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역사 신문 9-애플컴퓨터, 애플 1 대량 판매에 들어가

오늘은 짧지만 흥미로운 1976년과 1977년의 뉴스를 모았습니다. 특히 애플 마니아들이 좋아할 이야기가 나오지요. 애플컴퓨터가 등장한 것입니다. 애플컴퓨터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아주 색다른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 때 당시로 돌아가 뉴스를 보니 그냥 막연하게 관심보다는 좀더 흥미가 생기지 않았나 합니다. 크레이가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를 개발했다는 이야기도 애플만큼 관심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늘 그렇지만 잘못된 부분은 언제든 댓글로 알려주십시오.)


[1976년] 애플컴퓨터, 애플 1 대량 판매에 들어가
지난 1976년 3월에 개발된 애플 1이 666.66달러에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갔다. 1976년 12월에 들어서자 마자 애플컴퓨터는 애플 1의 판매망을 미국 내 10개 상점으로 확대하는 등 판매망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애플 1은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자신들이 몸담고 있던 휴렛팩커드와 아타리에서 떠나 6개월 동안 컴퓨터 회로도를 설계한 끝에 만들어낸 개인용 컴퓨터. 워즈니악과 잡스는 프로토타입을 만든 뒤 애플 1(Apple Ⅰ)이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컴퓨터는 모토롤라 6502 프로세서를 처리 장치로 쓰긴 했지만 그래픽을 지원하지 못했고, 키보드와 케이스가 기본 품목에서 제외되어 있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애플 측은 외부 키보드와 모니터를 따로 연결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워즈니악은 애플 1의 프로토타입 개발 이후 대규모로 제품을 판매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워즈니악과 잡스는 애플 1의 시제품을 마을에 있는 전자 제품 상점에 보여주었는데, 케이스를 조립해 오면 대량으로 구매하겠다는 주인의 의사를 전해 듣고 판매에 나섰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휴렛팩커드에 애플 1의 생산을 의뢰했으나 휴렛팩커드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1976년 4월 1일 만우절에 애플사를 설립해 직접 판매에 나섰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각각 밴 자동차와 휴렛팩커드 계산기를 팔아 자본금을 늘린 뒤 50대의 애플 1을 만들어 바이트 컴퓨터 상가에 납품하고 광고를 하면서 판매량을 늘려 나갔다. 스티브 잡스는 놀런 부시넬을 찾아가 투자에 대해 상담을 나누고 벤처 자본가 돈 발렌타인을 만나 투자를 받은 뒤, 투자가 마이크 마큘라를 애플컴퓨터 회장으로 영입했다. 마큘라 영입 이후 체계가 잡힌 애플은 10년 안에 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을 세우는 등 정식 사업안을 발표하고 애플 1의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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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오리지널 애플 1.


스티브 워즈니악과 가상 인터뷰를 한다면…
질문 : 애플을 만들게 된 이유가 뭔가요?
스티브 워즈니악 : 알테어 8800을 살 돈이 없었거든.
질문 : 근데 왜 애플로 이름을 지었죠?
워즈니악 : 먹다 남은 사과를 보다가 생각났을 뿐 아무이유 없어!

만약 휴렛팩커드가 애플 I을 팔았다면 어땠을까?
휴렛팩커드는 지금 HP의 옛 이름이다. 휴렛과 팩커드가 세운 계측기 전문 업체로 출발해 지금은 PC 판매 세계 1위뿐 아니라 거의 모든 IT 전 분야에서 거대한 수익을 거둬 들이는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휴렛팩커드가 애플 I을 자사의 이름으로 팔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휴렛팩커드의 애플 I 컴퓨터’. 당신의 상상에 맡긴다.

