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벨벳 이후에도 계속될지 모를 LG 스마트폰의 위기

어쩌면 LG 모바일 사업부는 지난 몇 년 동안 G와 V의 정체성을 묻는 끈질긴 질문에 지쳤을 지도 모른다. 두 플래그십 스마트폰 라인업의 경계를 나누기 힘들어 발생한 혼란을 어떻게든 정리해 달라는 바람을 담은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결국 LG는 이에 대한 해답 찾기를 포기하고 두 라인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기로 한 모양이다. LG는 G와 V 라인업을 연장하지 않는 대신 새로운 제품명을 내놓기로 발표했다.

새로운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제품이 LG 벨벳이다. 이미 이름과 디자인을 공개한 LG 벨벳은 5월 7일 공식 발표 후 5월 중순에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아직 제품을 내놓은 상황도 아닌 데도 새로운 제품명으로 변화를 주겠다는 LG의 선언이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비록 제품의 외형을 바꾸고 좀더 대중화된 제품을 내놓겠다는 의지를 담았다지만, 정작 LG 스마트폰 사업이 벌여 놓은 문제의 본질은 전혀 손대지 않은 탓이다.

이름만 바꾸고 하던 그대로…

거의 10년 가까이 라인업을 구축해 온 G 시리즈를 비롯해 조금 짧기는 해도 수년 동안 브랜드를 구축한 V 시리즈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 LG의 고민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브랜드로 구축하려는 배경에는 G와 V의 약화된 이미지로 인한 영향력을 개선하면서 LG 스마트폰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공감은 된다.

LG가 제품 명 발표에 앞서 정식 공개한 디자인 스케치

다만 LG 벨벳을 공개하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은 전혀 납득 되질 않는다. 새 이름을 쓰려는 것은 LG 스마트폰이 갖고 있는 기존 이미지를 바꾸려는 의지를 담은실천임에도, 정작 새로운 스마트폰이 가져야 할 신선함이나 신비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아마도 LG는 G와 V에 누적된 하드웨어 품질이나 소프트웨어 관리 등 소비자 신뢰의 문제로 판단하고 이름을 바꾸는 것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뢰를 잃은 것은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하던 대로 하는 조직의 문제가 더 커 보인다.

이를 테면 새 스마트폰을 발표하는 형식 조차 과거 G와 V 시리즈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LG는 신형 G나 V 스마트폰을 발표할 때 공식 발표 몇 주 전부터 이름은 물론 생김새의 일부분과 기능을 조금씩 공개해왔다. 그러다보니 발표 전 정보 공개가 전통처럼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이나, 매우 긴 기간 동안 공식 정보를 조금씩 공개하다보니 정작 제품 발표 때 흥미를 잃는 일이 다반사였다. 소문으로 도는 정보를 확인해 주지 않은 채 공식 발표를 기대하게 만들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진 것이다.

새로운 이름까지 정식 공개했지만, 너무 익숙하고 떠올리기 쉬워 신비함이나 새로운 이미지를 느끼기 어렵다.

LG는 앞서 신형 스마트폰을 발표할 때 썼던 방식을 LG 벨벳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선보이는 이유에 맞아 떨어지는 전혀 다른 공개 전략으로 기대치를 높이는 게 아니라, 새 이름과 생김새를 공개하고 심지어 자회사 블로그를 통해 주요 기능까지 유출하는 등 오히려 신제품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

신선함, 신비감을 느낄 수 없는 신제품 공개 방식은 계속 LG의 독이 되어 왔다. 특히 지나친 사전 정보 공개는 경쟁하게 될 다른 제품과 비교토록 함으로써 이용자들의 선택을 사전에 차단해 버리는 놀라운 반작용의 구실이 된다는 사실을 LG는 전혀 이해를 못하는 모양이다. 철저하게 비밀을 숨길 수 없는 시대라 해도 팬들이 상상하고 논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지 못하면 LG 스마트폰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뻔하게 보이는 새 스마트폰의 이름과 기존 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LG 스마트폰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고, 조직의 의식이 그대로인채 만든 제품이 새로운 영혼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플래그십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LG

지금은 개념이 많이 바뀌었지만, 과거 해상 전투가 벌어질 때 선두에 서서 수많은 전투선을 지휘하는 함선을 플래그십이라 불렀다. 선두에서 적과 먼저 대치하는 만큼 상대보다 더 강하고 가장 크며 빠른 함선을 만들기 위해 각 나라는 모든 건조 기술을 동원하고 자원을 쏟아부었다. 플래그십은 전투력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오늘 날 플래그십의 가진 이러한 의미는 비단 전투함만 국한되어 쓰지 않는다. 최고의 가치를 갖는 수많은 제품에도 플래그십의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그냥 비싼 제품에 붙이는 것이 아니다. 해당 기업의 기술적 역량을 모두 모아 만든 대표성을 갖는 최고의 제품을 플래그십 제품으로 칭한다. 때문에 특정 분야에서 플래그십 제품의 경쟁은 결국 기업 수준을 평가하는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LG가 정식 공개한 벨벳의 생김새.

