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 그저 그랬던 첫 픽셀 워치

모든 소문이 들어 맞았으면 구글 상표를 붙인 스마트워치는 훨씬 더 이른 시기에 만났을 게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없는 떡밥일 줄만 알았던 구글 스마트워치에 대한 소문이 마침내 막을 내린 건 2022년 가을. 구글이 2022년 5월 구글 IO에서 예고한 대로 첫 스마트워치인 픽셀 워치를 정식으로 일부 국가에 출시했다.

안타깝게도 픽셀 워치 출시 국가에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때문에 구글의 첫 스마트워치에 대한 개인적 기대감을 확인하겠다는 이유 만으로 사전 예약과 구매 대행 등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른 끝에 픽셀 워치를 손에 쥐었고, 거의 두 달 넘는 시간을 밤낮으로 함께 보내며 특징을 살폈다.

픽셀 워치 패키지

구글표 스마트워치를 기대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안드로이드 때처럼 웨어OS를 올린 레퍼런스 스마트워치로써 뭔가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그저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개인적 기대를 넘어 그것 하나만으로 경쟁력을 말하는 구글 제품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무엇보다 이제 실수를 용인받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하드웨어 강자로 올라선 구글이기에 픽셀 워치 역시 이젠 더욱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제품이 된 것이다.

때문에 패키지부터 세세하게 따져보아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패키지는 제품을 담은 그릇에 불과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 만큼은 제조사가 그 제품을 어떻게 보는 지 알려주는 경향을 조금 엿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시계라는 개념과 시간 기능을 가진 손목형 디지털 제품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어느 정도는 드러난다.

종이로 만든 두루마리에 픽셀 워치와 충전 어댑터가 담겨 있다.

픽셀 워치 패키지에서 드러난 구글의 인식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깝다. 시계에서 느낄 수 있는 품위보다 전형적으로 손목에 차는 디지털 장치의 기능과 효율성만 강조하는 모든 요소를 갖춰서다. 구글 제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바탕에 평범한 시계 이미지를 그려 놓은 반듯하게 각진 상자를 열었을 때 종이를 말아서 만든 반원통을 감싸 놓은 픽셀 워치를 보는 게 전부다. 안쪽에 종이로 고정한 충전 어댑터와 짧은 길이의 손목 밴드가 전부인 내용물을 꺼내고 난 뒤 패키지는 보존보다 서둘러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고 느낄 만큼 매우 친환경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친환경적인 요소를 반영한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350달러(출시 때 환율 기준 50만 원 이상) 넘게 주고 사야하는 제품의 패키지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 같은 것은 없다. 참혹할 만한 기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돈 내고 사면서도 제조사가 강조하는 효율적 패키지를 보면서 찝찝함을 느끼는 건 갤럭시 워치 액티브 이후 정말 오랜 만이다. 시계라는 제품을 사는 가치와 친환경이라는 시대 정신이 공존할 수 없는 건 아닐 텐데 픽셀 워치 패키지는 그 균형을 잡았다고 말하기엔 너무 거리가 멀다.

그래도 픽셀 워치 자체의 생김새는 지금까지 출시된 다른 웨어OS 기반의 스마트워치와 확실히 다르다. 더 멋있게, 또는 더 화려하게 꾸미려는 모든 노력 따윈 하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오른쪽 용두만 없었으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는 시계였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단순한 모양새인데다, 시계 가장 자리부터 측면부, 그리고 하단부까지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면이 픽셀 워치를 더 아름다워 보이게 한다. 그러니 부드럽고 아름다운 픽셀 워치의 겉모습에 매료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록 전원을 켜기 전까진 가장자리를 포함한 검은 유리판 전체가 시계였으면 하는 바람도 컸지만, 어쨌거나 바깥 테두리와 안쪽 디스플레이를 쉽게 구분할 수 없게 처리한 점 덕분에 시계 화면이 더욱 돋보인 건 분명하다. 특히 검정 바탕의 시계 화면일수록 검정 테두리와 잘 어울린다. 아마도 처음이라는 이유로 다른 비판은 다 받더라도 시계 화면과 잘 어울리는 만듦새 만큼은 비판할 거리가 없다.

픽셀 워치의 용두와 최근 실행한 앱을 호출하는 버튼.

