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2017 다시보기] 가상 현실과 프로젝트 얼로이로 반전 노리는 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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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CES에서 가상 현실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곳은 오큘러스도, HTC 바이브도, 엔비디아도 아닌 인텔이었다. 사실 의외였다. 인텔이 가상 현실에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인상을 남긴 때문이다. 그도 그럴 듯이 현재 시점에서 가상 현실 하드웨어나 기술에 있어 인텔은 대표 기업으로 꼽지는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CES 2017에서 가상 현실을 향한 인텔의 욕망과 의지는 단순하게 보이지 않았다. 테크 트렌드를 이야기하고 소개했던 CES 기조 연설을 못한 마당에 CES 취재 매체를 모아서 진행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인텔이 이처럼 가상 현실 분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4시에 시작될 예정이던 인텔 프레스 컨퍼런스를 앞두고 되도록 이른 시간 입장을 준비하라고 충고했던 인텔 관계자들의 말을 흘려들은 게 화근이 될 뻔했다.  프레스룸에 앉아 글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 대기 줄이 길어지고 있다는 다른 이의 말을 듣고 서둘러 행사장으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인텔 프레스 컨퍼런스 40분 전에 대기를 했지만 어쩐 일인지 입장을 위해 서 있던 줄은 매우 느리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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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마다 VR을 위한 오큘러스 리프트와 게이밍 PC가 설치됐다

20여 분을 기다려 마침내 프레스 컨퍼런스 입구에 도착해서야 이유를 알았다. 이번 프레스 컨퍼런스는 일반적인 프레스 컨퍼런스와 달리 모두 VR HMD와 게이밍 PC 등 가상 현실 체험 장비가 있는 자리에 앉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이 빈 자리를 확인하느라 입장이 늦어졌고, 우리 일행이 5분만 지체했어도 프레스 행사 자체를 보지 못할 수도 있을 만큼 자리는 거의 꽉 찬 상황이었다. 이날 인텔이 준비한 자리는 어림 잡아 250석 쯤. 제법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CES에 참관한 미디어에 비하면 턱도 없는 자리 수였다. 아마도 상당수 이날 인텔 컨퍼런스에 들어가지 못해 실망한 이들도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인텔이 수많은 매체들의 원망을 들을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인텔이 가상 현실로 변화할 산업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지금 가상 현실은 단순히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쪽에 집중되어 있지만, 앞으로 여행이나 업무에서도 가상 현실의 활용 범위의 확장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VR을 통해 직접 확인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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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은 좌석에 앉아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5가지 VR 콘텐츠를 체험했다

이날 인텔이 가상 현실로 보여준 것 가운데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먼저 여행이다. 아마도 쉽게 예상이 되는 부분은 360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VR HMD로 집에서 편안하게 앉아서 보는 것이지만, 인텔은 여기에 한 가지 마법을 더했다. 인텔이 VR로 보여준 것은 폭포가 있는 강가에서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베트남의 어느 시골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 가상 현실 영상은 사물 뒤의 사물을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다. 일반적인 360도 카메라로 촬영하면 사물의 뒤는 볼 수 없지만, 이 영상은 눈앞에 있는 드럼통 옆으로 고개를 기울이면 그 뒤에 숨겨진 사물이 나타난다. 이 영상 기술은 HypeVR의 카메라 장비와 렌더링 기술을 이용한 것으로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정보를 렌더링을 통해 공간에 구축한 것이다. 프레임 당 3GB에 이르는 대용량 영상은 단순히 영상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 사물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서 보거나 시점을 옮겨서 숨겨진 장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좀더 공간감과 몰입감을 느끼게 해 준다.

