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살아갈 또 다른 현실, 메타버스(Metaverse)

* 이 글은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에서 발간하는 ‘R&D HRD Trend Report’ 8월호(8월 2일 발행)에 기고한 글로 편집본은 KIRD 발간자료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메타버스’는 없다.

어쩌면 지금 메타버스(Metaverse)를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혼날 이 말을 먼저 꺼낼 수밖에 없는 것은, 현 시점에서 메타버스가 존재하지 않기에 그렇다. 단지, 메타버스가 영원히 오지 않을 세상이라는 건 아니다. 언젠가 우리가 살게 될 세상이기에 지금부터 적응을 준비해야 할 세상인 것은 분명하니까.

대체 메타버스가 무슨 세상이기에 적응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메타버스가 어떤 의미를 가진 세상이기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할까? 혹자는 ‘디지털 월드’라고 아주 간편하게 정의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면 굳이 메타버스로 바꿔 부를 이유는 없을 것이다. 미러월드, 버추얼 월드 등 함께 연구되어 왔던 여러 개념들을 이제 메타버스가 대변하는 것은 가치를 공유하며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는 용어로써 선택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메타+버스의 의미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은 조금(?) 미루도록 하자. 그보다 먼저 ‘메타버스’라는 용어의 속뜻부터 헤아리는 것이 이해가 더 빠를 수 있어서다. 사실 메타버스는 특정 기술이나 산업을 위한 용어는 아니다. 일종의 학술적 메타포에 더 가깝달까? 물론 메타버스의 어원이 된 1992년의 소설 <스노크래시>나, 2000년 대 중반의 관련 연구도 오늘날 메타버스 출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달라진 시대에 맞는 재해석 및 재정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 또는 우주를 가리키는 ‘버스'(Verse)의 합성어다. 우리 말로 바꾸면 초월의 세상, 초월적 세상, 초월한 세상 등 여러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일단 여기서 무엇이 정확한 번역인지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초월하는 세상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메타버스와 아바타 등의 용어가 처음 등장했던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이미지 출처 | 아마존UK)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초월의 대상은 수많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대상을 압축한 한 단어를 고른다면 아마도 ‘현실’이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즉, 초월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현실은 다른 관점에서 초월의 대상의 되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대상이란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관념이나 관습적인 것, 사회 체계도 모두 포함된다.

그렇다고 우리 현실에서 초월해야 할 모든 것을 일일이 정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제약이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만 고른다면, 우리가 극복하기 어려운 큰 범주의 대상을 짚어 보는 수준일 것이다. 이를 테면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와 다르게 우리는 크기와 질량 등 물리적으로 제한된 ‘지구’도 초월해야 할 요소일 수 있다. 물론 지구라는 행성 그 자체보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세계나, 소유할 수 없거나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공간, 다른 공간으로 물리적 이동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소설 <스노크래시> 속 메타버스는 지구(약 4만여 km)보다 더 큰 둘레(65,536km)를 가진 세상이었다.

시간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는 현실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보고 느낀다. 비록 시간이란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선형적 형식이라고 해도 해가 뜨고 지는 동안의 하루나, 계절에 맞춰 자라고 시드는 들녘의 식물을 통해서, 심지어 나이 들어 가는 우리의 모습에서, 그리고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해 향수를 느끼며 시간을 말한다. 시간을 물리적으로 앞서가거나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기에 어떤 면에서 초월해야 할 요소이기도 하다.

자연 현상도 다를 게 없다. 현실에선 구름 한 점 보기 힘든 맑은 하늘만 보이는 곳이나, 며칠 동안 해가 쨍쨍 내리쬐며 무더위를 피해야 하거나, 일주일 넘게 비나 눈이 내리거나, 태풍이 휘몰아치는 자연의 섭리를 우리가 인위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물론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몇 기상 재해에 인류가 미친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자연 현상을 즉시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자신의 신체적 한계나, 여러 지적 능력의 한계도 빠질 수 없다. 신체적 장애에 따르는 문제나 장애가 없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신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을 만들고 싶더라도 제약이 따른다. 언어나 예술, 그 밖의 현실에 붙매일 수밖에 없는 능력을 넘을 수 있으면 많은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초월해야 할 요소들을 짚다 보면, 이것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 깊은 고민과 수많은 시도가 이뤄진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는 환경을 가진 세상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가는 지금 메타버스의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감각이 작용하는 디지털 세상
우리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한계를 짚다 보면 어떻게 디지털로 만든 세상이 그 많은 한계를 뛰어 넘는다고 하는 건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그 기술 역시 현실에 기반하는 만큼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러한 한계의 초월은 이미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복잡하게 볼 것도 없이, 우리는 어떤 공간에 직접 가지 않아도 PC나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를 테면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것 등이다. 원격으로 교육을 받거나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일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캡처하고 인코딩과 디코딩을 반복하며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이미 한계를 뛰어 넘는 일들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결코 줄거리와 진행 형식, 디지털 캐릭터를 가진 수많은 디지털 게임이나 즐길 거리들도 마찬가지다. 포트나이트나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오버워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같은 수많은 게임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 배경, 자연 현상, 여기에 신체의 한계까지 넘는 세계관을 갖추고 있다. 환경 설정에서 스위치만 살짝 건드려 화창했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나 눈이 내리게 할 수 있고, 실컷 뛰어 다녀도 절대로 숨차지 않는 아바타는 현실을 뛰어 넘는다.