하지만 아름다운 픽셀 워치에 옥의 티가 없는 건 아니다. 막 상자에서 꺼낸 픽셀 워치의 디스플레이를 면밀하게 살피다가 디스플레이 위 유리에 아주 작은 생채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고는 잘 알 수 없는 수준이긴 한데, 흠집 부위에 빛이 닿으면 곧바로 그 상처를 드러낸다. 흠집 있는 유리를 그냥 올렸다는 건 구글이 세밀하게 픽셀 워치의 품질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만하다. 더구나 가장자리까지 유리 외에 다른 재질이 없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아 깨지거나, 다른 거친 재질에 스치면 흠집이 생길 가능성을 높인다. 유리 보호용 필름 또는 하드 커버 없는 상태로 쓰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시계 오른쪽 옆에 용두와 그 위쪽에 납작한 버튼이 있다. 용두를 누르면 설치된 앱, 또는 기능을 고르는 화면으로 전환하고, 앞뒤로 밀거나 당기면 화면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용두를 위아래로 문지르면 가벼운 떨림이 손가락에 전해지므로 조작할 때 밋밋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진동이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 적지 않게 나타나는 데도 이에 대한 업데이트는 아직 없다. 용두 위쪽 버튼은 최근 실행한 앱을 불러오는 버튼이지만, 지난 몇 달 동인 이 버튼을 누른 적은 거의 없었다. 대신 길게 누르면 구글 어시스턴트를 부를 수 있으나, 한국에선 지역 제한을 이유로 작동하지 않는다. 참고로, 용두는 심전도를 위한 전극 역할도 겸하고 있다.

픽셀 워치의 시계줄은 전용 시계줄을 써야만 하는 데다 걸쇠를 누른 채 시계줄을 밀어서 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매끄럽고 동그란 모양새의 픽셀 워치는 마치 작고 검은 조약돌처럼 정말 예쁘다. 기능을 떠나 픽셀 워치의 겉모양만 보면 충분히 매력이 넘치는 건 맞다. 손목에 찼을 때 무게나 시계 하단부 형태에 따른 나쁜 착용 경험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시계 본체는 무게와 착용감 모두 잘 잡았다.

허나 폭이 넓은 기본 실리콘 시계줄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작은 본체가 더 작아 보인다. 또한 전용 시계줄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다, 원 모양을 따라 시계줄을 빼고 꽂아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다. 특히 꽂을 때보다 뺄 때 고정 걸쇠를 누른 채 밴드를 돌려 빼야 하는 데, 본체 재질이 너무 매끈해 힘을 주기 어렵다. 애플 워치처럼 옆으로 바로 꽂는 구조도 아니고, 갤럭시 워치처럼 일반 시계줄을 쓸 수 있는 형태도 아닌 탓에 픽셀 워치에서 시계줄은 지금도도 여러 모로 골칫거리 중 하나다.

픽셀 워치를 쓰려면 역시 스마트폰에 컴패니언 앱을 까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기존 ‘웨어OS’ 앱이 아니라 픽셀 워치용으로 만든 ‘워치’ 앱을 깔아야 한다. 워치 앱을 깔면 픽셀 워치를 찾아 연동하는 과정까지 간단히 마무리된다. 시계 화면 변경, 타일 카드(위젯) 변경, 알림 설정이나 픽셀 워치의 배터리 상태, 현재 시계 화면은 워치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앱은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다. 그렇다고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닌, 필요한 기능 위주로 주요 설정을 선택할 수 있는 메뉴의 효율성만 돋보인다. 갤럭시 워치 웨어러블에 비하면 세밀함이 많이 떨어진다.

일단 워치 앱을 통해 설정을 끝내면 비로소 픽셀 워치를 탐색할 수 있다. 하지만 작동법에선 시계 화면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리면 설정이 나타나는 점, 이전으로 돌아가기 제스처 정도만 같을 뿐, 같은 웨어OS 스마트워치인 갤럭시 워치 4, 5 시리즈의 원UI와 다르다. 시계화면 양옆으로 밀거나 당기면 타일(위젯)을 넘긴다. 알림은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릴 때 나타난다. 설치된 앱은 용두 버튼을 누르면 뜨고 용두를 누르면 앱 화면을 닫는다. 조작은 금세 익힐 수 있는 수준이고, 양옆으로 타일을 바꾸거나 설치한 앱을 위아래 스크롤을 할 때 멈칫 거리는 현상 없이 반응하는 속도가 갤럭시 워치 4나 5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픽셀 워치도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지만, 한국에선 정상적인 방법으로 쓸 수 없다.

그런데 픽셀 워치는 기본 앱 외에 일부 앱을 추가로 설치해야 제대로 쓸 수 있다. 특히 건강 관리를 하려면 반드시 핏빗(Fitbit) 앱을 설치해야 한다. 핏빗 앱이 픽셀 워치에서 측정된 이용자의 행동 및 신체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하기 때문이다. 상세한 분석을 통한 관리를 위한 구독 서비스인 핏빗 프리미엄을 가입하지 않더라도 픽셀 워치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기본 분석은 제공한다.

또 설치해야 하는 앱은 핏빗 심전도다. 픽셀 워치도 심전도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앱은 이용자가 직접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핏빗 심전도는 한국에서 작동 하진 않는다. 픽셀 워치의 심전도를 측정하기 위한 핏빗 심전도 앱이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아서다. 때문에 정상적인 경로로 픽셀 워치 앱에서 핏빗 심전도 앱을 찾아 설치하는 건 어렵다.(참고로 심전도 앱 설치와 동의는 이용자의 접속 국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어서 이 앱을 설치할 경로가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수면을 추적하고 수면의 질을 분석해 보여준다.

