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 개최한 마지막 페이스북 커넥트 행사의 가장 큰 뉴스는 ‘메타’라는 사명의 변경이었다. 많은 이들은 이 행사 직후 메타라는 사명 변경에 대한 호불호를 따졌지만, 나는 이날 발표에서 메타가 가까운 미래의 VR 세상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더 궁금했고, 그 중 하나가 가상 현실의 ‘홈'(Home)이라고 진단했다. 아니, 어쩌면 홈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 결론에 주커버그가 내놓는 답이 무엇일지 궁금했던 게 더 정확한 심정이었다.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메타 CEO 마크 주커버그가 퀘스트 같은 VR 헤드셋을 썼을 때 보게 되는 기본 공간인 ‘호라이즌 홈’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땐 매우 반가웠다. 그는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이자 여러 공간을 선택할 수 있지만, 미래엔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진 이상적인 가상 현실 속 홈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판단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나온 예고였다. 주커버그는 홈이라 부르는 공간에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사람들’이라면서 주변 친구를 초대하는 홈의 소셜 기능을 도입할 것이라고 한 점이다. 친구로 보이는 아바타와 한 공간에 머물며, 대화를 하고 영상을 함께 경험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결국 그 말을 꺼낸 지 채 1년이 지나기 전 소셜 기능이 호라이즌 홈에 도입됐다.
그런데 주커버그를 포함한 메타의 인력들이 왜 ‘사람들’로 결론을 내렸는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오큘러스 시절의 리프트부터 가상 현실을 경험해 온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부족했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어서다. 오히려 호라이즌 홈에서 빨리 바꿔야 할, 더불어 서둘러 도입해야 할 두 가지에 대한 부족함은 여전하다. 그 두 가지는 앱을 실행한다는 통념과 소유할 권리라는 개념이다.
도입해야 할 것 | <닥터 스트레인지> 속 차원의 문
메타로 사명을 바꾸기 전 페이스북이라는 사명으로 VR 헤드셋 스타트업이었던 오큘러스를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바꾸지 못한 한 가지라면 ‘앱을 실행한다는 통념’이다. 호라이즌 홈에서 앱을 설치하고 실행하는 것은 사실 모바일과 PC에서 앱에서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퀘스트 2에 이어 최근 출시한 퀘스트 프로의 호라이즌 홈 조차 이 오래된 개념만큼은 바꾸지 못하고 있는 점은 너무 안타까운 부분이다.
사실 가상 현실이 모바일이나 PC와 다른 점은 공간을 기본으로 하는 컴퓨팅이라서다. 이는 퀘스트2나 퀘스트 프로, 그 이전의 리프트, 그 밖의 온갖 VR 헤드셋을 써보면 금세 아는 일이다. VR 헤드셋을 썼을 때 처음 보게 되는 건 PC의 시작 버튼도, 앱 아이콘도 없는 호라이즌 홈 또는 리프트 홈, 또는 3D로 만들어진 공간이고, 기존 컴퓨팅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상의 컴퓨팅 공간에서 장치에 설치한 앱을 기존 모바일이나 PC 방식으로 실행하는 인터페이스를 보는 순간 공간에 있는 느낌이 줄어든다. 비록 앱을 실행하면 또 다른 공간에 있는 기분이 들기는 하나 앱 아이콘과 각종 설정이 쭉 나열된 메뉴 화면이 뜨면 평면의 메뉴에 집중되면서 주변의 공간이 보이지 않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인터페이스는 거리에 따라 크기를 조절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방향으로든 시야를 가린다. 인터페이스의 위치는 바꿀 수 있지만, 중심을 조정하면 인터페이스는 다시 가운데로 돌아온다. 인터페이스 형태도 텅빈 공간에 서 있을 때나 가상으로 설정한 책상 앞에 앉았을 때도 상황에 따른 변화가 전혀 없다. 이 인터페이스를 띄웠을 때 곧바로 앱 서랍이 기본 탭으로 미리 지정되어 있지 않으면 앱을 찾아 실행하는 과정이 길고 지루할 수도 있다.
