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버터스카치로 살펴 본 시각적 튜링 테스트의 목표

메타는 오큘러스 인수 이후 리프트와 퀘스트, 퀘스트2 등 가상 현실(이하 VR) 대중화를 위한 다채로운 헤드셋을 출시했다. 하지만 이 헤드셋들이 VR 대중화의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해낸 성과는 모두 인정하더라도, 아직 완성형이라 말하긴 이르다. 출시 당시 기준으로 각 기술 구성 요소와 시장 접근성에 대한 균형을 따진 최적의 조합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VR 헤드셋이라는 산물이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VR 헤드셋은 동작을 인식하기 위한 카메라를 포함한 갖가지 센서와 이를 처리하기 위한 컴퓨팅 프로세서도 중요하지만, 디스플레이와 광학 렌즈의 결합에서 보게 되는 독특한 시각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 즉, 디스플레이와 광학 렌즈의 선택이 VR 헤드셋의 시각적 품질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편적인 부품들을 조합해 해마다 새롭게 출시하는 디지털 장치와 다르게 더 나은 처리 성능과 더 뛰어난 센서의 출현에도 새로운 VR 헤드셋을 내놓기 힘든 것은 시각적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디스플레이와 광학 설계에 대한 변화가 중요해서다. 때문에 제조사가 적지 않은 시간 간격을 두고 새 VR 헤드셋을 출시할 땐 그만큼 더욱 신중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오큘러스를 인수한 뒤 페이스북 시절까지 꾸준하게 VR 헤드셋을 내놓고 있는 메타도 여러 차례 어려운 결정을 해왔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다. 무엇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더 개선된 시각적 품질을 가진 대중적인 VR 헤드셋의 여정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일이라서다. 다행인 점이라면 메타가 시각적 품질 향상과 관련해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하고 그에 대한 성과를 자주 공유해 왔고, 지난 6월 20일에도 그 메타 리서치 랩 탐방에 대한 영상을 공유하면서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시각적 튜링 테스트(Visual Turing Test)라는 주제 속에서 몇몇 개념 증명을 실현한 헤드셋을 몇 가지 공유했다.

메타가 공개한 버터스카치 시제품

메타는 그 이전에도 온라인 이벤트나 소셜 미디어에서 기회를 만들어 목적에 맞는 여러 헤드셋 시제품을 공개해 왔다. 일찍이 동공의 위치에 따라 가상 공간 속 사물의 깊이를 더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다중 초점(Varifocal)을 위한 하프돔 시리즈도 보여준바 있다. 하프돔 시리즈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추적해 시선이 머무는 가상 공간 내의 사물에 초점을 맞추도록 설계한 VR 헤드셋 시제품이었다. 이 시제품은 각 모델마다 각각 다른 안구 추적과 다중 초점을 위한 렌즈 시스템을 갖췄다. 페이스북 시절인 2018년 10월 오큘러스 커텍트에서 공개한 다중 액체 전자 렌즈를 채택한 하프돔3를 공개하기 전까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하프돔 0, 1, 2 등 3가지 시제품을 더 만들었다.

벌써 4년이 흘렀음에도 하프돔은 여전히 실험실에 머물러 있다. 언뜻 가장 앞서 출시될 수도 있는 헤드셋처럼 슬쩍 연기를 피웠던 때가 있지만, 결국 출시 결정은 미뤘다. 이는 하프돔의 생산에 필요한 세밀한 부분의 검토보다 앞서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가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여전히 VR 세상이 현실과 쉽게 구분되는 것도 서둘러 해결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다.

지난 6월 20일, 메타 CEO와 마크 주커버그와 메타 리서치 랩(종전 페이스북 리서치 랩)을 이끄는 마이클 애브라시의 대담에서 앞서 공개했던 다중 초점을 염두에 뒀던 하프돔 시리즈를 비롯해 전혀 다른 관점의 VR 헤드셋 시제품을 여럿 공개했다. 이 헤드셋 시제품들은 메타가 시각적 튜링 테스트라는 목표를 통과하기 위한 기술들을 실험한 것들이다.

메타는 시각적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구현되어야 할 4개의 기술 스택을 설명했다. 하나, 올바른 초점 심도를 제공하는 ‘다초점’ 기술, 둘, 1.0 시력을 능가하는 해상도, 셋, 광학 렌즈에 유발되는 광각 수차의 왜곡 교정, 넷, VR 내의 HDR 등이다. 이번에 공개한 헤드셋은 각각의 기술 스택을 증명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만든 것들이다.

공개된 여러 시제품 가운데 좀더 눈여겨 볼 것이 버터스카치(Butterscotch)라 부르는 헤드셋이다. 버터스카치 헤드셋 시제품은 메타가 ‘가상과 실제 현실의 격차’ 문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각도당 픽셀(Pixels Per Degree)이라는 개념에 중점을 둔 실험 제품이다.

가로와 세로 픽셀로 표기되는 일반 디스플레이와 달리 각도당 픽셀은 VR/AR 헤드셋의 선명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다. VR 헤드셋은 디스플레이에서 출력된 빛을 눈으로 모아주는 광학 렌즈의 조합을 통해서 보게 되는데, 픽셀 밀도는 광학 렌즈의 화각에 영향을 받는다. 이를 테면 크기는 달라도 같은 수의 픽셀을 가진 디스플레이에서 렌즈 화각이 넓으면 가상 공간을 넓게 볼 수 있긴 하나, 픽셀과 픽셀 간격이 벌어져 세밀함이 떨어진다. 반대로 렌즈 화각이 좁으면 볼 수 있는 범위를 그만큼 좁히면서도 더 촘촘한 픽셀 간격을 유지해 더 또렷해진다.