[1976년] 크레이, 세계 신기록 세운 슈퍼컴퓨터 개발
CDC 7600가 가지고 있던 초고속 컴퓨터의 기록이 4년 만에 깨졌다. CDC에서 CDC 6600과 CDC 7600을 설계했던 시모어 크레이가 CDC 퇴사 뒤에 설립한 크레이 리서치에서 새로운 슈퍼컴퓨터 크레이(CRAY)-1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1972년부터 개발되어 온 크레이-1은 단순한 백터 처리 방식의 도입과 배선의 길이를 최대한 짧게 하기 위해 부품을 원통 형식으로 배열했다. 속도는 스칼라(Scalar, 여러 개의 처리장치에 작업을 배분해 속도를 향상시킴) 처리 때 16메가 플롭스(초당 실수 계산 1천6백만 회 수행), 각 벡터 처리기(프로세서)가 최고 속도로 작동하면 160메가 플롭스까지 성능을 나타낸다.
CDC의 CDC-7600보다 4배 더 빠른 속도를 가진 크레이-1은 58입방미터의 크기에 약 2.4톤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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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코모도어, 애플 2와 비슷한 컴퓨터 출시
코모도어가 PET(Personal Electric Transactor)라는 이름을 가진 컴퓨터를 출시했다. 이 컴퓨터는 MOS 6502 1MHz 프로세서를 달고 있으며 조작이 간단하고 12KB 기본 메모리를 갖고 있다. 더불어 2개의 카세트 드라이브와 박막 치클렛(Chiclet) 키보드를 내장했다. PET의 판매 가격은 595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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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 IBM은 뭐했지?
크기가 작은 64kb의 동적 램을 개발했다. 그 뒤에 1980년 TI 사가 64kb 동적 램을 만들어 시판했는데 큰 인기를 얻었고 이듬해에 커팅 에지(Cutting Edge)사가 288kb 동적 램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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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애플, 깔끔한 디자인의 고성능 애플 2 발표
애플이 투박한 상자를 벗고 깔끔한 옷과 강력한 성능으로 갈아입었다. 애플사는 성능과 컬러 그래픽 디스플레이 기능, 키보드, 파워 서플라이 그리고 깔끔한 외관을 갖춘 애플 2(Apple Ⅱ)를 1977년 6월부터 시판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한 컴퓨터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한 애플 2는 4KB의 기본 메모리와 두 개의 게임 패드 그리고 데모 카세트를 장착하고 있으며 가격은 1,299 달러다. 애플2는 대용량의 메모리에 내장 그래픽, 베이식 인터프리터를 탑재했으며 주변 장치를 끼울 수 있는 확장 슬롯 등 개방 구조를 채택하고 CP/M 카드를 쓸 수 있다.
애플사는 애플 2의 판매를 위해서 대규모 생산 라인과 테스트라인을 마련했으며 소비자 잡지에 광고를 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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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앞당긴 애플 2(사진 출처 : http://www.allaboutapple.com)


애플컴퓨터의 10년 비전은 5년이나 앞당겨졌다
애플컴퓨터는 10년 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려는 비전을 1976년 12월에 세웠지만, 애플 2 시리즈의 판매고가 급상승하는 덕분에 5년 만에 목표 매출을 달성했다. 애플컴퓨터는 유러플(Eurapple)이라는 독립 회사를 차려 유럽 시장에 애플을 공급했고 우리나라에는 80년대부터 청계천 일대에서 애플 2 복제판이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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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6 Comments

  1. 2007년 11월 29일
    Reply

    잡스는 젊은 시절 아주 미남이더군요. 미소년 이미지랄까 ㅎㅎ

    • 2007년 11월 29일
      Reply

      지금도 나이에 비해서는 너무 팔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만.. ^^

  2. ml3
    2008년 12월 9일
    Reply

    “…애플 2는 4KB의 기본 메모리와….”
    4KB가 아니라 48KB가 맞는 것 같습니다.

    • 칫솔
      2008년 12월 9일
      Reply

      하앗… 고쳤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3. lasher
    2008년 12월 27일
    Reply

    Apple II는 처음에 기본메모리 4 KB로 나온게 맞네요. 나중에 계속 추가되어 48KB 까지 나왔습니다만..
    (다음 사이트 참조하시길 http://apple2history.org/history/ah03.html)

    • 칫솔
      2008년 12월 27일
      Reply

      재수정했습니다. ^^ 죄송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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