물론 어느 상황에서도 인터페이스에 변화가 없다는 건 익숙한 환경에서 앱 메뉴를 띄우고 아이콘을 누르는 방식이나 앱을 실행하는 것이라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터페이스를 바꿔야 하는 이유는 실행보다 공간에 더 익숙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주 실행하는 공간 기반 앱이나 업무용 VR 앱은 이러한 인터페이스를 꺼내지 않고 호라이즌 홈에서 접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이를 테면 가상의 포털을 두고 포털 옆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자주 실행된 앱을 선택해 입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업무 공간인 호라이즌 워크룸이나 가상 공간 커뮤니티인 호라이즌 월드처럼 자주 들어가는 공간마저 지금 인터페이스에서 앱 아이콘을 눌러 실행하면 그저 응용 프로그램의 느낌이 강할 수밖에 없고 단계적으로 복잡하다. 이를 공간으로 접근하도록 만들려면 새로운 도달 방법을 둘 필요가 있다. 곧바로 들어갈 수 있는 포털 또는 문을 만드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이용자가 설정할 수 있는 몇 개의 문이나 앞서 자주 실행하는 앱으로 곧바로 가는 포털 같은 요소를 호라이즌 홈에 두고 접근 방식을 바꿔도 앱의 실행이 아니라 공간을 이동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마치 다이얼을 돌리면 창 밖의 세상이 바뀌었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속 뉴욕 생텀에 있는 차원의 문 같은 것이 호라이즌 홈에 있어야 한다.
해야 할 것 | 내 것처럼 지낼 수 있는 가상의 집
오큘러스 시절 PC용 가상 홈인 리프트 홈은 퀘스트용인 호라이즌 홈보다 나은 점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일정한 크기의 공간을 다양한 사물로 꾸밀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았다. 이런저런 사물을 활용해 내 취향대로 공간을 채우면 말 그대로 나만의 ‘홈’을 완성할 수 있다.
재밌는 건 홈을 꾸밀 사물들은 매주 메타(기존 오큘러스)에서 나눠 줬고, 지금도 나눠 주고 있다. 매주마다 디지털 사물이 들어 있는 상자를 주는 데, 이 상자를 잡아서 던지면 3개의 사물이 나타난다. 선물처럼 받고 있는 디지털 사물은 가구나 바닥 깔개, 벽 장식, 그림, 전자 장치, 게임 카트리지, 농구 골대나 농구공, 골프 같은 스포츠 도구 등 매우 다채롭다. 소파나 벽장식물, 커피머신, 각종 동상, 책, 피규어, 게임 패키지도 있다. 심지어 자그마한 요정이 날아다니는 장식도 있다.
이처럼 온갖 디지털 사물로 내 집처럼 꾸민 리프트 홈을 보다가 호라이즌 홈으로 돌아오면 정말 삭막하다. 분명 나만 있는 공간임에도 절대로 내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다. 실제 현실의 책상, 소파 같은 가상의 시설물을 설정하는 것을 빼면 장식은 물론 물리적 공간이 충분치 않으면 이 공간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는 기능이 전혀 없다.
때문에 같은 가상 공간이라도 호라이즌 홈은 내가 꾸밀 수 있는 리프트 홈에 비해 정이 들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호라이즌 홈은 내 것보다 그냥 잠시 들르는 공간에 불과한 느낌이라서다. 물론 여러 가상 홈 환경을 선택할 수 있지만, 어떤 가상 홈이라도 이용자가 바꿀 수 있는 설정, 꾸밀 수 있는 사물이 없는 탓에 호라이즌 홈은 매우 획일적이다. 전혀 내 것 같지 않다.
메타가 언제까지 이런 호라이즌 홈을 유지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지금의 호라이즌 홈은 이용자가 가상 공간에 머물게 하는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호라이즌 홈이 아니라 별장 같은 리프트 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은 이를 경험해 본 이용자라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호라이즌 홈은 가상의 집이다. 비록 가상이라 해도 집에서 얻는 위안을 가상의 집에서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으로 공간을 채우면서 얻는 재미 속에서 받는 위안 같은 것을 말이다. 메타는 퀘스트의 운영체제 버전을 업데이트 할 때마다 더 많은 새로운 가상의 공간을 추가하고 있지만, 정작 가상의 집이 갖춰야 할 핵심엔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퀘스트 시리즈의 호라이즌 홈을 리프트 홈처럼 바꾸는 건 기술적으로 쉽진 않은 일일 것이다. 공간을 바꾸고 사물을 둘 때마다 늘어나는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다. 퀘스트2나 퀘스트 프로의 하드웨어 성능도 고려해야 하는 건 틀린 이야기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기술적 제약을 핑계 삼아 디지털 사물 제공 및 홈을 꾸미는 기능을 미룰 수록 이용자 역시 꾸밀 수 없는 홈에 대해 전혀 미련을 갖지 않게 되는 문제도 커진다. 현실에서 소유할 수 없는 디지털 사물을 통해 가상 세계에서 소유를 경험하고, 이를 가상의 집에서 장식함으로써 자기 만의 디지털 세상을 구축하는 기회를 늘리지 못하면 가상 공간에 접속하는 시간을 유지하는 건 어려워진다. 디지털 사물에 대한 개념을 바꾸지 못하는 한 메타가 메타버스에서 수익을 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호라이즌 홈에 대한 방향성을 정비하는 것이야 말로 메타가 이용자들에게 메타버스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 건 분명하다.
덧붙임 #
이 글은 2022년 12월 15일에 공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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