메타가 공개한 버터스카치 헤드셋의 각도당 픽셀은 55다. 이는 우리 눈이 가상의 그래픽을 분간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알려진 60 PPD에 거의 근접한 값이다. 메타는 스카치버터가 2020년에 만든 가상 현실용 시력 차트를 기준으로 이를 읽을 수 있는 충분한 해상도를 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했다. 안과의 시력 차트처럼 VR을 썼을 때 얼마나 또렷하게 보이는지 보여주는 차트에서 시력 1.0에 해당하는 선명도를 드디어 구현해 낸 것이다.

메타는 시력 1.0에 해당하는 해상력의 디스플레이와 광학 렌즈를 버터스카치에서 구현해 냈다

이것이 얼마나 높은 해상력인지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 40만 원 안팎에 대중화된 VR 헤드셋인 메타 퀘스트2의 PPD는 20 정도. 버터스카치는 퀘스트2의 2.5배 더 놓은 해상력을 가진 것이다. 물론 상용화된 60 PPD VR 헤드셋도 존재한다. 광학 렌즈와 디스플레이의 중앙부만 부분적으로 60~70 PPD를 구현한 VR 헤드셋인 바르조(Varjo) VR-3나 XR-3는 3천395달러, 5천999달러에 판매 중이다. 비싼 가격과 높은 제원의 PC를 요구하고 있는 터라 대중적 접근을 포기하고 특수한 산업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메타의 방향성과 여러 모로 다른 부분이 있다.

물론 이러한 고밀도 화질을 위해 버터스카치는 색다른 광학 조건을 세웠다. 메타는 버터스카치에서 55 PPD를 구현하기 위해 퀘스트2의 절반 시야각으로 좁힌 새로운 하이브리드 렌즈를 썼다고 설명했다. 퀘스트2가 90도의 렌즈 시야각을 갖고 있으므로 이 말대로 계산하면 45도 안팎의 광학 렌즈 시야각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디스플레이 픽셀 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45도 시야각에서 55PPD를 구현한 것으로 볼 때 눈당 가로(또는 세로) 2700 픽셀 안팎의 디스플레이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LCD인지 OLED 인지 정확한 디스플레이 방식은 이번 설명에선 유추하긴 어렵다.

어쨌거나 이 시제품이 PPD를 55까지 높이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상용화할 수준은 아니다. 45도의 시야각이면 쌍안경으로 정면만 보는 것 마냥 가시 영역이 매우 좁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시야각인 180도를 모두 구현할 필요까진 없다. 우리 눈이 180도를 볼 수는 있어도 실제 180도 전체를 선명하게 보는 게 아닌 데다, 망막에 초점을 맞추는 일부만 선명하게 보기 때문이다. 또한 눈으로 볼 수 있는 180도를 모두 구현하는 데 필요한 디스플레이 크기와 대량의 픽셀, 광학 렌즈, 이를 처리할 컴퓨팅 파워 등 기술적 한계도 여전하다.

메타가 이번 버터스카치를 소개하기에 앞서 선명도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먼저 언급한 것도 어느 정도 그 한계를 타협한 결과로 보인다. 메타는 2020년에 내세웠던 60 PPD를 충족하려면 8K 이상의 픽셀을 가진 디스플레이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8K에서 60 PPD를 구현할 때 렌즈 시야각은 130~140도 사이다. 메타가 140도 시야각과 60 PPD에 대한 목표에 대해 몇 년 전 오큘러스 커넥트 같은 행사 때부터 줄곧 강조했던 것임을 고려하면 버터스카치는 여전히 컨셉 증명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단계를 벗어나는 건 메타의 노력 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렌즈 같은 광학계나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은 메타 리서치 랩 같은 내부 연구소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기술에 기반한 부품의 양산은 또 다른 이야기라서다. 특히 60 PPD 헤드셋에 필요한 픽셀을 가졌으면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화면의 절반 정도 크기에서 구현되는 고밀도 8K 디스플레이는 2023년에 예정된 애플의 VR 헤드셋에 탑재될 것이라는 소문만 돌 뿐, 아직 이를 탑재한 대중적인 헤드셋은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의 시도가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다. 이러한 연구와 실험으로 얻은 결과가 더 빠른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되어서다. 특히 실제 현실과 구분하기 쉬운 지금의 대중적 VR 헤드셋에 내재된 시각적 한계의 원인과 이를 넘어설 방법을 다방면으로 찾으려 노력 중이라는 측면에선 의미는 있다. 그 중에서도 각도당 픽셀을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얇은 VR 헤드셋을 만든다 해도 시각적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없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왜 메타가 버터스카치를 포함한 여러 VR 헤드셋 관련 연구들을 공유했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인간의 시각으로 현실과 가상을 거의 분간하기 힘든 시각적 튜링 테스트는 결국 가상 현실 헤드셋이 갖춰야 할 기본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못박은 셈이다. 다만, 그 목표를 언제 이룰지는 알 수 없고, 물음표는 여전하다.

덧붙임 #

이글은 2022년 6월 29일에 공개됐습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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