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C가 내놓은 2023년 1분기 PC 출하량 보고서는 여러 생각을 낳게 했다. 실적면에서 지난 해보다 크게 줄어든 출하량이 화제를 모았지만, 단순히 감소한 출하량만을 놓고 분석할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코 짧았다 할 수 없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원격 업무 및 교육에 필요한 PC의 폭발적 수요를 경험했어도 그 위기를 벗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PC 수요는 오히려 코로나19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어서다.
물론 코로나19를 벗어난 일상 회복 외에 PC 시장에 더 영향을 미친 것은 더 있다. 세계 패권 국가들의 갈등이 불러온 경제 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물고 물리는 패권국간 경제제재에 따라 시장은 축소되고 성장이 느려지는 동안 PC 수요만 늘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세계적인 경기 불황 및 성장 둔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분야는 IT 업계다. 경제 위기 때마다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소식은 대규모 IT 인력 감원 및 신규 채용 중단 같은 안타까운 소식이 주를 이루고, PC의 판매량 감소도 주요 뉴스로 다뤄지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세계적 경기 침체 때 구세주 같은 제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 때 등장한 넷북이 대표적이다. 넷북은 비록 성능은 낮더라도 인터넷 연결성을 중심에 두고 항상 들고 다니며 작업할 수 있는 최소의 가격 조건을 충족해 큰 인기를 누렸다. 장기간 이어진 경제 위기와 더딘 회복 때문에 저가 넷북은 PC 시장의 침체를 막는 버팀목으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넷북 같은 제품이 역할을 할 시기는 아니다. 그냥 전통적인 기능을 갖춘 PC만 필요했던 과거 금융 위기 때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패권국가의 갈등이 끝나고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 PC 출하량이 회복될 것이라는 IDC의 일반적인 예상과 달라질 수 있는 변수들이 존재한다. PC를 쓰는 경험이 바뀌고, 새로운 컴퓨팅 장치의 출현이 PC 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미치게 될 영향
PC를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흥미롭게도 업무를 하거나 게임 즐기거나 앱을 개발하거나 그 밖의 용도로 맞춰 PC의 구성품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이미 맞춰진 PC의 구성을 검토하고 구입한다. 이처럼 PC는 다양한 목적에 활용할 수 있는 범용성과 이용자 환경에 적합하게 구성할 수 있는 맞춤형이라는 강력한 특성으로 시장을 유지해 왔다.
지금까지 맞춤형의 기준은 기존에 설계된 프로그램을 잘 실행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작업에 맞춰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 결과를 얻어내거나 좀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그래픽 애플리케이션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오래된 개인 컴퓨팅의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즉, 이용자가 어떤 식으로든 입력해 놓거나 입력하는 데이터를 잘 처리하는 관점에서 PC를 활용해 왔고, 이에 맞는 맞춤 설계를 해 왔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눈에 띄게 발전해 온 생성형 AI가 이러한 PC의 흐름을 바꿀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에서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다채로운 답변을 생성하거나, 후많은 이미지와 영상을 학습하고 이용자의 지시에 맞는 놀라운 결과물이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요구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챗GPT에서 AI의 답변 능력을 확인한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적용한 빙챗으로 대중적 접근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자사 서비스에 코파일럿 같은 AI 능력을 덧대면서 AI 활용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달리2나 미드저니 같은 생성형 이미지 서비스를 넘어 이젠 몇줄의 프롬프트만으로 영상을 만들거나 변환하는 생성형 비디오 AI 서비스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미지, 문장, 소리 같은 여러 데이터 유형을 한번에 알아채고 그에 맞는 답 또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멀티모달 AI 연구도 활발해 머지 않아 일반인들이 경험하게 될 듯하다.
이처럼 점점 더 다채로워지는 생성형 AI 서비스는 지금 작동하는 대부분의 PC에서 활용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점점 많은 이용자들이 AI를 활용한 일들에 적응을 시작하고 있다. 앞서 데이터를 입력해 결과를 받았던 PC 이용자들이 AI 도구를 통해 오히려 데이터를 뽑아내는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을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변화는 결국 PC를 쓰는 경험을 바꿀 수밖에 없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물론 예전처럼 게이밍을 위한 고성능 PC나 가벼운 업무를 위한 작업용 PC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겠지만, AI를 활용하는 응용 프로그램의 증가는 이를 더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시스템을 필연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다. 생성형 AI에 적합한 신경망 코어와 추론 엔진 등을 강화한 하드웨어 및 시스템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AI에 적합한 기능을 가진 운영체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유일 수밖에 없다.
당장 많은 이들이 이러한 PC를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AI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나고 나름의 방식 대로 AI를 활용하는 법을 찾아내면 작업에 필요한 PC의 부족한 점을 충족할 방법도 찾게 되는 만큼 PC 부품 및 완제품 제조사들도 준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결국 PC 수요 회복 시점이 오더라도 지금 생성형 AI로 바뀌는 경험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PC 수요는 이전보다 더 나아진 상황으로 복귀하긴 어렵다.
