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LG V30을 손에 쥐었을 때 나는 이 스마트폰이 좋은 평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다고 확신했다. LG 스마트폰이 공개될 때마다 이상하리 만치 관대한 칭찬들 속에 숨어 있던 불편함을 꽤나 참아왔던 필자에게 V30은 참을 만한 것 이상으로 마음을 후하게 쓰고 싶은 것이다. 물론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는 상대적 원인이 그 이전의 LG 스마트폰에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배경이지만 말이다.
일단 V30에 대한 나의 한 줄 평은 이렇다. ‘LG에게 기준이 되는 스마트폰’. 이는 리뷰의 결과가 아니다. 단지 느낌일 뿐이다. 고작 몇 십분 만져본 뒤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릴 수는 없기에, 발표 순간 만져보았던 그 이전의 수많은 LG 스마트폰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평가한 것이다. LG에게 기준이 된다는 말인즉, 앞으로 만들 LG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기준점, 그러니까 LG가 만들어야 할 스마트폰의 기준점이 ‘V30’이라는 이야기다. V30보다 못한 느낌을 갖게 만들지 않는 것. LG에게는 매우 어려운 숙제를 던졌지만, 기준을 세운 것보다 더한 칭찬도 어디에 없을 것이다.(다만 LG 스마트폰의 기준이라는 말에는 사후 서비스 등 사업적 부문까지 포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후하게 인심을 쓴다 한들 발표 당시에 드러난 하드웨어와 기능 사이의 미묘한 불균형에서 오는 불편함이 지금도 나를 흔들고 있어 찝찝하다. V30은 실물을 보는 이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스마트폰이라는 감 하나는 분명함에도 발표 현장에서 받은 메시지에서 그것이 제대로 전달했는가는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의 경이로운 진화에도 불구하고 그 하드웨어적 특징과 연결되지 않는 설명들이 오히려 V30을 어렵게 이해하게 만든다.
LG V30은 하드웨어의 변화로 인한 가치를 더 많이 설명할 필요가 있는 스마트폰이다. 이를 테면 과거 LG가 했던 말과 행동에 반성을 했든 안했든, 단순하지 않은 나비 효과는 불러온 OLED가 대표적이다. 백라이트를 없애 제품의 두께를 더 줄일 수 있었고, 이미지나 영상의 선명도를 더 높이는 HDR을 살릴 수 있게 됐으며, 가상 현실 플랫폼인 구글 데이드림에서 요구한 리프레시율까지 충족했다. OLED로 바꿨을 뿐인데 더 얇고, 더 보기 좋으며, 더 많은 활용까지 덤으로 얻었고, 이용자는 손에 들고 보는 것만으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OLED로 교체는 V30뿐 아니라 LG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옭아 매던 족쇄를 모두 풀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OLED에서 일으킨 나비 효과에도 불구하고 V30의 핵심 메시지는 그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LG는 엉뚱하게도 V30을 영상 촬영에 특화된 스마트폰이라 말한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공유하는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옳거니! 그닥 나쁘지 않은 메시지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 안에서 다양한 시네 필터를 적용하고 전문가들의 환호를 얻을 수 있는 시네 로그 같은 값비싼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갖추었다는 게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것이 하드웨어의 어떤 특징과 연결되느냐다. 꼭 V30이어야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키 역할을 하는 광학 하드웨어는 무엇인지 빠졌다. 질 좋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한 광학 하드웨어와 그 위에 효과를 적용하는 게 동일시 할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이번 발표에서 LG는 이 둘을 교묘하게 겹쳐 놓았다. 말 그대로 좋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V30만의 하드웨어적 특징에 무엇이 반영되었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 먼저 나왔다면 없을 지적이리라. 하지만 마치 특정 구간을 건너 뛴 음악을 들었을 때처럼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다.