단지, 우리 주위에서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사례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현실의 한계를 뛰어 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는 해도 메타버스라 하진 않는다. 현실을 보완하는 것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세상으로 비치진 않아서다. 엄연히 현실을 그대로 둔 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메타버스의 사례로 불리는 다양한 3D 애플리케이션들. 하지만, 온전히 다른 세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메타버스가 기존의 디지털 경험이나 3D 세상과 다른 부분이 바로 감각을 반영하고 있는 점이다. 소설 <스노크래시>처럼 디지털로 만든 가상의 세상이라는 인식의 경계를 두기보다 우리가 일을 하고, 즐기고, 그 안에서 삶을 지속하는 세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모바일이나 데스크톱 모니터를 통해서 즐기는 수많은 3D 애플리케이션들도 메타버스적 요소를 갖고 있음에도, 현실을 자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간을 체감할 수 없는 평면의 디스플레이로 볼 때 다른 세상으로써 이해하고 받아 들이긴 힘든 것이다.

가상이나 증강 현실 기술이 메타버스와 잘 어울리는 것은 현실의 감각을 강제로 분리해 가상 세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명확한 3D 세상임에도 평면 디스플레이가 가진 한계 탓에 마치 3인칭 관찰자 같은 느낌을 받게 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가상 및 증강 현실로 그 세상에 들어가면 비로소 1인칭 시점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 메타버스 시대에 가상 현실이나 증강 현실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가상 세계로 감각을 몰입시키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중화 가능한 입체적 감각 기술이라서다.

물론 이를 ‘감각의 교란’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충분히 동의할 만한 지적이다. 현실을 절대 기준으로 놓으면, 현실을 구분하기 힘들어질 수 있는 점을 우려할 만하다. 또한 가상이나 증강 현실 기술 자체도 뇌가 평면적 이미지를 조합해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양안시차를 이용하는 것인 만큼 그 자체로 감각을 교란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디지털 세상이 또 하나의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을 완전히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디지털 세상은 데이터를 통해 더욱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어서다. 수동으로 데이터를 입력했던 컴퓨팅에서 능동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대를 넘어 이젠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같은 도구를 결합해 새로운 가상 세계를 구축하는 시대에 들어선 상태다. 그렇기에 수많은 기업들도 메타버스의 도래를 예상하고 대비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도구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앞으로 공존하게 될 두 세계에서 올바르게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부터 찾고 공유해야 할 것을 말이다.

메타버스 생태계의 세 가지 핵심 요소
이 글에서 아직 메타버스에 대해 정의를 하기 전이지만, 일단 메타버스는 현실을 똑같이 복제한 가상 세계는 아니다. 물론 메타버스 안에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솔직히 이 관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세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각각 다른 디지털 공간이나 서비스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영속성을 지닌 거대한 생태계를 갖추느냐는 점이다.

때문에 메타버스는 하나의 공간 기반 서비스나 단일 3D 응용 프로그램으로 나타나긴 어렵다. 물론 메타버스의 사례로 소개되는 특정 3D 게임이나 가상 및 증강 현실 프로그램들은 그 자체를 세계로 보면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으나 스스로 세계를 확장하긴 어렵다. 이것이 다양한 공간 서비스나 3D 응용 프로그램들이 서로 연결되고, 핵심 요소들이 호환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생태계가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디지털 생태계를 위해 가상 공간들을 무작정 뭉칠 수 없다는 점이다. 메타버스의 가상 공간끼리 아주 기본적인 체계가 호환되지 않으면 이는 세상이 아니라 그냥 애플리케이션에 불과하다. 때문에 ‘기본 호환성’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각 공간 애플리케이션간 호환 가능한 요소와 범위, 합의 수준에 따라 메타버스 세계는 더 확장될 수도 있고, 전혀 확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여기서 꼭 해야 할 질문은 ‘무엇을 호환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오늘날 메타버스를 정의하는 데 필요한 핵심 요소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알 수 있다. 호환의 요소라면 기술적 관점에서 운영체제나 하드웨어를 생각할 수 있으나 메타버스에선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연결된 가상 세계에서 호환되어야 할 것은 이용자(Users),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s), 그리고 디지털 통화 경제(Digital Currency Economy) 등 크게 세 가지다.

메타 휴먼과 디지털 자산, 디지털 경제 통화라는 세 요소는 메타버스가 거대한 경제 생태계로서 존재하는 또 다른 축이다.

