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 4세대, 미지의 컴퓨팅 세대를 향한 항해의 첫 신호탄

태블릿은 참 어려운 분야다. 모바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PC라고 보기엔 그 능력이 제한적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 모바일처럼 폭발적이지 않고, PC처럼 규모 있는 시장이 아니라 해도 적지 않은 수요는 존재하니까. 때문에 답을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 대신 흐름을 지켜보는 제조사가 많다.

다만 모든 제조사가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태블릿의 성격을 확실하게 만들려는 의지를 보이는 제조사도 없는 것은 아니라서다. 지금 시점에서 그 의지를 보여 준 제조사를 찾아보면 세 손 가락에 꼽을 수준에 불과하지만, 펼친 손가락에서 애플의 이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하다.

아이패드 프로 12.9 4세대와 함께 발표된 아이패드 프로 11 2세대

그런데 태블릿 시장의 의지를 가진 이유는 그저 태블릿 유형의 제품인 아이패드를 내놓고 있는 꾸준함 때문은 아니다. 태블릿 시장에서 애플과 경쟁하는 몇몇 제조사들도 꾸준히 신제품을 내놓고 있는 터라 꾸준함을 시장에 대한 의지로 읽기는 어렵다. 

애플이 다른 제조사와 다른 점은 모바일과 PC 사이에 끼어 있는 태블릿의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특히 최근 출시한 아이패드 프로 12.9 4세대와 아이패드 프로 11 2세대는 그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시작점과 같은 제품이라는 점에서 애플의 달라진 전략을 짚을 수 있는 중요한 가늠자다.

 

모바일과 선 긋고 정체성 찾기 시작한 아이패드

지금까지 태블릿의 진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모바일과 같은 생태계를 공유하면서 더 큰 화면을 가진 모바일 장치의 길과 PC의 생산성 환경을 유지하면서 휴대와 조작이 쉬운 PC형 장치의 길이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으로 인해 태블릿 그 자체로서 존재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모바일과 PC 생태계를 보완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태블릿의 두 가지 진화 방향에서 초기 애플의 선택은 모바일의 확장이었다. 아이폰의 운영체제였던 iOS와 플랫폼을 공유하고, 더 커진 화면에 맞춘 앱을 만드는 도구를 준비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모바일의 뿌리에서 시작한 한계를 이겨 내는 게 힘들 수밖에 없는 출발이었다. 애플 펜슬을 더해 펜 입력 기능을 보강했으나, 여전히 더 커진 화면에서 미디어와 모바일 앱을 활용하는 본질이 바뀐 것은 없었다.

아이패드OS가 도입되면서 아이패드 홈 화면 뿐만 아니라 작업 환경까지 달라졌다.

결국 애플은 기존 아이패드의 뿌리인 모바일과 선을 그으면서도 애플 생태계 내에서 아이패드 시리즈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진행하는 신호탄을 쐈다. 그 첫 번째 신호탄이 아이패드OS(iPad OS)다. 2019년 9월에 배포를 시작한 아이패드OS는 아이패드와 iOS의 기능을 차별화하기 위한 태블릿 전용 OS로 분리한 것으로 슬라이드 오버와 스플릿 뷰 등 더 큰 화면에서 여러 앱의 작업을 쉽게 만드는 한편, 맥OS에서 보던 도크 같은 이용자 인터페이스에 변화를 담았다. 여기에 마우스 지원 및 맥을 위한 보조 입력 장치로서 역할을 위한 사이드카 등 대형 화면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아이패드OS의 분리만으로 이용자들은 큰 변화를 곧바로 체감하긴 힘들었다. 기존 아이패드에 새로운 운영체제를 올려도 물리적인 변화가 없던 터라 이미 고착화된 생각을 바꾸는 게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생산성 장치로서 성격 바꾼 아이패드 프로 4세대

달라진 애플 태블릿 전략의 시작은 아이패드OS이나 실제 변화를 체감하게 만든 것은 2020년에 출시한 아이패드 프로다. 아이패드 프로 4세대 12.9인치와 2세대(11인치)는 그동안 모바일과 맥OS 사이에 애매하게 자리를 잡았던 태블릿의 성격을 확실하게 바꾸기 위해 몇 가지 구성을 바꿨다. 그 중 눈여겨 볼 부분은 생산성을 위한 강력한 컴퓨팅 장치를 위한 변화다.

