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큘러스 퀘스트2와 함께 보낸 지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지니, 이 제품을 어떻게 이야기할 지 조금이나마 감을 잡은 듯하다. 사실 인피니트 오피스나 오큘러스 무브처럼 퀘스트2를 위한 모든 기능과 서비스가 다 나온 뒤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낫지만, 기존 퀘스트와 비교해보는 수준에선 시간은 충분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기존 퀘스트 대비 퀘스트2의 변화를 짚어보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오큘러스 퀘스트2가 퀘스트와 달라진 점은 많지만, 바뀌지 않은 부분도 적지 않다. 모바일 앱을 통해 헤드셋을 페어링하고 공간을 설정하는 법, 오큘러스 링크를 연동하는 법 등 설정과 운영은 퀘스트 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설정 이후 홈 UI도 똑같고, 메뉴 구성도 모두 같다. 단지 홈의 배경이 되는 가상 환경 가운데 Desert Terace와 Ryokan Retreat은 기존 퀘스트에는 제공되지 않고 오큘러스 퀘스트2만 설정할 수 있다.
페이스북 계정으로만 로그인이 되는 점을 빼면 전반적인 조작과 운영은 퀘스트와 거의 같아 쉽게 적응할 수 있지만, 장치를 쓰는 환경까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특히 착용감에 별 점수를 매긴다면 하나를 주는 것조차 아깝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적어도 모든 이들이 편안하다고 자신할 정도의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이전 세대에서 나타난 문제를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착용감을 위한 설계보다 출고 비용을 줄이기 위한 측면에 너무 애쓴 결과일 것이다.
오큘러스 퀘스트2가 퀘스트보다 몸집을 줄이고 좀더 가벼워졌다고는 하나 오히려 이전보다 광대뼈를 세게 누른다. 사실 지난 해 오큘러스 퀘스트도 처음 착용했을 때 헤드셋에 추가된 부품으로 무게가 늘면서 리프트보다 착용감이 좋은 편은 아니긴 했다. PC용으로 설계된 터라 상대적으로 부품을 줄여 가벼웠던 리프트에서 경험하기 힘든 광대뼈 압박이 퀘스트부터 나타난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광대뼈를 누르는 퀘스트의 무게에 적응됐지만, 퀘스트2는 퀘스트보다 눌리는 느낌이 더 강해 당황스럽다.
아마도 이에 대한 원인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줄어든 좌우 폭으로 인해 얼굴에 닿는 면적마저 좁아진 페이스 커버와 헤드셋을 머리에 단단하게 고정해 줄 헤드 밴드의 재질을 탄력성 있는 천으로 바꾸면서 지지력이 약해진 탓에 그 부담이 지지대가 되는 광대뼈에 몰렸으리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상상일 뿐이지만, 더 가벼운 데 더 부담이 되는 점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안경 착용도 난감했던 부분이다. 앞서 퀘스트는 뿔테 안경을 착용한 채 헤드셋을 착용할 수 있을 만큼 페이스 커버의 안쪽 폭이 넓었으나 퀘스트2는 너무 버겁다. 페이스북은 142mm 이하의 안경테를 권하는데, 그런 안경을 쓰지 않는 이들은 전용 렌즈 어댑터를 고민해야 할 만큼의 문제였다.
그런데 나름 해법을 찾다 보니 안경을 쓴 채로 퀘스트2를 착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쓰는 요령만 터득하면 안경과 함께 쓸 수는 있다. 사실 리프트나 퀘스트를 쓰던 이들은 아는 요령이지만, 안경을 쓴 상태에서 퀘스트2 페이스 커버 정면으로 조금씩 밀어 넣어 먼저 헤드셋을 얼굴에 밀착한 후 헤드 밴드를 착용하라. 헤드밴드부터 착용하는 방식으로는 안경과 함께 쓸 수 없다.
