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배터리 실험, 왜 했을까?


`폭발노트북’ 시험결과 `이상무'<기표원>(종합)
(연합뉴스 아웃링크)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이 지난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경남 창원에 있는 한국전기연구원에서 폭발노트북 배터리 안정성 실험을 했다고 한다. 앞서 21일 공개 실험을 알리는 보도 자료를 배포한 기술표준원 측은 실험을 시작한 24일에 소비자 단체와 각 매체 기자들을 참관시켜 실험 현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8일 “노트북 배터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발표가 나오니 맥이 빠진다.


그런데 뭘까? 의구심이 수그러 들지 않는다. 예상대로 당연한 결과가 나와서?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실험이었기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배터리 실험을 들여다보면 어떤 상황에서 노트북 배터리가 폭발하느냐를 찾으려 한 게 아니라, 노트북 배터리가 폭발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실험에 불과한 듯한 인상을 주어서다. 수 천만 원의 세금을 들여 진행한 실험이 ‘배터리 폭발 혐의 없음’이라는 달랑 한 줄만 적은 판결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끝났으니 의구심이 줄어드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수많은 이들이 이번 배터리 실험을 주목했던 것은 배터리의 안정성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자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 왜 노트북 배터리가 폭발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한몫 한다. 전자는 배터리의 안전성 때문에 불안해 하는 노트북 이용자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장치가 되고, 후자는 노트북을 쓸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평생 배터리 폭발사고가 안난다면 전자만으로 충분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배터리 폭발 사고가 난 만큼 후자를 아는 것도 이제는 중요해졌다. 때문에 이번 기회를 빌어 노트북 발화의 원인을 찾기를 바랐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폭발시켜 보자고 맘먹고 한 게 아니니까. 지금까지 노트북 배터리의 발화할 수 있다는 가설은 크게 두 가지다. 노트북의 열을 밖으로 빼내는 방열구가 막힌 상황에서 폐쇄된 공간 안에 있던 노트북의 과열에 의해 배터리가 영향을 받았을 때, 또 하나는 가열된 배터리가 충격에 의해 변형되면서 폭발했을 가능성이다. 이미 수많은 매체들이 이러한 가설을 쏟아냈고, 전문가들조차 불안정한 리튬 이온의 성질상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해오던 터였다. 허나 이번 실험은 폭발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이전의 상황을 얼추 재연하거나 판에 박힌 실험을 반복했다. 이미 국제 기준에 따른 실험을 통과해 충분히 검증된 배터리들을 기준을 좀더 올린 상태에서 테스트한 것이다.


기표원은 1월과 2월, 노트북 배터리가 발화되었던 두 가지 상황을 설정했다고 한다. 전기 장판과 가방 안에서 폭발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재연해 이상 유무를 확인하려 한 것이다. 또한 표준 규격 실험보다 강화된 기준에 맞춰 배터리와 셀의 폭발 실험도 병행했는데, 어떤 실험을 했는지 아래 기표원 보도 자료에 있는 글을 인용한다.



기표원은 이번 시험에서 노트북컴퓨터를 켜놓은 상태에서 가방 속에 넣은 후 각 부분의 온도상승 정도, 발화 유무, 배터리 변형 여부 등을 관찰한다. 또 담요를 깐 전기장판 위에 작동 중인 노트북컴퓨터를 올려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 부분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지도 확인한다.


배터리에 대해서는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을 때, 높은 온도를 가했을 때, 과전류를 흘려보내거나 과충전했을 때, 열에 노출됐을 때, 강한 압력을 가했을 때 등의 상황을 설정, 각 상황별로 배터리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를 시험한다.


아래는 위 기준에 맞춰 어떻게 실험을 준비했는가 보여주는 ZDnet 코리아의 동영상이다.


출처 ZD넷 웹TV http://www.zdnet.co.kr/webtv/digital/0,39034168,39167107,00.htm


일단 직접 그 현장에서 해당 실험을 지켜 본 것은 아니므로 따져보기가 어렵지만, 현장에 참석했던 모 인터넷 매체 기자를 통해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지 물었다.