전통적인 개념의 생산성은 컴퓨팅 기반으로 정해진 일을 처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지금 시대의 생산성은 획일화된 개념이 아니다. 모바일의 생산성은 가벼운 업무 처리와 더불어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이나 영상, 녹음 등 스트리밍 콘텐츠 또는 원본 데이터의 생산을 포함하고, PC의 생산성은 복잡한 업무 처리와 함께 다른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품질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형태였다.

아이패드 프로 12.9 4세대 및 11 2세대의 카메라. 형태만 보면 아이폰과 비슷하다. 또한 라이다 센서도 새롭게 추가됐다.

기존 태블릿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모바일보다 가벼운 업무 처리는 유리하나 복잡한 업무를 다루기는 애매했고, 콘텐츠를 생산하고 처리하는 능력도 상대적으로 버겁게 만들었다. 태블릿도 엄연한 컴퓨팅 장치였지만, 모바일과 PC가 역할을 나눠 갖고 보니 태블릿에 부여할 임무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이다

애플이 2020년형 아이패드 프로에서 깨려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모바일 장치의 콘텐츠 생산성과 PC의 콘텐츠 처리 능력을 겸비하면서, 애플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투인원(2-in-1) 컴퓨팅 제품군을 보완하는 성격으로써 기능과 역할을 부여하려고 했다. 

아이패드 프로에서 가장 큰 변화는 카메라와 아이폰보다 강력한 처리 능력, 맥북 못지 않은 입력 환경이다. 사진과 영상 등 아이폰의 데이터 생산 능력을 아이패드 프로에 결합시키는 한편, 생성된 데이터를 더 이상 맥북 같은 컴퓨팅 장치로 옮길 필요 없이 강화된 성능의 아이패드 프로 안에서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기존의 터치 환경 또는 펜 환경을 강화하기 보다 아이패드 프로를 거치 했을 때 그 자체를 노트북처럼 쓸 수 있도록 설계된 매직 키보드로 아이패드 프로가 어떤 보완적 장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애플식 투인원 컴퓨팅 디바이스로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힐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매직 키보드에 거치한 아이패드 프로 11 2세대. 이 형태만 놓고 보면 더 이상 태블릿 장치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다.

아이패드 프로에 대해 이 같은 역할 조정은 장기적으로 모바일 장치를 써 왔고 앞으로 쓰게 될 이들에게 필요한 움직임이다. ‘당신의 다음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다’(Your next computer is not a computer)라는 아이패드 프로의 마케팅 문구는 기존 컴퓨터를 필요로 했던 생산성이란 의미가 모바일 시대를 거친 세대에게 다른 의미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모바일 세대가 인터넷에서 소비하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처리하는 장치라면 오래 전 업무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장치보다 모바일 시대에 적응한 세대에 맞춘 컴퓨팅 장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방향성은 아이패드 프로 12.9 4세대 및 11 2세대부터 적용되나 아이패드까지 공유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아이패드 프로와 같은 컴퓨팅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서다. 다만 모바일에 적응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고 인터넷 콘텐츠를 생산성의 중심에 놓는 시대에 미리 대비할 뿐이다. 물론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아이패드 프로 12.9 4세대와 아이패드 프로 11 2세대는 지금 이 시대를 소비하고 끝내는 태블릿이 아닌 새로운 컴퓨팅 장치를 쓰게 될 미지의 미래 세대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먼 항해를 떠나는 첫 신호탄임은 틀림 없다는 점이다.

덧붙임 #

  1.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 날자가 모두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6월 2일에 공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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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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