7장의 렌즈 가운데 맨 앞을 유리 소재 렌즈로 바꾸고 밝기를 올린 것이 촬영한 영상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또한 굳이 최고급 이미지 센서를 쓰지 않아도 더 좋은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거로 삼기에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15개나 되는 시네 필터를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성능 좋은 퀄컴 스냅드래곤 835 프로세서의 공헌도 이미지 프로세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영상을 위한 광학계의 진화에서 곁들여진 것은 아니어서 조금은 공허한 느낌이다. 일상을 영화처럼 촬영할 수 있다는 V30이라는 메시지 자체는 좋다. 단지 그것이 꼭 V30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이 부분은 다시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전통적인 LG 스마트폰의 내구성 문제에 대한 해답을 V30은 엉뚱한 곳에서 내놨다. LG 스마트폰들은 혹독한 군사 테스트(MIL-STD)를 다수 통과할 만큼 물리적 내구성 하나 만큼은 으뜸이다. 떨어뜨리고 마구 굴려도 화면이 깨지거나 본체가 상하는 일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 스마트폰의 내구성에 신뢰에 금이 가는 이유는 메인보드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지만, LG는 V30에서 그 신뢰의 회복을 위한 답을 말하지 않는다.
V30은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해 쓰는 H빔과 유사한 뼈대를 심었다. 물리적 내구성을 더 높이기 위한 조치이고 아주 환영할 만한다. 단지 물리적 내구성을 아무리 높여도 메인보드 불량으로 일어나는 무한 부팅 같은 현상을 막는 조치는 아니라는 게 문제일 뿐. LG 스마트폰의 메인보드 불량이 단순한 문제인가? 이용자의 데이터가 날아가는 문제가 그렇게 만만한가. 본체가 깨지면 돈을 주고 부품을 갈면 되나 데이터는 아니다. 신뢰의 핵심은 물리적인 게 아니라 데이터 그 자체다.
1년 쯤 쓴 LG 스마트폰에서 슬슬 나타나는 무한 부팅 같은 문제들이 여러 스마트폰 커뮤니티에 보고되고 있고, G5에 이어 V20까지 확대되고 있다. 겉은 멀쩡한데 속에 골병을 앓아 온 LG 스마트폰의 확실한 처방전을 기대했던 이에게 V30은 새로운 처방전을 썼는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다. 우리가 또 다시 1년 뒤를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실물을 보기 전에 의문을 가졌던, 펜을 꺾어 부러뜨리고 노트를 찢어 경쟁사를 자극했던 LG의 도발은 V30의 직접 본 이후 그럴만 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구글과 지능형 서비스, VR 부문에서 손을 맞잡으며 현재와 미래의 LG 스마트폰에서 보기 힘들 것이라던 기능과 서비스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등 새로운 토대를 다지는 변화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V30을 처음 접하게 될 많은 이들에게 나올 LG 스마트폰의 이미지는 긍정적인 쪽에 가까울 것이다. 종전 LG 스마트폰을 보며 혀를 찼던 이들까지 유래 없는 평가를 내린다 해도 그게 아주 이상할 것 같지 않다.
다만, V30에서 강조했던 메시지가 통하고 있다는 착각만은 하지 않길 바라고 싶다. 왜냐하면 LG가 강조한 영상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냥 ‘만듦새가 좋아서’, ‘화면이 좋아서’, ‘사진 찍기 좋아서’, ‘소리가 좋아서’ 같은 단순한 이유들이 LG가 주장한 메시지를 덮고도 남을 장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늘 LG 스마트폰은 그랬다. 제조사가 말한 것과 이용자의 이유는 달랐고, V30도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 제조사의 주장과 다른 LG 스마트폰을 선택한 구매자의 이유. 어쩌면 LG에서 태어나는 스마트폰이 갖게 되는 태생적 지병은 V30의 발표에서 또 한번 도진 게 아니었을까?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V30 살까 싶긴했는데 좀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이폰 8 국내1호 개통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