1. 노트북은 충분히 작동한 상황에서 가방에 들어갔는가?
    아니다. 켜자마자 바로 가방에 넣었다.


2. 노트북의 방열구는 막혀 있었는가?
    아니다. 막혀 있지는 않았다.


3. 노트북을 작동한 채로 배터리 부분에 특이한 이 물질을 올려둔 실험을 했는가?
    그런 실험이 항목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4. 충분히 달궈진 노트북 배터리에 대한 충격 실험을 했는가?
    그런 실험이 항목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5. 여러 번 떨어뜨린 배터리를 노트북에 꽂고 테스트 했나?
    그런 실험이 항목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기자에게 던진 다섯 가지 질문은 노트북이 어떤 상황, 즉 배터리가 폭발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실험을 했느냐를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배터리가 폭발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현장에 참여한 기자가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적어도 오랫동안 노트북을 쓰다가 자리를 옮겨야 할 때 덮개를 덮고 바로 가방에 넣는 일상적인 노트북 이용 행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듯 보인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뜨겁게 달궈진 노트북이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충격을 받거나 바닥에 있던 이불이 방열구를 막아 시스템의 온도를 끌어올렸을 때, 또는 노트북 배터리의 발화를 돕는 외부 물질, 충격으로 정상적인 상태인지 알 수 없는 배터리를 노트북에 꽂고 작동시켰을 때 같은 실험은 없는 듯하다. 노트북이 발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결국 배터리 발화에 관해 ‘그럴 것이다’를 ‘그렇다’로 바꾸는 실험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있었다면 ‘배터리 문제가 아닐 것이다’를 ‘아니다’로 확인한 정도라 할까?


국제 기준보다 더 엄격한 설정으로 실험을 한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국민의 세금을 들여 가면서 실험을 할 때는 그들이 알아야 하는 것 정도는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적어도 다양해진 노트북 이용 환경에 맞춘 실험 상황을 정하고 그 위험의 가능성이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지 알아냈어야 했다. 이렇게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만 얻고 끝내는 것은 노트북 이용자들이 바랐던 실험도, 결과도 모두 아니다.

덧붙임 #

1. 아이스테이션의 배터리가 폭발하자 제조사인 디지털 큐브도 기표원에서 실험한단다. 이번에도 또 면죄부 줄까?

2. ‘배터리 폭발 가능성이 있는 휴대폰 21만대 리콜’. 일본 이야기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20 Comments

  1. 2008년 3월 31일
    Reply

    ..’시키면한다’라는 케이블 프로가 생각나는 실험이군요..

    v43 배터리 폭팔 얘기는 꽤 오래된 얘기죠..
    배터리가 부풀어있는..임신-_-이라고 부르는 상태에서 잘못건드리면 터진다는 얘기는 예전에도 나왔는데
    http://www.pmpinside.com/ws_root/brd/zboard.php?id=v43_forum&no=275382

    이번에 녹색소비자연대에서 들고 나오니 실험하는 모양이군요..
    노트북 배터리 실험하는거 보니..멀쩡한 새 배터리로 할거 같군요. 면죄부에 한표 던집니다.

    • 2008년 4월 1일
      Reply

      사삼이 배터리 폭발을 ‘출산’이라고 표현하다니 그야말로 ‘작명 센스 작렬’이네요. 누가 어떤 실험을 하던 간에 배터리를 폭발시키겠다는 각오로 해야 원인을 알텐데 말입니다. ^^

  2. 2008년 3월 31일
    Reply

    …..대놓고 헛발질만 하는군요. 이럴거면 차라리 하질말질 왜 세금을 써가면서 그러는지…

    우리나라는 한두가지가 문제가 아니에요 정말…

    • 2008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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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가 있으면 풀면 됩니다. 푸는 기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

  3. 디스커버리 채널
    2008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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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버스터의 아담과 제이미에게 의뢰하시오.