또 하나 번거로운 점은 오디오다. 이 부분은 퀘스트를 쓸 때도 불편했다. 사실 퀘스트2도 퀘스트처럼 헤드셋와 밴드 연결 부위에 외장 스피커가 있다. 때문에 따로 이어폰이 없어도 소리는 들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음량이 너무 작고 음질도 마뜩치 않은 데다 소리를 제대로 듣기 어려워 결국 다른 오디오 장치를 연결해야 한다. 오큘러스 퀘스트2가 블루투스 무선 이어버드라도 제대로 지원해 주면 좋으련만, 블루투스 이어버드로 연동해도 지연 전송으로 화면과 싱크가 맞지 않아 쓰기 어렵다. 결국 유선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쓰는 게 유일한 해결책인 셈이다.
그런데 헤드셋을 쓰고 벗을 때 유선 오디오 장치를 탈착하는 과정이 귀찮고 오디오 케이블이 방해될 때도 있다. 오큘러스 리프트처럼 헤드폰을 통합한 전용 헤드 스트랩이 나왔다면 아마 바로 질렀을 것이다. 물론 나는 나름대로 값싸고 쉬운 해법을 찾기는 했다. 아주 짧은 유선 오픈형 이어폰을 벨크로(일명 찍찍이)를 이용, 헤드셋에 고정해 헤드셋을 탈착할 때 오디오 연결에 따른 시간과 번거로움을 줄인 것이다. 이 작업 하나 만으로도 얼마나 편한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오큘러스 퀘스트2의 착용감이 상당히 언짢게 하더라도 정작 헤드셋을 머리에 얹은 이후 놀랍게도 그 모든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한다. 전 세대와 비교해 더 많은 픽셀을 담은 세상을 보는 그 순간 착용감으로 불타던 수많은 불만들이 갑자기 불어 온 태풍에 실려 어디론가 흩어져 버린 것이다. 착용감의 역 주행과 정 반대로 화질은 올바른 방향으로 달려간 것이다.
오큘러스 퀘스트2는 2개의 OLED 패널을 쓰던 이전 세대와 달리 단일 LCD 패널로 바꿨다. 90도 안팎의 렌즈 시야각(수평 92도, 수직 90도)은 비슷해도 온전하게 RGB 필터로 구성된 시야당 1,832×1,900 픽셀(좌우 합쳐 3,664×1,900)의 표현력은 이전 세대의 표현력을 확실히 압도한다. 1,080×1,200 픽셀의 리프트에서 1,440×1,600 픽셀의 퀘스트로 이동했을 때도 선명도는 나아졌어도 가상 공간 안에서 조금 떨어진 글자를 알아보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반면, 퀘스트2는 같은 깊이의 공간에서 보는 글자가 더 또렷해졌다. 살짝 흐릿했던 퀘스트에서 퀘스트 2로 넘어가면 마치 초점을 제대로 맞춘 안경을 쓴 느낌이랄까.
그런데 개선된 화질에 영향을 받은 것은 그 이전에 했던 퀘스트나 리프트 콘텐츠의 재미가 늘어난 게 아니라, 이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디지털 콘텐츠를 가상 공간에서 보는 것이 즐거워졌다는 점이다. 다른 구조에 더 촘촘해진 픽셀을 가진 디스플레이를 쓰면서 스크린 도어 효과(픽셀과 픽셀 사이 간격으로 인해 검은 틈이 보이는 현상)가 사라졌고 일반 영상을 가상 공간 안에서 볼 때 느껴지던 이질감도 크게 줄어든 것이다. 때문에 스카이박스나 넷플릭스 등 극장 스크린이나 초대형 화면에 2D 또는 3D 영상을 띄우는 영상 앱이나 유튜브VR 같은 영상 서비스를 통한 활용도가 높아졌다. (더구나 올해 말 서비스되는 인피니트 오피스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또 다른 변화는 고정 포비티드 렌더링(Fixed Foveated Rendering, 이하 FFR)의 개선이다. FFR은 GPU 성능을 보완하기 위해 화면 중앙 부분을 고화질로 렌더링하는 대신 주변부의 렌더링 품질을 떨어뜨려 처리하는 방식으로 퀘스트에 적용됐다. 퀘스트 출시 초기 화면 중앙부을 보고 있을 때는 느끼기 어렵지만, 눈만 돌려 주변부와 중심부의 품질을 비교해 보면 쉽게 차이를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런데 오큘러스 퀘스트2는 FFR로 인한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중심부와 주변부의 렌더링 품질을 확인해보면 모든 부분의 그래픽 품질이 똑같다. 아마도 퀘스트2에 탑재된 스냅드래곤 XR2의 GPU 성능이 강화되어 더 이상 FFR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판단해 이 같이 적용한 듯하다.
