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시장의 동맥경화 ‘LTE 유심이동성’, 더 늦기 전에 치료를…

“이통시장은 왜 경쟁하지 않는가?”

이 짧은 질문에 압축된 이통시장의 문제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고 신기술을 잔뜩 담은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우리나라 이통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이 질문은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기에 이 질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적절하게 지적한다. 서로 경쟁을 통해 이익을 챙겨야 할 이통사들은 이름만 다를 뿐 알맹이는 거의 똑같은 요금제를 내놓을 뿐이고, 단말기 제조사들은 다양한 제품을 앞세워 이용자에게 선택 받으려 애쓰지 않는다. 어차피 이통시장은 이통사업자들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태로 고착화되는 형국이다.

이동통신사업자가 이통시장의 중요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제도가 이통사에게 절대적 지배력을 구축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LTE 유심이동성 제도 역시 이통사의 지배력을 공고히 만든 원인 중 하나다. 이통사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견제, 이용자 보호를 위한 취지로 등장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보다 지금의 LTE 유심이동성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이통시장의 변혁은 일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유심이동성 제도의 취지 문제라는 말은 아니다. 이 제도는 특정 이통사 망에 사용 가능한 화이트리스트 방식의 단말기 유통 독점을 깨고 이용자의 통신 서비스 선택권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특정 이통사 전용 스마트폰이나 휴대폰이라도 다른 이통사의 유심만 꽂으면 쓸 수 있도록 조치하면 새로운 단말기를 사지 않고 이통사를 바꿀 수 있는 만큼 이용자에게 유리한 이동통신 서비스를 선택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문제라면 이통사를 쉽게 갈아탈 수 있더라도 이통요금의 변별력이 거의 없는 탓에 이용자가 무리해가며 옮길 이유가 없고, 이통사를 바꾸더라도 더 많은 단말 지원금을 받는 것이 유리한 이용자 입장에서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단통법과 보조금 상한제가 시행되고 선택약정할인 같은 정책이 보완되면서 자급제 단말을 기반으로 한 이통사 선택 환경은 조금 나아진 편이다. (어쨌거나 변별력 없는 이동통신요금 역시 이통시장의 묵시적 담합 측면에서 손봐야 할 대상임은 분명하다)

이처럼 유심이동성이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통사로부터 조금이나마 이용자 선택권을 회복하는 일환으로 도입된 제도이나, 그 효과는 3G 스마트폰 시장 막바지에 아주 잠시 나타났을 뿐 LTE로 통신 방식이 바뀐 지금 여전히 유통 지배력의 변화가 거의 없다. 물론 LTE 방식으로 변경된 이후 국내 이통3사간 LTE 유심이동은 자유롭게 이뤄지는 외형으로 볼 때 국내 사업자들의 저항 없이 잘 도입된 것처럼 보이긴 해도, 실제 LTE 유심이동성 제도 자체가 다양한 LTE 단말의 경쟁을 방해하고 있는 규제책이기도 하다.

LTE 유심이동성 역시 종전과 마찬가지로 이용자가 단말기를 교체하지 않고 이통3사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기본 취지는 제도 도입 취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현행 LTE 유심이동성제도의 문제는 단말 제조사나 이통사, 수입사가 국내에 정식 판매하는 스마트폰이나 휴대폰이 반드시 이 제도를 충족하는 제품이어야 한다는 데 있다. 즉, VoLTE 스마트폰이더라도 국내 이통사가 모두 쓸 수 있는 제품이라는 정보를 갖고 있는 제품만 정식 유통할 수 있다. 3G에서 없애다시피 했던 화이트리스트가 LTE 유심이동성 제도를 배경으로 슬그머니 되살아난 것이다.