    • 2008년 4월 1일
      Reply

      혹시 연락처 아시면 좀… ^^

  4. 왜햇글까???
    2008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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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햇냐고 물으신다면 안전제일 확인 차 점검해준거겟죠…그렇게 물으시면 이게 답일듯… 요즘 안전사고 대해 많이 터지지 우리제품도 안전하다고 확인시켜주는거겟죠…그래야 소비자들도 안심하고 쓰져..^^a

    • 2008년 4월 1일
      Reply

      네… 안심이 되는 분들도 있고 여전히 아닌 분들도 있겠지요. ^^

  5. 2008년 4월 1일
    Reply

    이거 보고 안전하다라고 확인된 것이 아니라.. 에 한표 던지는 사람입니다.. 🙁
    최근 충동구매-_-한 iPAQ212의 베터리가 기존 국산에서 중국산으로 바뀌었는데,
    이에 대해 다른 4700가진 분하고 비교해보고 내께 더 안전할꺼다. 라는 어쩌면
    중국산이나 국산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싶은 심증을 더 깊게 만들어버리는게 아닌가 합니다.

    이리이리 하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라고 보여준게 아니라
    극노멀 상태에서 멀쩡합니다. 로 보여주니 이건 좀..

    개선 되겠죠 뭐 🙁

    • 2008년 4월 1일
      Reply

      아무래도 이런 실험을 할 때 어떤 의지로 하느냐가 중요하죠. 제가 보기에는 이번 실험은… 안전함을 입증하는 실험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정도의 선전 밖에는 되지 않아 보입니다. 아쉬워요. 저도 나아질 거라고 여기고 싶은 데 정작 어떤 문제인지 모르니 나아질 수도 없을 듯…
      (그나저나 한국은 언제쯤 들어올까요? 무슨 질문인지 아실듯.. ^^)

    • 2008년 4월 1일
      Reply

      알게되는대로 바로 알려드리겠지만,
      4월은 아닌가봅니다 ㅡ.ㅜ

    • 2008년 4월 2일
      Reply

      그렇겠지요? 아무래도 현지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을테니.. ^^

  6. 2008년 4월 1일
    Reply

    제 생각에는 노트북이 페쇄된 곳에서도 잘 ‘터지나’ 실험해 보고 있는거 같습니닼ㅋㅋㅋ

    • 2008년 4월 1일
      Reply

      뭐.. 끝장 테스트라도 했으면 환영할만 했을텐데요..^^

  7. 2008년 4월 2일
    Reply

    자자.. 제가 정리를 좀 해보겠습니다.. 감히 ^^

    1) 노트북 배터리 폭발
    2) 자체 조사
    3) 소비자들 불안 여전
    4) 다른 유사 배터리 폭발 사건 등장
    5) 공공의 검증 필요
    6) 공개 검증 실시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실제로 중요한 것은 배터리는 지금 너무나 다양한 곳에 정말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불안이 지속된다면 산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두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래서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 물론, 방법적으로 몇몇 분들은 너무 어설프다던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가 볼때는 그래도 현재 단계에서는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라고 생각됩니다.

    • 2008년 4월 2일
      Reply

      “타협점을 찾았다”라는 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소비자나 이용자를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산업 논리를 완전 배제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이번 배터리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 것은 좀 안타깝답니다. ^^

  8. 키마이라
    2008년 4월 3일
    Reply

    님께서 말씀하신데로 ‘어떤 상황에서 폭발할수 있으니 이런이런 상황은 주의해야 합니다’ 라는 예시적 상황이라도 나와야 소비자가 주의할텐데 그런 환경 설명은 전혀 되지도 않고 단지 세금을 사용해서 업체 소송 대비 비용을 줄였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런 어정쩡한 결론을 내렸으니 소송으로 보상받기는 힘들겠군요..
    시간이 좀더 지나면 또 누군가의 배터리가 터지겟지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

    • 2008년 4월 3일
      Reply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

  9. 2009년 9월 10일
    Reply

    배터리 개발자가 기본으로 할만한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군요. QA란 개념을 모르나 봅니다. 스트레스의 테스트의 의미는 아는지…

    • 칫솔
      2009년 9월 11일
      Reply

      저들은 그저 기준대로 했느냐만 따졌을 것입니다. 왜 폭발했는지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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