먼저 메타버스 세계에서 이용자는 물리적인 모습과 비슷하든 아니든 그래픽으로 된 디지털 캐릭터로 존재한다. 이를 아바타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고 메타 휴먼이나 버추얼 휴먼 등 다른 용어로 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용자가 각각 다른 세계관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메타버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려면 이러한 메타 휴먼 정보가 서로 호환되어야 한다. 메타 휴먼은 단순히 메타버스에서 보여지는 이용자의 3D 캐릭터로 끝나지 않는다. 가상 공간에서 요구하는 이용자의 기본 정보 및 각 공간이나 콘텐츠에 접근할 권한, 그 밖의 이용 기록을 담은 정보의 단위다. 때문에 메타 휴먼이 상호 호환되는 가상 공간들은 이용자의 이동성을 보장하는 한편, 각 공간마다 생성되는 데이터를 하나의 개체에 저장하고 관리하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다.

디지털 자산과 경제 시스템은 메타버스를 활기차게 만들고 유지하는 동력이 되는 요소다. 메타버스는 단순한 놀이나 일을 위한 가상 공간이 아니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우리 현실의 실물 경제와 유사한 경제 시스템이 작동한다. 수많은 디지털 자산의 소유 및 권리를 인정하고 이에 따라 디지털 상품의 거래를 활성화 함으로써 구축되는 가상 경제로 메타버스 구성원의 유입을 증가시키면서, 가상 세계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이다.

디지털 자산은 현실에선 보이지 않는 무형의 디지털 콘텐츠가 될 수도 있고, 조각이나 그림, 다양한 3D 모형 및 상품 등 가상의 사물이더라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다. 심지어 디지털 정보나, 메타버스에서 유통 가능한 디지털 통화도 자산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자산은 서로 다른 가상의 공간마다 독특한 유형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이용자가 권리를 가진 이후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형식적으로 호환할 수 있는 속성을 가져야 한다. A 공간에서 취득한 자산이 B 공간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되면 A 공간이 폐쇄될 경우 자산을 잃는 것은 불가피해서다. 그래도 가치 있는 디지털 상품임을 보장하는 진본 확인이나, 자산의 권리 및 공간 이동, 거래 투명성 보장 및 사기 방지, 소비성 디지털 상품의 이용 기간 같은 여러 안전 장치가 작동하는 거래 환경은 모든 환경이 디지털로 이뤄지는 메타버스이기에 가능한 장치들이다.

디지털 자산의 거래는 단일 디지털 통화 체계를 가진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물론 독자적인 통화 체계를 쓰려는 가상 공간도 있을 수 있으나 이를 방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모든 가상 공간마다 똑같은 디지털 통화를 쓸 경우, 메타버스의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한편 거대한 단일 경제 생태계를 구축해 메타버스가 붕괴될 확률도 낮출 수 있어서다. 그만큼 단일 디지털 통화 시스템에 기반한 규모의 경제는 메타버스를 유지하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지만, 앞서 메타 휴먼과 디지털 자산까지 포함하는 거대 디지털 가상 경제 생태계가 출현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메타버스는 내일의 인터넷이다
‘아직 메타버스는 없다’는 조금 도발적 문장으로 시작한 글이었지만, 그렇다고 메타버스 시대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메타버스가 없을 뿐이지, 메타버스 시대에 어울리는 공간 서비스와 응용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다. 더구나 컴퓨팅의 진화도 가상 세계의 구축을 더욱 가속하고 있다. 이제는 게임 엔진을 배워 공개된 3D 자산을 활용해 누구나 가상 공간을 만들 수고 있고, 현실에서 건축 설계를 위해 기계 학습된 지능형 프로그램도 가상 공간을 구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렇게 흩어진 가상 공간들이 호환을 위한 합의를 해 나가기 시작하면 진정한 메타버스를 보게 될 것이다.

결국 메타버스는 수많은 가상 공간들이 모인 거대한 디지털 가상 생태계의 한 형태로 보이게 되리라 본다. 하지만, 수많은 수식을 없애고 아주 짧고 과감하게 요약하면 ‘인터넷의 미래’라 할 것이다. 어디에서나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을 연결하고 수많은 정보를 나누었던 인터넷이 우리의 감각까지 파고드는 디지털로 실체화된 세상의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메타버스는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시공간과 자연현상 및 우리의 신체 등 현실의 한계를 넘기 위해 만든 공간의 형식과 목적, 세계관이 모두 다른 수많은 디지털 가상 공간들이 연결된, 경제적, 기술적 호환 시스템을 제공하는 감각적 차세대 컴퓨팅 포털이자 인터넷. 한번에 완성될 수 없지만, 언젠가 만나게 될 또 다른 현실, 그것이 바로 메타버스라고 말이다.

덧붙임 #

2021년 10월 29일에 공개된 글입니다.

chitsol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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