업무를 위한 활용은 태양열 발전소를 예로 들었다. 드론에 360도 카메라를 매달고 광활하게 펼쳐진 태양열 집광판 위를 비행하면서 하늘에서 내려다 보며 이상한 곳을 찾는 용도로 가상 현실을 활용한 것이다. 또한 농구 경기에서 관중석 한 자리가 아니라 여러 관중석으로 옮겨 다니며 관람하는 것도 가상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묘미도 예로 들었다. 이러한 활용은 스포츠 뿐만 아니라 콘서트 같은 곳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데, 인텔은 360도 VR 캡처 전문 업체인 VokeVR을 인수한 것과 더불어 라리가의 3개 스타디움과 계약을 맺은 뒤 이를 활용하는 실험을 올해 진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상 현실을 즐기려면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고성능 가상 현실 HMD가 필요하다. 이 결론에 이르게 된 인텔이 준비한 것이 바로 프로젝트 얼로이(Project Alloy)다. 가상 현실을 보다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인텔판 가상 현실 레퍼런스 HMD인 것이다. 물론 프로젝트 얼로이는 단순한 VR HMD는 아니다. 공간을 인지하는 리얼 센스 카메라와 인텔 프로세서, 디스플레이를 모두 결합한 무선 HMD의 표본이다.

인텔은 프레스 컨퍼런스가 끝난 뒤 인텔 부스의 미디어 라운지에서 사전 신청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얼로이의 프로토타입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30분 동안 테이블이 놓여 있는 작은 방 안에서 프로젝트 얼로이의 게임 콘텐츠를 체험해보고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프로젝트 얼로이 HMD가 좀 특이한 것은 공간의 사물을 인지하고 그에 맞게 게임 콘텐츠를 배치한다는 점이다. 일단 방의 크기, 방 안의 장애물을 탐색한 다음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뒤에 게임을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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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얼로이 프로토타입. 인텔은 좀더 가볍고 휴대하기 쉬운 형태의 제품을 올 연말에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게임을 하는 동안 인텔 관계자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테이블을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여기저기 몰려드는 외계 우주선을 물리치기 위해 이리 저리 움직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바닥에 있는 테이블을 건드릴 때가 있었는데, 사실 이 테이블은 가상 현실 안에서도 그 위치가 명확히 보였음에도 처음에는 무의식 중에 테이블의 존재를 무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상 현실 안과 실제 구성된 물체를 어느 정도 이해한 뒤 게임을 즐기는 게 한결 편해지기는 했다.

사실 프로젝트 얼로이 체험장에서 기대했던 시연은 게임보다 실제와 가상을 혼합할 수 있는 복합 현실 콘텐츠였다. 이에 대한 다른 데모 콘텐츠가 있는지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CES에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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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프로젝트 얼로이를 장애물이 있는 공간에서 프로젝트 얼로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날 체험한 프로젝트 얼로이 프로토타입은 6세대 인텔 코어 i7 프로세서가 내장된 것이었다. 1920×1080로 된 두 개의 디스플레이를 갖추고 있고 뒤통수 부근에 배터리를 달아놓은 까닭에 제법 묵직했다. 앞쪽에는 리얼 센스 기술이 적용된 2개의 적외선 카메라와 2개의 어안 렌즈 카메라 등 모두 4개의 카메라를 넣었고, 프로토타입이라 배터리는 오래 가는 편은 아니었다. 현장에 있던 인텔 관계자는 올 연말 제조사들이 양산할 제품은 7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넣을 예정인데 더 가볍고 배터리는 오래 갈 것이라고 덧붙였고, 이번 CES에서 레노버와 델, 에이서, HP 등이 목업을 공개하기도 했다. 아마도 올 연말쯤이면 더 많은 제조사들이 프로젝트 얼로이와 비슷한 제품들을 보게 될 듯하다.

이처럼 프레스 컨퍼런스와 프로젝트 얼로이 시연에서 가상 현실이 가져올 변화에 앞서 대응할 수 있는 기술과 환경을 구축하고 PC 기반으로 이동하기 위한 모든 것을 보여줬다. 인텔은 이번 CES에서 새로운 카비레이크 프로세서를 대량으로 공개했지만, PC의 미래에 대한 재설계에 있어 가상 현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 생태계를 넓히고자 하는 의지를 이번 컨퍼런스에서 강하게 드러낸 셈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텔 대변인조차 “인텔 역사상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이벤트”라며 혀를 내두른 VR 프레스 컨퍼런스는 애초에 없었을 게다. 전례 없던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인텔의 의지가 과연 PC 시장이 아닌 VR 생태게로 반전을 이끌어낼지 궁금하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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