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그렇게 오지 않는다

이때다 싶은 걸까? 메타버스와 관련된 일부 기업의 움직임으로 인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메타버스가 안될 줄 알았어’라는 뉘앙스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메타버스’가 헛소리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만만치 않은 반응도 경험했다.

물론 코로나 기간 동안 불어 닥친 메타버스라는 광풍에 우려될 만한 부분이 없진 않았다. 메타버스 자체를 이해 못하거나 잘못된 정의를 내린채 그 키워드만 앞세운 한탕주의가 IT 분야를 넘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으니까. 메타버스가 모든 자본을 끌어들이는 마법의 단어가 됐던 것이다.

그랬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줄어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온갖 자본을 끌어들였던 마법의 단어 목록에서 사라진 것이다. 지금은 메타버스가 아니라 ChatGPT가 그 자리를 차지한 상태다. 뭔가를 말하면 척척 답하는 거대 언어 모델 기반의 인공 지능 기술과 관련 제품(서비스)은 그것이 무슨 이름이든 간에 한동안 ChatGPT라는 단일 키워드로 모든 영역에서 뜨겁게 불탈 것이라는 점은 ChatGPT에 물어보나 마나다.

비록 ChatGPT 같은 인공지능 모델이 또 다시 IT를 넘어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해도, 이제와 메타버스란 것이 없다거나 부질없는 망상 쯤으로 치부하는 시각들은 솔직히 한심하게만 보인다. 아니, 메타버스에 투자한 기업의 실적 부진과 빅 네임의 일부 사업 철수가 마치 메타버스 산업이 쇠퇴하고 마치 그런 건 오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면 박수를 쳐주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 메타버스에 대한 비판은 옆에서 안을 볼 수 없는 스테인레스 맥주 컵에 담긴 맥주를 보면서 위에 올려진 거품 밑엔 맥주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거품 밑의 맥주가 얼마나 차 있는지 보려면 거품을 걷어내야 하는 데도, 거품만 보고 하는 이야기다. 어쩌면 거품이 조금 걷히자마자 “거 봐, 아직도 거품만 보이고 맥주는 없잖아”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메타버스의 부진을 지적하는 글 가운데 상당수는 메타버스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거나 잘못 이해한 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 시각을 갖게 된 원인이라면 메타버스가 특정 기업의 주도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실수일 수도 있다.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은 그것을 가속하도록 도울 뿐, 메타버스 자체라고 할 수 없어서다. 메타버스가 결코 특정 기업에 종속되는 성질의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선 그런 시각을 가질 순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움직임이 그런 메타버스 관점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할 만하다.

추가 발주 대신 미육군의 개선 요구에 따라 미의회 예산 배정을 받지 못한 통합시각증강체계(이미지 출처 |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가 실적 부진에 따라 전직원의 5%에 이르는 1만 명을 감원하기로 발표한 이후 공교롭게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부서는 홀로렌즈 부서와 알트스페이스VR 직원들이었다. 올해 미의회에서 통합시각증강체계(IVAS) 예산을 배정받지 못한 미육군의 추가 발주량이 사라지면서 수익화가 불투명해진 홀로렌즈 사업을 정리했다. 2017년 인수 이후 별다른 매출 없이 운영해 왔던 VR 소셜 서비스였던 알트스페이스 VR도 3월에 종료하기로 했다.

장기 투자에 따른 수익을 내지 못했던 두 부서의 인원 정리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가 메타버스에서 손을 뗀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마이크로소프트가 두 부서를 정리하는 것에 대한 충격은 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와 관련된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해 새로운 전략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새 전략을 설명한 것은 지난 해 10월 메타 XR 개발자 행사인 메타 커넥트 2022에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메타와 전략적 협업 관계를 맺고, 메타의 퀘스트 헤드셋에 필요한 클라우드 컴퓨팅과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2023년 중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 말은 헤드셋부터 이용자 기반 소셜 서비스까지 모두 아우르는 기존 버티컬 전략을 벗고 마이크로소프트 365와 윈도 클라우드, 팀즈 같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력 수익 상품들을 메타 퀘스트에서 구축해 둔 가상/혼합 현실 생태계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메타 커넥트 2022에서 협업 도구인 팀즈를 메타 호라이즌 워크룸에 적용하기로 했다. 마이크로소프트365, XBOX 클라우드 게이밍, 윈도 365 등도 2023년 적용될 예정이다.