스마트폰은 플래그십 경쟁이 치열한 곳으로 손꼽을 만하다. 스마트폰 제조사 간 경쟁이 워낙 심하다 보니 독보적 기술력과 더 강력한 성능을 뽐내기 위한 플래그십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는 제조사라도 1년에 내놓을 수 있는 플래그십 제품은 한두 가지 뿐이다. 거의 대부분 1~2년의 기간을 두고 개발하는 데다 최고의 기술과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만큼 다양한 제품을 내놓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흥행 실패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거의 비슷한 모바일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스마트폰을 만들다보니 성능 차별화는 고만고만해졌다. 결국 기본 처리 성능과 해당 프로세서에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엇비슷하다보니 제원이나 성능, 기능의 차별화를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던 것이다. 부품이 낼 수 있는 성능을 모두 쥐어 짜내는 기술, 더 빠릿하게 돌아가는 부품 구성과 AI 및 이미징 기술 도입, 더 오랫 동안 작동하고 온갖 거친 환경에서도 쓸 수 있는 배터리와 내구성 등 기본 제원에 없는 그 이상을 써 넣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디자인만 바꿨을 뿐 새로운 요소를 발견할 수 없는 후면 카메라 구성

이처럼 수많은 제조사가 최고의 가치를 가진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발표하고 있지만, LG전자는 플래그십의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LG 벨벳을 플래그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벨벳의 정확한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거의 확실해진 추정 제원만 놓고 보더라도 경쟁사들과 격차는 벌어져 있다. 한 단계 아래의 프로세서와 램, 저장 공간의 구성과 아울러 이미지 센서를 비롯한 카메라 구성과 후처리 능력, 디스플레이의 성능 등 모든 부문에서 LG 전자가 최고의 기술력을 집적해도 모자른 플래그십 경쟁에서 몇 걸음 뒤쳐져 있다는 의미다.

플래그십이 아니어도 많이 판매하는 스마트폰을 만들 수는 있다. LG 벨벳이 그런 방향을 지향하는 전략적 프리미엄 제품이라면 그런 주장은 이해된다. 하지만 프리미엄 전략을 위해 내놓은 LG 벨벳이 플래그십 제품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 우위를 보여줘야 할 플래그십 경쟁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제품의 조건은 전혀 갖추지 못해서다. 이는 LG 전자의 기술력에 대한 끝 없는 의문을 던지고 결국 G와 V때의 질문을 또 반복하게 만든다. LG는 정말 스마트폰을 만들 실력이 있는 것이냐고 말이다.

시대를 따르지 못하는 컴퓨팅 폼팩터 전략

LG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이나 이 글에선 길게 말할 수 없는 주제다. 다만 스마트폰은 여전히 많이 판매되는 품목이기는 해도 스마트폰만 전략의 중심에 둘 수 없는 환경으로 넘어가고 있으나 LG는 거의 무대응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미 프로세스의 디지털화를 통한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기업이 증가하고 사회 시스템도 그에 맞춰 변화하면서 활용하게 될 컴퓨팅 장치에 대한 방향성을 새롭게 잡아 가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코로나19 이후 인택트(Intact) 환경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에 대한 가속도를 붙이게 될 가능성이 높아 이러한 컴퓨팅 폼팩터의 방향 전환 요구도 높아질 것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애석하게 현재 LG 전자의 제품은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제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제조사가 극히 일부라는 점이 다행일지 몰라도 LG가 앞으로 수요가 늘 컴퓨팅 폼팩터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한 그 여파에 따른 스마트폰 부문에 문제는 더욱 축적될 지도 모른다.

덧붙임 #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 날자가 모두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4월 27일에 공개되었습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One Comment

  1. 한스빡
    2020년 9월 5일
    Reply

    전문가가 쓴 글이라 난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제품 많이 까이고 있는데 실제 2개월째 사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참 괜찮은 폰인데…쭉 삼성 노트 씨리즈만 쓰다가 첨으로 LG폰 써보는데 빠릿하고 화면 길고 커서 좋고 디자인이 진짜 맘에 들고 무선충전, 화면에 지문인식, 앨쥐페이, 방진방수, 트리플카메라, 엣지부가 앞면뒷면다 곡면 유리여서 그립감 좋다. 전에 쓰던게 노트FE여서 차이는 트리플카메라와 AP정도여서 사실 뭔가 막 새롭진 않긴하다. 아..5G라 빠르긴하네…일반적인 사용장에겐 아주 좋다. 좀 많이 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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