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크패드 역사 쓴 야마토 연구소의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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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길지 않은 PC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뜨겁게 불태우고 한 줌 재가 되어 흩날려 사자진 PC 브랜드에 보란 듯이 씽크패드는 20주년에 이어 5년이 흐른 지금 또 한 번 생일 잔치를 열었다. 그런데 씽크패드 생일 때마다 역사를 함께 살펴봐야 하는 곳이 있다. 1985년 설립해 1993년 가나가와현 야마토 시로 시설을 이전한 야마토 연구소(Yamato Labs)다. 모든 씽크패드 제품에 대한 개발과 실험을 이어온 까닭에 씽크패드의 모든 과거와 동기화된 곳이 바로 야마토 연구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마토 연구소는 단순히 기록만 남긴 것이 아니라, 씽크패드의 과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타임머신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상에 존재했는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제품들을 보존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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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야마토 연구소의 과거로 돌아가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드디어 잡았다. 야마토 연구소가 씽크패드 25주년을 기념해 정말 짧은 시간만 그 보물 창고를 개방한 것. 25주년 기념작 ‘씽크패드 25’를 공개하던 10월 5일, 야마토 연구소가 있는 미라이 타워 2층의 복도 끝 작은 공간에서 야마토 연구소의 오랜 유물을 접하게 된 것이다.

야마토 연구소의 전 제품이 우리를 맞이한 것은 아니지만, 좁은 공간은 그동안 씽크패드의 이정표라 부를 만한 제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야마토 연구소의 유물들이 꽃길만 걸었던 제품은 아니라는 점이 의외다. 심지어 씽크패드가 아닌, 야마토 연구소의 흑역사를 쓴 유물도 섞여 있었다. 잘 되든 아니든 모두 야마토 연구소의 산물이고, 이곳은 그런 시도가 가능한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의미를 말하는 야마토 연구소의 유물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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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패드의 시작

왜 일본 도시락 ‘벤또’가 유물 전시관에 있었을까? 씽크패드의 역사에 밝은 이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씽크패드의 만듦새와 내부 설계는 일본 도시락 통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서다. 최초 씽크패드 700과 700C는 IBM이 A4 크기의 노트북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부품을 본체에 넣기 위한 솔루션을 찾던 중 제한된 공간 안에 다양한 음식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만든 일본 도시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부품을 배치했다. 여기에 네모 반듯한 만듦새도 벤또와 닮았다. 때문에 그 영감을 준 일본 도시락을 입구에 전시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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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특별판

레노버는 25주년 기념작인 ‘씽크패드 25’를 10월 5일 발표했지만, 이 같은 특별판은 15주년이 되던 10년 전에도 있었다. 씽크패드 리저브드 에디션(X60)은 씽크패드 X61을 기초 모델로 만든 상업용 제품으로 홋카이도 소재 가죽 공예 업체인 소메스 새들(Somes Saddle)과 협업해 본체의 상판과 하판에 가죽을 덧씌워 만들었다. 이 제품은 한정 생산되었고, 이날 전시된 제품은 씽크패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리마사 나이토 레노버 부사장이 소유하고 있던 것이다. 그가 소유한 제품 번호는 0003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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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들을 위한 트로피

과거부터 지금까지 씽크패드의 색상은 ‘검정’ 일색이다. 때문에 금색 씽크패드는 듣도 보도 못한 제품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제품은 판매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1997년 출시된 씽크패드 380 시리즈의 100만 대 판매를 기념해 특별히 제작한 모델이다. 그러니까 야마토 연구소에도 두 개의 제품이 존재하지 않는 기념품이다. 황금 빛을 띄고 있어 실제 금인 줄 알았으나 그냥 금색 코팅을 입힌 거라고. 야마토 연구소에서는 이 특별판을 두고 개발자를 위한 트로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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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생일 선물

