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씩 특정 전시회를 취재하다 보면 그 전시회에 나온 던 업체만 나올 때 좀 식상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물며 컴퓨텍스라고 그것이 크게 다르진 않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대만 업체로 채워지기 일쑤고, 특히 완제품 업체 중에서 외산 업체의 부스는 거의 전멸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몇 가지 장벽이 작용하고 있지만, 사실 다른 외산 업체가 무작정 돈 들여 전시를 해도 좋을 만큼 녹록한 곳은 아니다. 이곳은 개인 컴퓨팅 산업과 관련한 각종 비즈니스와 보이지 않는 정보전이 치열하게 벌어질 뿐만 아니라 세계적 미디어의 집중도도 의외로 높다. 다른 소비자 대상 전시보다 훨씬 더 강도가 센 전시회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컴퓨텍스가 국제 규모의 전시회인 것은 맞긴 해도, PC산업의 세계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만 업체에 견줄만한 제품을 내놓기란 쉽지 않다. 전체적인 PC 산업에 있어서 앞서가는 제품을 선보이고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다른 대만 업체들과 경쟁하기란 그래서 쉽지 않다. 세계 1위 HP도 이곳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다른 전략을 쓰기 때문이지만, 대만 업체처럼 다 까발려 놓고 경쟁하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
컴퓨텍스에서 볼 수 없는 외산 업체는 비단 우리와 상관 없는 업체들이 아니다. 우리나라 업체도 이곳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매년 몇몇 중소 규모의 업체들이 전시에 나섰지만, PC 경쟁력을 가진 업체의 참여는 없었다. 유명 모델을 내세워 본새 있는 제품을 광고하는 국내 대기업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 전시회를 일부러 외면한 점도 없진 않지만, 실질적인 경쟁도 어려운 것은 그 전시회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을 제품을 선보이기 어려운 타이밍 탓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컴퓨텍스에 삼성이 등장했다. 내 기억으로는 컴퓨텍스에 출전한 것 자체가 처음일 텐데 삼성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실제로도 그렇다고 한다. 이게 웬일인가 싶다가도 컴퓨텍스의 삼성 부스를 바라보았을 때 솔직히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먼저 엄습했다. 그들은 과연 이 전시회에서 대만 업체와 경쟁할 만한 제품을 내놓긴 했을까 하고.
결론을 말하자면 ‘나름 선방’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내 예상보다는 말이다. 지난 CES 수준의 울트라북과 PC 제품군으로 부스를 꾸몄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의외로 윈도우8, 터치스크린 같은 컴퓨텍스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시리즈 5, 시리즈 9 울트라북과 시리즈 5 울트라 컨버터블, 시리즈 5 울트라 터치스크린 노트북, 시리즈 7 터치스크린 올인원 PC 등 이번 컴퓨텍스 흐름에 맞는 제품군을 빼놓지 않았다. 새로운 크롬북과 크롬 박스는 유일한 제조사인 만큼 전시도 유일하다.(지난 해에는 인텔에서 삼성 크롬북을 전시했지만 올해는 하지 않았다.) 또한 아톰과 코어 i5를 넣은 차기 슬레이트 7의 프로토타입과 주변 장치도 최초 공개했는데, 이러한 유형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인 다른 대만 업체들에 견줘도 기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에 여러 장치의 미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올쉐어 플레이 같은 삼성 고유 솔루션도 함께 알리면서 차별화에 나서기도 했다. 대각선 건너편에 있는 에이수스(ASUS)에 비하면 부스 규모나 제품군, 다양성의 차이에서 비교되지만, 처음 전시하는 외산 업체로서 할 수 있는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의 구성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쯤 되면 드는 의문이 있다. 삼성은 왜 뜬금없이 컴퓨텍스에 나타난 것일까? 지난해 IFA나 올해 CES에서 매우 공격적으로 PC를 전시하면서 사업적 확장을 선언했지만, 이곳에서 전시한 것은 의미가 다르다. 비록 삼성 입장에서는 IT 사업부가 맡고 있는 여러 사업적 확장을 위한 행보 중 하나라고 말했어도 PC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대만에 말뚝을 박은 것이니까. 이에 삼성 관계자는 그저 배우러 온 것이라며 애써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했다. PC 중심지에 전시해 놓고, 수많은 미디어와 경쟁 업체에 시달리면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조심스러운 입장의 립서비스는 아니었을까?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물어봐야겠다. 무엇을 배우고 돌아왔을지…
덧붙임 #
참고로 PC 업체 중 독립적으로 메인보드를 설계하고 자기 공장에서 PC를 생산해 파는 업체는 몇 되지 않는다. 그런 소수의 PC 업체 가운데 삼성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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