XR이라는 새로운 컴퓨터 시대의 도래
PC 수요 회복의 또다른 걸림돌이자 변수는 새롭게 떠오르는 컴퓨팅 장치의 등장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장치의 의미는 PC보다 교체 수요가 더 짧은 컴퓨팅 장치다. 이는 과거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에서도 가파르게 성장했던 스마트폰 시장과 정 반대의 결과 보여준 것이 바로 PC 시장이었다.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능 여력이 남은 PC 교체보다 필수적 휴대 전화를 대체하는 통신 결합 휴대 컴퓨팅 장치였던 스마트폰으로 쏠림 현상이 몇 년 동안 지속됐다.
이처럼 PC 시장의 수요 감소 시기에 등장하는 새로운 컴퓨팅 장치는 PC 수요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높이는데, 지금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분야가 있다. 가상 현실(VR), 혼합 현실(MR), 증강 현실(AR)을 아우르는 XR이다. 생성형 AI가 일을 하는 방식을 바꾼다면, XR 헤드셋은 디지털 세계의 상호 연결 경험을 바꾼다는 점에서 PC보다 우선 고려할 컴퓨팅 장치의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지금 여러 제조사가 XR 헤드셋을 내놓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상호 작용의 개선에 대한 당위성을 제공한 것은 코로나19 유행이었고, 이에 대한 대비책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의 출현으로 이전보다 좀더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닌 데다 새로운 변종이 유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코로나19의 위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행인 점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디지털 세상은 예상치 못한 피난처가 됐다는 것이다. 단지, 공간으로 이어진 물리적 세상 만큼 상호 작용을 제공할 수 있게 준비된 곳은 많진 않았다. 몇몇 가상 현실 기반 상호 작용 서비스들이 그나마 디지털 세상에 대한 높아진 관심도 덕분에 좀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업계의 마케팅 용어인 ‘메타버스’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계기로 작용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는 XR 분야의 필요 이유와 앞으로 보게 될 궁극적인 디지털 세상의 형태를 빠르게 공유하는 일종의 촉매제가 되어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앞당기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흥미롭게도 코로나19 시대의 수혜를 얻은 가상 현실을 넘어 다음 단계인 혼합 현실로 넘어온 지금, 혼합 현실 기반 XR 헤드셋 시장에 면면이 화려한 선수들이 등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가상 현실 헤드셋 대중화를 연 메타나 HTC 바이브, 피코가 혼합 현실 시장으로 먼저 움직였고, 애플이 올 여름 리얼리티원, 또는 리얼리티프로(가칭)를 공개하는 게 거의 확정적이다. 삼성전자도 구글과 퀄컴과 손잡고 하반기 갤럭시 글래스(가칭)라는 브랜드로 혼합 현실 헤드셋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스마트 장치 제조사들도 CES 2023을 기점으로 저마다 준비한 XR 헤드셋을 한두가지씩 공개했다. 즉,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자들이 XR헤드셋으로 모인다는 것은 결국 시장을 키우기 위해 많은 자본을 쏟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XR 헤드셋이 PC를 대체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PC 애플리케이션이 훨씬 다채로운 데다, PC에 견줄 만한 성능을 갖기도 어렵다. 오히려 PC와 함께 꺼야 할 컴패니언 장치로써 역할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PC 없이 작동하는 독립형 XR 장치들이 쏟아지긴 하겠으나, 아직 전력 효율을 포기할 수 없는 장치라는 특성 때문에 고성능 PC만큼의 컴퓨팅 성능을 갖추는 덴 시간이 필요해서다. PC 애플리케이션을 대체하는 것도 녹록치 않기 때문에 결국 원격 데스크톱이나 PC와 연동하는 다양한 그래픽 작업처럼 당분간 더 나은 성능을 끌어 쓰기 위해선 여전히 PC와 함께 쓸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러나, XR 헤드셋의 수요가 높아도 PC 수요를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하지는 못할 듯하다. 대부분의 XR 헤드셋은 기본적으로 독립형으로 작동하고 PC에 연동하는 것은 선택에 불과해서다. PC가 있다면 더 잘 쓸 수 있지만, 이는 최신 PC가 아니라 조건에 맞는 PC면 충분하기 때문에 새 PC의 수요를 끌어내는 데 영향을 미치긴 어렵다는 의미다. 결국 15년 전 스마트폰이 성장하던 시기처럼 XR 헤드셋에 우선 순위를 두는 현상이 나타나면 당연히 PC 수요의 회복 속도도 더디게 만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나마 안심이 되는 부분이라면 지금 당장 스마트폰처럼 시장 쏠림이 심하진 않을 것이라는 점일 것이다. 아직 XR 헤드셋은 생활에 필수적인 스마트폰처럼 꼭 써야 할 장치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서다. 하지만, 제조사 마케팅을 통한 제품 보급이 가속화되고, 디지털 공간에서 상호 작용이 늘어날 수록 XR 헤드셋에 대한 중요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 데다, PC의 주요 애플리케이션을 가상화를 통해 XR 헤드셋에서 실행하게 되면 PC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시기가 앞당겨질 수는 있다. XR 헤드셋이 찻잔 속 태풍처럼 볼 일만은 아닐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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