은 작업 창의 크기도 이용자가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이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진행된 V32 업데이트 이후 인피니트 오피스가 어떤 방향으로 바꿔가고 있는 지 보여주는 듯하다. V32에서 눈여겨 볼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유니버설 앱을 여러 개 실행하고 동시에 표시하는 것과 창 크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유니버설 앱은 오큘러스 홈에서 실행되는 앱이다. 즉, 앱을 실행했을 때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지 않고 기본 공간 안에서 뜨는 앱들이다. 오큘러스 브라우저, 파일, 스토어 및 오큘러스 무브 같은 앱이 대표적으로 오큘러스 유니버설 앱이다. 기존에는 이러한 앱을 실행하면 하나의 앱만 화면에 표시했으나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3개까지 한 화면에 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불어 (비록 좌우만 가능하지만) 화면 크기 조절도 흥미롭다. 앞서 유니버설 앱을 실행해도 화면 크기는 조절할 수 없어 브라우저에서 작업을 할 때 매우 답답한 느낌이 들고는 했다. 마치 더 크고 넓은 모니터 대신 24인치 모니터 안에서 작업하는 느낌이었달까? 다행히 이번 업데이트로 좌우로 좀더 앱의 너비를 넓힐 수 있어 아주 여유 있는 화면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이 두 가지 업데이트는 인피니트 오피스를 좀더 안정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변화지만, 그렇다고 완성했다고 말할 수준까진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요구나 변화를 예상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만들었다. 오큘러스의 기본 가상 공간에서 여러 개의 앱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 환경에서 실행 가능한 앱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라서다. 무엇보다 오큘러스 유니버설 앱이라고 부르는 가상 현실 앱의 기본 골격은 안드로이드 앱이기에 결국 이 환경에서 실행 가능한 안드로이드 앱을 추가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물론 지금도 안드로이드 앱은 설치할 수 있다. 이용자를 개발자로 등록한 뒤 사이드퀘스트(SideQuest)를 이용하면 안드로이드 앱을 퀘스트2에서 이용할 수 있다. 모든 안드로이드 앱이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한적이나마 몇몇 앱이 작동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오큘러스 퀘스트2에 설치한 안드로이드 앱을 V32 업데이트 후 실행해 보면 기존 유니버설 앱과 동시에 실행된다. 물론 정상 작동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문서 관련 안드로이드 앱을 퀘스트2 브라우저와 나란히 놓고 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만, 사이드로딩 방식으로 앱을 설치하더라도 어떤 앱이 정상 작동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금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않으면 사실 멀티 앱 실행의 의미를 찾긴 어렵다.
결국 퀘스트2의 인피니트 오피스 환경에서 작동하는 안드로이드 앱을 정상적으로 설치할 수 있어야 쓸만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비록 모든 안드로이드 앱을 실행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더라도, 인피니트 오피스 환경을 보완해 줄만한 업무용 안드로이드 앱이나 가벼운 미디어 프로그램들을 실행할 수 있는 앱 배포 여건을 갖춰야 이 기능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앱 배포 여건이란 퀘스트2에서 실행 가능한 안드로이드 앱을 손쉽게 설치할 수 있는 스토어다. 지금 오큘러스 스토어에서 VR용 앱을 다운로드 하듯이, 또는 스마트폰에서 쓸 앱을 설치하는 구글 플레이와 같은 앱 장터가 필요한 것이다. 다만, 구글 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처럼 다양한 개발자가 참여해 많은 앱을 등록하는 열린 스토어의 개념은 적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피니트 오피스라는 가상 공간에서 실행해도 무리가 없고, 키보드와 마우스 위주의 조작성에 기반한 안드로이드 앱으로 제한되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이다. 아마도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구글 독스 같은 업무용 프로그램이나 음악 스트리밍 앱, 크고 작은 유틸리티 프로그램들이 주요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그렇더라도 인피니트 오피스 환경에서 다룰 수 있는 안정된 안드로이드 앱을 쓸 수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듯하다.
문제는 페이스북이 안드로이드 앱 실행에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느냐인데, 곳곳에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TheMysticle라는 트윗 이용자는 안드로이드 앱이 나열된 오큘러스 스토어 이미지를 지난 5월 공개한 바 있다. 더불어 VR 매체인 업로드VR(UploadVR)은 페이스북 광고 및 비즈니스 플랫폼 제품 개발자인 댄 그로브가 직원용 구매 상환 프로그램으로 구입한 퀘스트2에서 Quip 및 구글 독스 같은 앱이 있는 내부 앱 스토어에 접근했다는 트윗을 삭제 전에 옮겨두기도 했다.
지난 6월 이후 더 구체적인 사례는 나오지 않은 터라 위에 열거한 두 가지 사례 만으로 퀘스트2의 안드로이드 앱 스토어가 열릴 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활성화된 멀티태스킹 및 화면 크기 조절 기능은 안드로이드 앱의 실행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결코 넣을 필요가 없는 기능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여기에 안드로이드 앱을 내려받을 수 있는 퀘스트 스토어에 대한 기대를 접기엔 힌트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퀘스트2의 안드로이드 앱 스토어는 VR 헤드셋을 다양한 작업을 위한 컴퓨팅 장치로써 또 한번 도약하는 분기점으로 삼을 만한 일이 될 것이기에 페이스북도 짧은 발표문만으로 이 일을 알리진 않을 듯하다. 어쩌면 올 가을 열릴 지도 모르는 페이스북 커넥트에서 나올 중요한 소식 중 하나가 아닐까?
덧붙임 #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일이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21년 8월 11일에 공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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