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전자가 2021년 4월 5일, 이사회를 통해 LG MC 사업부의 향방을 최종 결정한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는 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LG 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손을 뗀다는 그 답을.
이러한 LG 전자의 선택에 대해 아마도 환영의 박수를 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쌓인 모바일 부문의 적자 규모를 감안하면 아무리 통큰 사업을 벌이는 대기업이라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니 지금이라도 과감한 결단을 내려 적자 사업을 정리하는 것에 일부는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결정이 LG 전자의 미래를 돌이킬 수 없는 시대로 후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LG 전자가 가전 분야의 전통적인 강자라고 해도, 현재는 물론 미래에 필요한 동력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라서다. LG 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가 답이 될 수 없는 4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1. 디지털 세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이유로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특히 오늘 날 흥미로운 변화 중 하나는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디지털로 처리된 결과를 다양한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보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삶이 디지털로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도 이뤄지는 날을 향해 수많은 기업들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디지털 세계는 결국 컴퓨팅에 기반한 세계라는 점이고, 여기엔 강력한 컴퓨팅 장치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한 때 불가능하고 부정적인 의견을 낳았던 가상 현실이나 증강 현실, 혼합 현실 같은 기술들도 어느 샌가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데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디지털 공간의 적응을 시작한 때다.
이러한 디지털 세계의 흐름에서 스마트폰은 매우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디지털 세계에 필요한 컴퓨팅 및 네트워크 파워를 손쉽게 제공하는 한편, 그러한 처리 능력을 기반으로 다른 장치 환경으로 확장할 수 있는 중심이라서다. 즉, 스마트폰이 가진 능력을 분해하고 흡수할 수 있는 다른 대안 장치가 나오기 전까지 스마트폰은 누구나 휴대할 수 있는 최적의 컴퓨팅 장치라는 점이다.
LG 전자가 스마트폰 부문을 철수하면 더 이상 이 같은 디지털 세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디지털 세계의 흐름을 좇지 못했으나, 앞으로 이를 따라갈 능력을 기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컴퓨팅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세계가 성장하고 있으나 그 세계를 성장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없애면 결과적으로 컴퓨팅 세상으로 복귀하기 힘들 수 있다.
2. 이용자 데이터를 모을 기회를 잃게 된다
대부분은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콘텐츠를 소비하는 장치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목적도 갖고 있다. 스마트폰은 데이터를 소비하는 것 이상으로 온갖 데이터를 수집하는 장치다. 이용자가 움직이고, 보고, 듣고, 확인하는 모든 데이터가 수많은 센서와 기능을 통해 수집된다.
물론 스마트폰의 과도한 데이터 수집 기능이 종종 사회적 마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필요한 기능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업체에게 있어 이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결국 스마트폰을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LG 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는 이용자 데이터를 얻을 기회를 잃는 것이다. LG 스마트폰 이용자로부터 합법적으로 데이터를 얻지 못하면 데이터에 기반한 또 다른 서비스와 사업을 준비하는 게 그만큼 힘들어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서비스 연구와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가 꼭 스마트폰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쉽게 공유할 수 없는 어려운 환경에서 최소의 데이터를 구할 수 있는 여건마저 차단되면 내부 개발자들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른바 ‘데이터 앵벌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즉, 데이터 기반의 개발 조직마저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개발 부서의 생산성 낙후는 전체 제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3. 빠른 교체주기 제품의 부재로 소비자의 관심이 떠난다
LG 전자는 스마트폰을 제외하더라도 다채로운 소비자용 제품을 만든다. TV 같은 영상 가전과 냉장고, 세탁기, 로봇 청소기, 공기 청정기 등 여러 생활 가전 제품들로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새로 가전 제품을 구매해야 할 상황이 왔을 때 LG 제품도 충분히 고려 대상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가전 제품은 필요한 때 반짝 갖는 관심 수준일 뿐, 그 이상을 끌어내진 못한다. 제품마다 다르지만, 가전 제품들의 교체 주기가 워낙 길다보니 해마다 새로 발표되는 제품에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다. CES나 IFA 같은 대규모 전시회에서 제품을 공개한 그 때만 반짝 관심을 받을 뿐, 실제 구매할 시간이 되기 전까진 관심 밖의 제품인 것이다.
스마트폰은 이러한 가전 제품과 결이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은 다른 제품 대비 교체 주기가 빠른 장치였다. 스마트폰 시장이 고속 성장했던 2010년대 중반까지 짧게는 6개월이었을 정도로 스마트폰의 교체주기는 매우 짧았다. 지금도 짧게는 1년, 길어도 2년마다 스마트폰을 바꾸고 있는데, 이처럼 짧은 교체주기를 가진 제품군은 스마트워치 외에 쉽게 찾기 어렵다.
교체 주기가 짧다는 의미는 그만큼 이용자들이 꾸준하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제품이라는 소리다. 1년 뒤에 제품을 바꿀지라도 제품과 관련된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이용자들은 면밀하게 살피고 갖가지 정보를 틈틈히 수집하면서 교체할 제품을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무엇보다 그 정보를 수집하는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여러 뉴스와 정보를 접하다보면 제조사와 관련된 인식도 하게 마련이고, 그만큼 해당 제조사 정보도 함께 얻을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이 없는 LG 전자는 이제 이용자들이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없는 기업이 된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동안 가졌던 관심이 끊어지면 LG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없어지는 만큼 소비자의 관심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교체 주기가 빠르고 관심을 끄는 다른 대안이 있다면 상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제품은 지금 LG 전자에 존재하지 않는다.
4. 스마트 가전을 묶을 모바일 허브가 없다
지금 대부분의 가전 업체들은 AI 기반의 스마트 가전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스마트 가전 제품들은 그 자체적으로 네트워크에 연동되고 클라우드를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상황에 맞게 자동적으로 기능을 작동하거나 새로운 재주를 보완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스마트 가전 제품의 연동은 대부분 모바일 장치를 통해 이뤄진다. 모바일 장치의 연결 기능과 모바일 앱을 통해 스마트 가전을 찾아내고, 꼭 필요한 설정을 손쉽게 마무리해 장치가 잘 작동하도록 관리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스마트 가전이 있으면 모바일 장치에서 연결과 해제, 기능 업데이트 같은 관리도 어렵지 않고, TV처럼 스마트폰과 가전 장치간 상호 연동 기능도 내놓을 수 있다.
문제는 LG 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하면 이제 이 가전 제품을 묶을 모바일 허브가 없다. LG 전자는 스마트 가전 제품을 묶을 수 있는 앱의 배포를 통해 그 기능을 유지하려고 애쓰겠지만, 이는 애초부터 가전 제품을 스마트폰에 묶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즉, 모바일 장치에 가전 연동 기능을 통합되지 않은 채 이용자가 필요에 따라 앱을 설치하도록 이용자들에게 절차를 알려야 하면 그 과정 자체가 불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LG 가전을 연동하는 기능을 다른 스마트 장치 제조사에 맡길 수도 없다. LG 전자가 기능 탑재를 요청해야 하는 까닭에 협상부터 쉬운 일이 될 수 없어서다. 결국 앞으로 LG 전자가 수많은 스마트 가전 제품을 내놓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쓰는 데 이용자들의 불편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피해는 조금씩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임 #
-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일이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21년 4월 4일에 공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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