VoLTE는 LTE 망을 이용하는 음성/영상 통화와 부가 서비스지만, 원칙적으로 국내 이통3사간 VoLTE 연동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이통사의 VoLTE 상용 서비스는 국제 표준보다 앞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상호 연동을 매개로 표준화되지 않았다. 특히 IP 멀티미디어 서브시스템(IMS) 프로토콜이 일부 달라 각 통신사별 단말기들이 호환되지 않은 탓에 단말을 유지한 채 이통사를 옮길 경우 VoLTE 뿐 아니라 음성 통화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저마다 다른 IMS 프로토콜로 인해 이통사들은 VoLTE로 통화 가능한 단말 정보를 따로 관리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이통3사는 2012년 10월 정보통신기술협회(TTA) 산하에 국내 이통사간 VoLTE 직접 연동을 위한 기술 규격 표준화를 담당할 실무반(WG7038)을 신설한다. 이 표준화 작업은 각 이통사에서 구축한 체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연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IBCF와 TrGW 같은 관문을 통해 각 이통사의 VoLTE와 연계되는 안을 정리해 2013년 9월에 표준안을 내놓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각 이통사의 VoLTE를 연동하기 위해 쓴 방식 때문은 아니다. 이 표준안 때문에 서로 다른 이통사에 가입한 이용자끼리도 VoLTE로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어 표준안 제정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결정적으로 표준안을 충족하는 스마트폰이나 휴대폰이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 다른 문제를 낳는다. 표준안 제정 이전은 각 이통사마다 따로 VoLTE 스마트폰이 필요했던 반면, 그 이후 ‘이동통신 사업자간 유심이동성을 위한 VoLTE 단말 규격 표준’을 따라 IMS 등록 절차를 따르도록 요건을 갖춘 실질적인 한국용 VoLTE 단말기만 유통하게 된 것이다.

이 표준이 처음 나온 시점에는 단말기 제조사들의 협력이 필수적이었으므로 이 표준안 제정에 국내 3개 제조사가 참여해 초기 단말 공급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VoLTE 서비스가 워낙 빨리 시작한 데다 당시 국제 표준을 따르는 VoLTE 스마트폰도 상당히 부족한 때라 이통사간 VoLTE 호환 단말기 없이 유심이동성 제도 운영이 불가능한 점에서 제조사 협력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흐름이 변화하면서 한국형 VoLTE 중심의 LTE 유심이동성 제도에 대한 타당성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LTE 유심이동성 시행 초기 외산 제조사들도 전반적으로 VoLTE에 대한 준비가 덜 되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VoLTE를 상용화한 나라도 제법 많은 데다 스마트폰용 통신 칩셋들이 국제 표준 VoLTE를 지원하면서 이를 기반한 스마트폰이 나오고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LTE 유심이동성 제도 정착을 위한 과정에서 한국용 VoLTE 호환 단말은 외산 업체에 일종의 장벽이 되고 있다. 외산 제조사들이 해마다 다양한 LTE 스마트폰을 내놓고 있지만, 한국 시장에 호환되는 단말을 내놓기 위한 작업을 추가로 해야만 한다. LTE 유심이동성을 보장하지 않는 한 한국 판매에 필요한 전파 인증을 내주지 않기 때문에 외산 제조사들은 추가 개발에 자원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단말 출시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참고 | 이동통신 단말기 USIM 이동성 확인 시험절차 개정)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외산 제조사들이 겉으로는 한국용 VoLTE 스마트폰을 내놓는 게 문제되진 않는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한국 시장에서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는 제품이거나 규격 호환 제품을 개발할 만큼 이통사 또는 수입 유통 업체의 주문량이 있을 경우 개발 비용을 고려해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급제 시장을 위한 제품을 공급하고 싶어도 개발 비용 대비 수익에 대한 어려움도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이통사가 단말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입지는 약하다고 하소연한다. 때문에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국내에서 자급제 시장이나 이통사를 거쳐 판매되는 외산 단말기들이 저가보다 고가, 고급 제품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형 VoLTE의 적용 없이 표준 VoLTE 단말이 LTE 유심이동성을 충족하면 이들 제조사들은 국내 시장에 더 많은 제품을 풀게 될 것이냐고 질문할 수도 있다. 이에 외산 제조사들은 모두 긍정과 부정적 입장을 동시에 내놓는다. 앞으로 선택할인율이 함께 높아지면 자급제 시장의 기대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이전처럼 이통사 주도의 유통 시장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의견이 동시에 나온다. 적어도 완전히 부정적으로만 보만 보던 이전의 입장이 조금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결국 그 가능성을 키우고 넓혀야 하는 것이 제도의 역할이지만, 이 시점에서 LTE 유심이동성을 언급한 것은 이 제도의 폐지나 한국형 VoLTE의 구조를 바꾸자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건전하고 건강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발전한 기술을 기반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심이동성은 이동통신 이용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 만든 제도였고, 이를 기반으로 자급제 같은 제도 보완이 이어졌던 점을 감안할 때 그 경쟁력을 살리지 못하는 제도의 문제를 분석하고 보완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통사와 단말기 제조사의 경쟁이 살아 있는 이동통신 시장으로 나아가는 제도의 보완이 기본료 인하보다 더 큰 통신 이익을 이용자에게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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