씽크패드 시리즈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모델은 씽크패드 701C였다. 일명 버터플라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씽크패드 701C는 노트북 덮개를 열면 키보드가 넓게 펼쳐지면서 입력하기 편한 구조로 변신하는 독특한 구조였다. 비록 노트북을 작게 만들어도 넓은 키보드를 쓸 수 있던 데다 키보드가 펼쳐지는 구조만으로도 큰 관심을 드러내게 만든 제품이다. 이처럼 701C는 씽크패드의 역사에서 늘 회자되는 제품인데, 사실 이 제품이 10주년 기념을 위한 기본 모델이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야마토 연구소는 씽크패드 701C를 65% 크기로 줄인 일명 ‘모기'(Mosquito) 씽크패드를 미디어 행사에 선보였는데, 키보드 구조만 동일한 플라스틱 모델이었다. 실제로 작동하거나 판매된 제품은 아니었으나 열 살 때에도 야마토 연구소는 이렇게 씽크패드 생일을 자축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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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PS/2 노트북

IBM은 씽크패드를 내놓기 전까지 전용 운영체제를 쓰는 PS/2 시리즈라 부르던 PC와 노트북을 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씽크패드의 성공적인 출시 이후 PS2 노트북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게 된다. PS/2 L40 SX는 씽크패드에 바통을 넘겨 준 IBM의 마지막 PS/2 노트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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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전화기로도 쓰던 PC

사실 IBM 팜탑 PC110(PalmTop PC110)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 그냥 작은 PC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씽크패드 라인에 있었기 때문에 씽크패드의 한 부류라고 여겼다. 하지만 팜탑 PC는 씽크패드도, PC도 아니다. 단지 야마토 연구소에서 만든 PDA일 뿐이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은 제품이다. 일단 초소형 제품이라서만이 아니라 희한한 기능을 갖고 있어서다. 팜탑 PC는 유선 전화를 연결하면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운영체제와 기본 소프트웨어가 롬에 사전 설치된 PDA여서 정해진 기능 이외에 활용성은 떨어진다. 키보드도 갖추고 있으나 너무 작아서 양 검지로만 입력할 수 있다. 이 같은 팜탑 PC 폼팩터에 대해 야마토 연구소를 책임지고 있는 아리마사 나이토 레노버 부사장은 두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키보드를 탑재한 작은 PC는 일본인의 취향에 맞을 뿐, 왜 이런 제품을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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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터는 옵션이 아니다

일본만 유통했던 또 하나의 신기한 씽크패드가 있다. 캐논과 합작한 씽크패드 550BJ이다. 캐논과 합작한 이유는 노트북에 잉크젯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서다. 즉 씽크패드 550BJ는 캐논의 버블젯 프린터 기술을 내장한 노트북으로 작업한 문서를 곧바로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다. 키보드를 들어올리면 종이를 넣는 트레이가 있고 인쇄된 결과물은 뒤쪽으로 밀려 나온다. 아마도 문서 출력이 많은 이들을 위한 용도로 개발했을 테지만, 덩치가 크고 무거워 휴대하기 쉽지 않았던 제품이고, 역시나 이러한 통합 제품에 대해 아리마사 나이토 부사장도 노트북의 기능성을 해친다는 비판을 잊지 않았다. 어쩌면 판매량이나 설계 측면에서 씽크패드의 흑역사처럼 보이지만, 지금보면 흥미로운 제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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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용과 오른손잡이용이 있다

2001년에 내놓은 트랜스노트는 상당히 획기적인 제품 중 하나다. 이 제품은 입력 감지 기능이 있는 판 위에 올린 A4 용지에 씽크스크라이브(ThinkScribe) 펜을 이용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고스란히 PC의 노트패드에 저장하는 PC였다. 지금도 펜으로 공책에 글을 쓰면 곧바로 태블릿으로 데이터를 저장하는 제품과 유사한 제품인데, LCD 패널을 눌러 평평하게 만든 뒤 입력판을 덮으면 커다란 노트처럼 들고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제품이 흥미로운 것은 왼손잡이용과 오른손잡이용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입력판이 왼쪽에 있느냐, 오른쪽에 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본체를 뒤집에 끼우도록 설계했으면 될 일이지만,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압력판과 본체를 모조리 일체형으로 만들어버렸다. 확실히 독창적인 제품이었으나 출시 1년 만에 단종되는 운명을 맞았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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