핏빗 앱이든 기본 피트니스 앱이든 픽셀 워치는 심박수나 수면 측정을 제외하고 자동으로 행동 추적을 못한다. 이용자가 오래 앉아 있으면 좀 걷도록 유도하면서 발걸음수를 측정하지만, 정작 야외에서 한참 걷더라도 자동으로 걷기 모드나 뛰는 모드로 전환하겠냐고 묻지 않는다. 일정 시간 이상을 걸을 때 자동으로 걷는 시간과 걸음 수를 측정한 다음 칼로리를 계산하는 다른 스마트워치의 추적 모드를 볼 때 수동적인 운동 모드 전환을 가진 픽셀 워치는 조금 갑갑하다.

픽셀 워치의 기본 기능들은 갤럭시 워치에서 이미 경험해 본 것이라 아주 새로운 점은 없다. 날씨, 심박수, 수면, 자외선 지수, 운동 모드, 수분 측정 같은 타일은 갤럭시 워치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그냥 어디에 빠지지 않는 정도일 뿐. 오히려 픽셀 워치를 쓰다가 난감한 상황에 빠진 적이 있다. 한번은 밤새 자동으로 다운로드한 펌웨어를 며칠 동안 설치하지 못한 때도 있었고, 밤에 메시지를 받지 않는 방해 금지 모드를 픽셀 워치에서 설정할 수 없다. 또한 픽셀 워치 충전 도중 픽셀 앱에 표시되는 배터리량의 정확도가 떨어지기도 했는데, 이런 문제는 지금 모두 수정됐다.

픽셀 워치의 바닥부 센서, 심전도를 위한 전극과 심박수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로 구성했다.

도심이나 건물 주변의 GPS 성능 역시 기대를 채우진 못했다. GPS 성능에 초점을 맞춘 고급 스마트워치를 제외하고 픽셀 워치 역시 일상적으로 쓰는 대부분의 스마트워치 수준의 성능을 보인 것이다. 소프트웨어에 강한 구글이라지만, 픽셀 워치에 넣은 여러 GPS 수단의 정밀도를 높이는 것까진 어려워 보인다. 적어도 탁트인 야외가 아닌 도심에서 GPS 정보를 담아야 하는 활동에서 쓰기엔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픽셀 워치를 처음 찼을 때 마음에 들지 않은 건 배터리 때문이었다. 며칠 동안 배터리 작동 시간이 하루를 넘기지 못했던 탓이다. 배터리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설정을 최대치로 잡은 상태에도 매 시간마다 남은 배터리를 확인해야 했다. 기본 설정과 펌웨어 업데이트, 앱 내려 받기 및 데이터 설정까지 배터리를 쓰는 작업들이 많다곤 해도 배터리 소모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던 것이다. 그나마 배터리 소모를 최소로 줄이도록 모든 설정을 끈 상태에서 며칠 뒤에야 하루는 넉넉히 작동할 만큼 안정되기는 했다.

충전할 땐 이처럼 시간과 함께 현재 충전량을 표시한다.

픽셀 워치의 배터리 용량은 294mAh다. 작은 몸뚱이다 보니 이만한 배터리를 넣은 것도 용하다 싶긴 하다. 때문에 배터리가 빠르게 소모될 가능성도 높다. 대신 100% 충전하는 시간도 1시간 20분 정도로 더 큰 용량을 가진 다른 스마트워치보다는 20~30분 정도 짧다. 한번 충전으로 이틀 연속 수면을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픽셀 워치를 손목에서 풀 때마다 틈틈히 충전해 주는 습관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픽셀 워치는 배터리를 비롯한 기본 하드웨어 성능에서 다른 스마트워치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하긴 어렵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지역 제한에 따라 구글 어시스턴트나 심전도를 정상적인 방법에 한해 쓸 수 없는 것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혈액 안 산소 수치(SpO2)를 확인하는 혈액산소센서도 갖췄지만, 이를 쓸 수 있는 기능도 활성화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픽셀 워치에 기대했던 웨어OS 스마트워치의 높은 완성도는 아직 더 고쳐야 할 점으로 남아 있다. 다른 웨어OS 스마트워치보다 더 나은 소프트웨어 안정성, 배터리 및 위치 추적 성능, 행동 추적의 정확도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려면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나마 웨어OS의 기본에 충실하고, 막힘 없이 움직이는 인터페이스, 여기에 가볍고 예쁜 생김새를 갖춰 평범한 상황에서 쓸 스마트워치를 찾는 이용자들이라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높은 기대에 비하면 처음이라 그저 그런 스마트워치이긴 했어도, 픽셀 워치만한 개성을 가진 제품을 찾으려니 그것도 어려운 게 현실이니 말이다.

덧붙임 #

이 글은 2022년 12월 31일에 발행한 글입니다. 2022년을 마지막으로 밝힌 해가 서산으로 저물고, 2023년을 잇는 달이 떠오르는 마지막 날입니다. 아무쪼록 남은 시간, 2023년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2023년에 모두 손을 맞잡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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