여기에 조명 효과를 개선하고, 기타 반사 매핑이나 유리 질감 표현, 동적 조명 등 다양한 그래픽 효과도 증가해 퀘스트보다 그래픽 품질도 나아졌다. 때문에 퀘스트에서 즐기던 콘텐츠 중 일부는 퀘스트2에서 다른 느낌일 때가 있다. 다소 밋밋했던 좀비나 로봇, 그밖의 지형 텍스처나 물리 효과가 부분적으로 나아져 좀더 생동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여전히 모바일 GPU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어서 고성능 GPU를 활용하는 PC 버전과 품질 차이는 여전하다. 다행히 퀘스트2는 퀘스트와 마찬 가지로 오큘러스 링크를 쓸 수 있다. <하프라이프 : 알릭스>나 <스타워즈 : 스쿼드론> 등 스팀 VR용 게임이나 PC용 리프트 게임도 오큘러스 링크로 잘 실행했는데, 그만큼 VR 플랫폼에 폭넓게 대응하는 점은 적지 않은 강점이다.
이 밖에도 퀘스트2가 퀘스트 대비 시덥잖게 보이는 개선점이 하나 더 있다. 컨트롤러의 배터리가 덜 소모 된다는 점이다. 퀘스트2의 터치 컨트롤러도 일반 AA 건전지를 쓰는데, 할만하다 싶을 때마다 건전지 교체 알림을 띄웠던 리프트와 퀘스트와 달리 아직도 배터리와 관련된 알림을 보내지 않는다. 다만 컨트롤러가 퀘스트보다 상대적으로 커진 데다 모두 플라스틱 재질이러 이전보다 안정감은 살짝 떨어진다.
여기까지 지난 한 달 동안 경험했던 오큘러스 퀘스트2의 이야기였다. 사실 그 이전부터 리프트와 퀘스트 등 여러 오큘러스 제품을 경험한 터라 퀘스트2가 전혀 낯설진 않을 것이라 여겼으나,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았던 게 흥미를 끈다. 무엇보다 착용성에서 기대치보다 더 낮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오큘러스 퀘스트2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든 화질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오큘러스 퀘스트2는 완성형 헤드셋이라고 말하긴 이르다. 여전히 고치고 바꿔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은 제품이다. 하지만 PC 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가상을 진짜 현실로 만드는 위험한 VR 헤드셋이라고 했던 오큘러스 퀘스트의 평가를 이어가는 데 무리는 없다. 오큘러스 퀘스트가 그러했듯 퀘스트2는 가상 현실에서 다양한 콘텐츠와 수많은 이들과 소통을 하는 시간을 더 늘리는 데 적지 않은 강점을 가진 헤드셋으로 발전했다. 첫 착용감에 욱해도, 그것을 견디게 만드는 능력을 보여준 퀘스트2는 그래서 더 위험한 헤드셋인 것이다.
덧붙임 #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일이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20년 11월 9일에 공개되었습니다.
오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장점이 커졌네요 제가 오큘러스 개발작 써봤을때도 참 신기했는데…
저도 개발작부터 지켜봤는데 이번 만큼 발전이 많이 보인 건 드문 듯합니다. 아직 완벽이라 말할 수준까진 아니어도 페이스북이 꾸준히 VR에 투자한 결과가 나온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