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액티베이션은 불법의 문제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아이폰의 액티베이션을 푸는 문제를 두고 오늘 하루 블로고스피어가 뜨거웠다. 아니 지금도 뜨겁다. 아이폰  액티베이션 방법을 소개한 글과 이런 행위들은 모두 불법인 만큼 자제를 촉구하는 두 개의 글이 연이어 뜨면서 액티베이션에 대한 문제가 블로고스피어의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아이폰 액티베이션을 불법이라고 단언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불법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어떤 부분이 불법인지 정리하는 게 순서겠지만, 아이폰이 우리나라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므로 한국에서 불법이라는 정의 자체가 성립되기는 어렵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우리나라 법률의 보호를 받게 되더라도 하드웨어를 무단으로 설계 변경하는 것이 아닌 데다 핵심 프로그램을 변경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불법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단, 액티베이션을 돕도록 만든 프로그램은 아이폰의 기술적 보호 조치를 무력화시켜 권리를 침해하므로 불법이다. 이래서 법은 어렵고 오묘하다.

애플 스토어에서 누구나 아이폰을 살 수 있지만, 그 이후 AT&T에서 개통을 하는 것은 소비자의 의지다. 정상적인 절차로 액티베이션을 하려면 AT&T에서 가입해야 하는 것일뿐, 이용자의 의지로 풀어서 쓰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이 때 이용자는 그에 따른 책임을 감수해야만 한다. 비정상적 절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후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보증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후 관리 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매우 심각하다. 잘 생각해보라. 배터리를 어디서 교체할 수 있는지를…

아이폰을 액티베이션해서 쓰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단지 아이폰이 정식 수입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사후 관리를 포기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기에 나를 비롯한 대부분이 그 책임을 안고 액티베이션을 하고 있다. 사후 관리를 받지 못하는 것 하나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깊은 것이다. 지금 액티베이션 된 아이폰들은 고장나지 않을 때까지만 배터리 수명만큼만 쓰는 시한부 장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기업에게 이에 대한 선처를 호소할 수 없다.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고 떼쓴다 한들 서로가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났는 데 들어줄리 만무한 일이 아닌가.

애플이 해킹에 관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플은 소비자가 의도적으로 시스템을 바꾼 것에 대해서 일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금은 부트 캠프가 있어 윈도를 함께 쓸 수 있지만, 인텔 맥이 처음 나왔을 때 애플은 해킹을 통해 인텔맥에서 윈도 XP가 뜨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물론 이렇게 해킹된 시스템에 사후 관리가 뒤따랐을 리 없었다. OS X를 해킹한 뒤 일반 PC에 깔아서 만든 해킨토시에 대해서도 지켜보기만 했다. 어차피 애플이 제대로 만들지 않는 이상 정상 작동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때문에 애플이 아이폰 액티베이션을 방조한다는 것은 그냥 느낌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지켜야 할 약속을 소비자 쪽에서 포기한다면 기업도 그 책임에서 자연스럽게 해방된다(반대로 기업이 책임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기업의 도리를 포기한 것뿐 아니라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아이폰 액티베이션도 그러한 예인 것이다.

어럽게 생각하지 말자. 아이폰을 액티베이션하는 건 이용자의 자유다. 단, 그에 따른 책임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만 말자.

덧붙임 #
1. Xeph님 지적에 따라 일부 내용이 삭제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