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가전 제품에 관한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무리 여러 IT 기술을 가전 제품에 접목하고 있다곤 해도 늘 그런 장치들을 옆에 두고 사는 건 아니기에 내가 다룰 영역은 아니라고 여겨 와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 광파오븐은 내가 그어 두었던 일종의 결계를 깨고 이 글을 쓰게 끔 그 원인을 제공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LG 광파오븐을 다루기 위한 LG 씽큐(ThinQ) 앱이 그 원인이다. 정말 씽큐 앱을 만든 개발자가 LG 광파오븐을 쓰면서 개발한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이 앱의 이용자 경험은 정말로 형편 없다.
1. QR 코드
LG 광파 오븐은 와이파이가 있는 모델이 있고 없는 모델로 나뉜다. 와이파이 모델은 당연히 스마트폰에 설치된 LG 씽큐 앱으로 제품을 연결하고 다양한 설정을 하라고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와이파이를 실은 LG 광파 오븐은 와이파이가 없는 모델과 눈으로 구분할 수 없다. 제품에 와이파이 모델이라는 그 어떤 표시도 없기 때문이다.
구매자가 와이파이 모델임을 알고 샀다 해도 설명서를 읽지 않고는 설정도 쉽지 않다. 이용자가 직접 앱 마켓에서 LG 씽큐앱을 직접 설치한 다음 오븐을 와이파이 모드로 바꾼 뒤에야 연결할 수 있어서다.
이렇게 일일이 수동으로 설정하는 건, LG 가전 제품을 사는 이용자의 IT 활용 수준이 매우 높을 거라는 개발진들의 강한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제품이 LG 씽큐 앱과 연결될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QR 코드 하나 없는 건 어느 시대의 제품인지 정말로 궁금하게 만든다.
2. 일차원적 UI
광파오븐과 연결 설정을 모두 끝내면 LG 씽큐 앱에 광파오븐이 표시된다. 이 광파 오븐을 누르면 이용자가 광파오븐의 모드를 설정하는 화면으로 바뀐다. 전자렌지, 오븐, 에어프라이어, 그릴 등 4가지 모드와 시간을 이 화면에서 정한 뒤 그 설정을 광파오븐으로 전송할 수 있다.
그런데 이 UI는 이용자가 광파오븐을 어떤 용도로 쓸지 명확하게 아는 이용자에게만 쓸모 있게 구성된 것이다. 정작 특정 레시피를 따르는 조리를 하거나 밀키트, 그 밖의 자동 모드를 쓰려는 이용자들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 상단의 레시피 메뉴를 눌러 비슷한 요리를 찾은 뒤 그 설정을 오븐으로 전송해야 한다. 수동보다 자동모드를 더 많이 쓰는 이용자라면 어떤 쪽이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할까?
3. 불편한 레시피 검색
LG 씽큐 앱을 쓰는 이유는 특정 요리를 할 때 정확한 모드와 조리 시간을 모르더라도 레시피를 검색해 자동으로 광파오븐의 값을 설정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레시피를 검색하는 것은 광파오븐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하지만 광파오븐의 레시피 검색은 앞서 말한 것처럼 광파오븐 메뉴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레시피 검색으로 들어가면 무조건 글자를 입력해야 한다. 음성 입력은 지원되지 않는다. 음성 입력을 받지 않으니 검색 창에 마이크 표시마저 없다. 어떤 요리, 조리를 하든 레시피에 따른 자동 설정을 하려면 요리와 관련된 글자를 하나라도 입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시대를 위해 만들어진 앱인지 알 수 없다.
4. 히스토리의 부재
LG 씽큐 앱에서 레시피를 검색해 보면 그래도 적잖은 수의 요리 레시피를 검색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반복적으로 데워 먹거나 조리할 수밖에 없는 음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마다 레시피를 검색한 뒤 해당 설정을 광파오븐으로 보내야 한다.
이게 불편한 이유는 LG 씽큐 앱에 히스토리 기능이 없어서다. 자주 이용했던 레시피, 최근에 이용했던 레시피 등 이용자가 이용한 레시피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정리하는 기능이 있다면 굳이 복잡하게 레시피 메뉴에서 검색할 필요 따윈 없지만, 이 앱에는 이런 기본적인 관리 기능 조차 없다.
5. 호빵 X, 찐빵 O
레시피 검색에서 호빵은 못찾고, 찐빵은 찾는다. 즉, 연관 검색어 기능도 없다는 의미다.
6. 불친절한 도구 설명
어떤 요리를 하기 위해 레시피를 검색하면 재료와 손질 방법이 정말 잘 나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 대한 설명이 매우 불친절하다. 바로 도구의 설정이다.
LG 광파오븐은 요리에 따라 석쇠와 발열팬, 찜망, 뚜껑 등 다양한 도구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레시피를 검색해 보면 필요한 도구들은 레시피를 찬찬히 읽지 않으면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광파오븐에 동봉된 레시피 책자에는 그림으로 필요한 도구와 설정 방법이 그려져 있지만, 디지털로 표시되는 레시피는 그런 게 없다. 콘텐츠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7. 기존 레시피의 이용자 보완 불가
레시피를 찾아 요리 또는 조리를 해도 재료 상황에 따라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때문에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요리를 했을 때 더 나은 다음을 위해서라도 이용자가 그 설정을 기록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LG 씽큐 앱에선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LG 씽큐 앱에서 자동 모드를 설정하려면 반드시 레시피를 찾아서 그 설정을 광파오븐으로 전송해야 한다. 하지만 냉동 또는 냉장 음식 중 상당수는 이미 요리가 되는 상태라 이에 맞게 광파오븐 모드와 시간을 설정하면 되는데, 이에 대한 설정 값을 이용자가 등록해 두고 필요한 때 찾아 쓸 수가 없다. 주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닌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하다.
8. 이용자간 레시피 공유 불가
LG 씽큐 앱의 광파오븐에서 제공하는 레시피는 매우 제한적이다. LG가 제공하거나 제휴한 일부 밀키트, 냉동 식품에 대한 자동 레시피만 찾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 유행하는 요리에 대한 레시피 및 설정이 거의 없고, 인터넷을 검색해 따로 레시피를 찾는 경우가 많다. LG 광파오븐을 쓰는 이용자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
씽큐의 본질을 모르겠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한 것에 아쉬운 마음이 여전하기에, 스마트 가전 제품에서 더 나은 것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기대를 애초에 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LG 광파오븐을 통해 다뤄 본 스마트 가전을 대표하는 씽큐 앱은 정말로 상상 이하라는 점에서 적잖이 충격을 받은 상황이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건지, 불만이 없는 건지,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건지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단지, 광파오븐과 씽큐 앱이 보여준 것을 스마트가전이라고 내세워서도 안되고, 말해서도 안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씽큐 개발자들에게 부탁하노니, 제발 광파오븐을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에게 집중해 주길 간곡히 요청한다.
덧붙임 #
1. 이 글은 2022년 1월 10일에 공개된 글입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엘지 관련부서에서 제발 좀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글을 쓴다는게 정말 귀찮음에 쉽지 않은데 고생하셨습니다. 모두 같은 마음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