아마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발표를 보면서 “이게 무슨 메타버스 전략인가?’라고 반문할 이도 있다. 하지만 실제 세상(Physical World)을 거의 섞지 않은 채 순수하게 구축된 가상 세계(Native Virtual World)에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컴퓨팅의 디지털 전환이 이뤄진 세상에선 반드시 필요하다. 가상 현실 또는 혼합 현실에 기반한 가상 환경이라도 PC는 계속 활용해야 하는 컴퓨팅 수단이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윈도와 오피스 같은 업무 도구를 쓸 수 있는 생태계는 그 영향력을 더하고 컴퓨팅 환경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할 힘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런 일은 지금도 가능하고, 나 역시 그런 환경으로 점점 익숙해 지고 있다. 앞서 썼던 ‘메타 퀘스트 프로에서 글을 쓰다‘를 공개한 것도 그런 변화를 이야기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앞 글에 담지 않았던 이야기를 좀더 덧붙여 보려 한다. 내가 쓰고 있는 13.3인치 4K 게이밍 노트북은 제법 괜찮은 성능을 갖췄다. 허나, 여러 응용 프로그램을 띄워서 작업할 땐 늘 불편했다. 대부분 전체 화면으로 실행해 쓰는 프로그램들이라 오가는 게 번거로운 데다, 16대 10 화면비에 불과한 비좁은 화면에서 나눠 써 봐야 그리 효율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게이밍 노트북을 위해 따로 모니터를 쓰는 건 공간적으로 더 비효율적이다 보니 평상시 21대 9 화면비의 34인치 커브드 모니터가 있는 데스크톱에서 작업하는 걸 더 선호했더랬다.

응용 프로그램마다 충분한 크기의 작업 공간을 가상 공간에서 보는 것에 익숙해지면 현실 디스플레이의 작업이 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그런 경험에 변화가 생겼다. 데스크톱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그 이전보다 짧아진 반면 노트북에서 작업하는 시간은 길어진 것이다. 이는 퀘스트 프로의 가상 공간에 있는 2개 혹은 3개의 대형 화면에 노트북의 원격 데스크톱을 띄운 뒤에 일어난 일이다. 정확한 크기는 모르겠으나 어림잡아 50~60인치 크기의 대형 화면을 2개 이상 쓸 수 있게 되고, 모든 응용 프로그램에 충분한 작업 공간을 갖게 된 덕분이다. 또한 작은 화면을 내려다 보려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다 보니 목 뒤가 뻐근해지는 일도 사라졌다.

이런 환경을 매일 3~4시간 이상 3주 넘도록 써 왔다. 그로 인한 변화는 노트북의 이용 시간이 더 늘어난 것 외에, 노트북의 작은 화면이나 데스크톱 모니터 같은 현실의 디스플레이 크기나 픽셀에 대한 불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한 게임을 즐기려는 목적이 아닌 정적인 가상 공간에 들어갈 때마다 느꼈던 설명하기 힘든 괴리감이 이전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점점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헤드셋으로 인한 불편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냥 가볍다고 말할 수 없는 무게감에 낮은 각도당 픽셀 같은 디스플레이 화질 같은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더욱 커졌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하루 몇 시간 씩이나 가상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던 장점이 더 크다.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가독성이 있는 데다, 작은 화면을 공간 낭비 없이 대형화하는 효율적 측면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가상 공간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건 덤이다.

이렇게 가상의 공간에 수많은 아바타 이용자가 모이는 것만이 메타버스라 하지 않는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일상의 행위를 할 수 있는 가상의 환경인지 더 중요하다.

왜 굳이 이렇게 일을 하는가를 묻는다면 똑 부러지게 할 수 있는 답은 없다. 그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가상 공간에서 일을 해보니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결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핵심이다. 메타버스가 이런 식이라서다. 메타버스의 핵심은 이용자가 물리 세계에서 하던 행위를 가상 세계에서 이질감 없이 그대로 할 수 있도록 환경의 디지털 전환을 포함한다. 이 전환은 급격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디지털 경제 생태계의 융합까지 긴 호흡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메타버스를 구체적으로 어렵게 정의하지 않아도, 디지털 전환-디지털 전환은 결코 산업용 용어가 아니다-을 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 가상에서도 이어지는 것이 앞으로 메타버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메타버스형 서비스나 기술, 기능을 내놨던 IT 기업이 그 서비스를 닫는다고 해도 메타버스가 죽었다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또한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 없다. 어쨌거나 특정 산업이 됐든 아니면 그냥 우리의 일상이 됐든 끝없는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는 세계에선 필연적으로 메타버스를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고 적응하며 살게 될 터인데, 헛소리 운운하며 밀어낼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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