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라봤다. 10년 전 산 아이폰 2G가 혁신의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이었음을, 애플의 도전은 순진하다고 조롱했던 나 자신이 순진했음을, 그리고 무지함을, 또한 한 순간 스쳐가는 바람으로 끝나지 아니했음을… 줄곧 아이폰과 애플의 반대편에 서 왔던 나는 이런 고백으로 10년의 아이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오늘은 짧게 또 다른 아이폰 X를 이야기한다. 아이폰의 시조, 스티브 잡스를 기리기 위한 스티브 잡스 극장(Steve Jobs Theatre)의 첫 개막작들 중 하나. 애플워치, 애플TV 4K, 아이폰 8과 8플러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무대에 올려진 새로운 아이폰. 아이폰 X라고 쓰고 아이폰 10이라고 읽는, 앞으로 10년을 말해야 할지도 모를 아이폰이다.
나는 아이폰 X를 현장에서 접한 이들의 평가나 이 제품에 대한 온갖 의견에 대해 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또한 아이폰 X의 혁신이 있는가 없는가를 대해 논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이폰 X가 조금 앞서 보여주려한 그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작은 변화에 대해 말하려는 것뿐이다.
사실 아이폰 X를 발표하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내용은 프로세서였다. 아이폰 X가 어떻게 생겼든, 무슨 기능을 하든, 얼마에 팔든 그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프로세서가 궁금했다. 필 쉴러가 아이폰 8과 함께 A11 바이오닉 프로세서의 CPU와 GPU 구성을 설명했을 때 그게 끝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고, 그 의심은 아이폰 X를 소개하던 필 쉴러의 입에서 신경 엔진(Neural Engine)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온 순간 자연스럽게 풀렸다.
신경 엔진. CPU와 GPU가 대부분을 처리하는 프로세서의 또 다른 유형을 처리하는 코어다. 이 코어의 역할은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의 추론을 위한 것이다. 보통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을 마친 이후 새로운 데이터를 입력했을 때 그것이 무엇인가를 예측하거나 판단하는 데 쓴다. 이는 스마트폰 같은 장치에서 인터넷 연결 없이 장치 스스로 사물을 인식하거나 자연어 처리, 번역 같은 수많은 지능형 기능이나 서비스를 처리하는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A11 바이오닉 프로세서의 신경 엔진은 2코어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애플은 2코어로 된 신경 엔진이 어떤 형태로 구성되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600기가옵스(Giga Operation Per Second)의 처리 성능만 밝혔을 뿐이다. 사실 필 쉴러 부사장이 6천억옵스라고 말한 부분은 좀 이상한 부분이다. 600기가 옵스라고 줄여도 될 결과를 세기도 힘든 긴 숫자로 표기했으니까. 그러니 코어 성능을 부풀리려는 인상이 짙었던 것도 부인하긴 어렵다. 어쩌면 코어 성능은 다소 의심을 살만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 엔진을 탑재한 것은 아이폰이 지능형 스마트폰 단계로 한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아이폰 X에서 페이스 ID의 얼굴을 인식하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보조 용도로 쓴다지만, 신경 엔진은 증강 현실을 위한 사물 인식의 속도를 올리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내장된 사진을 분석해 원하는 사진을 더 빨리 찾거나 분류할 수도 있다. 인식된 얼굴을 기반으로 애니모지의 움직임을 실시간 반영하는 역시 이 코어의 능력을 가져다 쓴다.
그런데 미래의 신경 코어가 이런 역할 정도에 그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지능형 기능을 접목해야 하는 스마트폰의 미래에 있어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보다 더 복잡한 일을 현명하게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은 늘어날 테고, CPU나 GPU와 다른 기계 학습의 추론 가속이 가능한 프로세서의 중요성을 아이폰 X를 통해 실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CPU가 계산하고, GPU가 표현하고, NPE, 또는 NPU가 판단하는 것. 그 시작점에 아이폰 X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신경 프로세서의 중요성은 애플 만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A11 바이오닉의 신경 엔진과 비슷한 설명을 지난 IFA에서 이미 들었다. 화웨이가 기린 970 프로세서에 탑재한 신경 처리 유닛(NPU)이 A11 바이오닉의 신경 엔진과 거의 같다. 하지만 화웨이는 기린 970 프로세서를 탑재한 메이트 10을 다음 달에야 내놓는다. 지능형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아이폰 X가 발을 먼저 들이민 셈이다. 어쨌거나 지능형 스마트폰 시대로 가는 길을 먼저 떠난 아이폰 X를 또 다시 따라 잡아야 하는 모양새가 됐다. 지능형 스마트폰 시대. 아이폰 X는 이미 그 길을 떠났다.
덧붙임 #
아이폰 X의 전면 카메라를 이용한 페이스 ID는 단순히 카메라로 얼굴을 알아채는 것이 아니라 닷 프로젝트 센서로 얼굴의 깊이를 인지하고 IR 센서로 홍채를 감지하는 두 가지 작업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단순히 얼굴 모형만 비슷하다고 잠금이 해제되거나 애플 페이가 작동하진 않는다.
저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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