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레디 플레이어 원>, 오늘의 가상 현실은 어디쯤일까? (1부)

식량 파동과 인터넷 대역 폭동으로 자포자기한 삶을 살아가는 미래의 어느 날, 시궁창 같고 현실에서 탈출을 꿈꾸는 순간 등장한 가상 현실 플랫폼 ‘오아시스’에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데 가상 현실에 관심을 갖고 이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레디 플레이어 원이 먼 미래일까?’라는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너무 현실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기에 그럴 것이다. 물론 이야기는 영화적 상상으로 채워졌지만, 영화 속 가상 현실 기술이나 그 밖의 수많은 장치는 너무 익숙하게 느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레디 플레이어 원>은 오늘날 가상 현실과 관련한 모든 기술과 장치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양념을 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레디 플레이어 원의 과거가 될 지금 이 시점에 가상 현실 수준은 어디까지 왔을까

스키 고글처럼 단순한 VR 헤드셋은 가능할까?

현실과 거의 똑같은 몰입감을 경험하는 가상 현실을 위해선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장치(HMD)가 필요하다. 흔히 가상 현실 헤드셋이라 부르는 이 장치는 소형화된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우리 뇌에서 입체적인 공간처럼 인지하도록 만들어 몰입도를 높이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도 다양한 가상 현실 헤드셋이 등장한다. 주인공을 비롯해 모든 등장 인물들이 가상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VR 헤드셋을 착용한다. 모두 형태는 다르나 영화 속 VR 헤드셋은 대체적으로 공통점이 있다. 헬멧 형태를 제외하면 대부분 휴대하기 쉬울 만큼 작고, 가벼워 보인다는 점이다. 마치 스키 고글처럼 생긴 것을 목에 걸고 다니거나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한다. 더구나 앞쪽을 가리지 않은 반투명 디스플레이를 쓴다. 가상 현실에 접속한 상황에서 실제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을 완전히 차단한 헤드셋은 영화에서는 보기 어렵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헤드셋, 스키 고글처럼 작아 휴대하기 쉽다.(이미지 출처 | 레디 플레이어 원 공식 티저 영상 캡쳐)

영화에서 벗어나 현실을 돌아 보면 매우 콤팩트한 가상 현실 헤드셋은 거의 찾기 어렵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스키 고글 같은 VR 헤드셋은 제조사들과 이용자들이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지만, 아직 구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물론 크기만 따지면 비슷한 제품은 있겠지만, 비슷한 성능에 기능을 가진 제품을 내놓기에는 준비를 더 해야 한다.

보통 가상 현실 헤드셋을 단순한 디스플레이 장치라고 볼지 모르지만, 사실 꽤 복잡한 장치다. 디스플레이와 광학, 센서, 그리고 컴퓨팅 기술을 집대성한 것이 가상 현실 헤드셋이라서다. 어쩌면 스마트폰을 꽂아서 가상 현실을 구현하는 카드 보드 VR을 생각했더라도 그것 역시 스마트폰이라는 장치가 광학을 제외한 디스플레이와 센서, 컴퓨팅 기술을 모두 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 절대로 가볍게 볼 장치는 아니다.

특히 이용자가 앉거나 뛰거나 몸을 숙이는 등 여러 동작을 직간접적으로 실시간 감지해 처리하는 거의 유일한 장치가 가상 현실 헤드셋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도는 더욱 높아진다. 현실의 움직임을 감지해야만 가상 현실의 자유도(Degree of Freedom)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6 자유도 헤드셋인 오큘러스 퀘스트. 이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가상 현실도 똑같이 반응하도록 설계한 헤드셋이다.

가상 현실의 몰입감은 그래픽의 품질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진짜처럼 가상 현실의 공간을 보고 움직이는 것도 매우 크다. 놀이 기구를 탈 때처럼 가만히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상태라면 고개만 좌우로 돌리거나 앞뒤로 숙이는 정도의 움직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앉고 일어서는 것이나 방을 돌아다니는 등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상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려면 착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이를 처리해야 한다. 최근 안구의 움직임에 맞춰 초점을 조절하는 포비티드 렌더링 기술을 제외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자유도를 높이기 위해선 가상 현실 헤드셋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처리에 필요한 부품으로 구성된다.

때문에 당장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가상 현실 헤드셋은 볼 수는 없다. 영화처럼 단순화된 형태로 만들려면 지금의 부품과 기술이 더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소형화된 디스플레이를 확대해 시야를 넓히는 광학 렌즈 구조를 없애야 하고, 공간을 인지하는 외부 센서, 이를 처리하는 컴퓨팅 시스템도 모두 바꿔야 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 커넥트 5에서 선보인 VR 바이저 컨셉.

다만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단순한 헤드셋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 방향으로 가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어서다. 렌즈가 없어도 충분히 시야각을 넓힐 수 있도록 140도의 한계치에 이른 프레넬 렌즈를 대신하는 웨이브가이드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개선하고, 진화된 센서와 컴퓨팅 하드웨어를 분리하는 연구는 이어지는 중이다.

오아시스를 만든 제임스 할러데이를 현실에서 찾는다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현실 이외에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 속 무대가 등장한다. 가상 현실 시뮬레이션 플랫폼인 오아시스를 만든 이는 제임스 할러데이. 불황의 시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수십억의 세계인들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오아시스를 만든 때문에 신적 존재처럼 여겨지는 기술 학자이자 공상가다.

그런데 그 역을 맡은 마크 라일러스와 매우 비슷한 느낌을 가진 이가 실제로 있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오큘러스의 수석 과학자인 마이클 애브라시(Michale Abrash)다. 마이클 애브라시는 윈도 NT 3.1용 그래픽 및 어셈블리 코드를 작업한 이후 이드 소프트(ID Soft)에서 퀘이크를 개발했고, 1980년대 프로그래머의 저널이라는 칼럼니스트를 통해 기술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 그는 오큘러스에서 가상 현실 기술과 관련된 예측과 동향을 이야기하는 이는 기술 작가 겸 수석 과학자로 활동 중인데, 제임스 할러데이 역을 맡은 마크 라일러스와 배경이 비슷하다. 비록 오아시스 같은 게임 플랫폼은 아니지만, 차세대 가상 현실 시장에 필요한 기술 및 하드웨어 플랫폼을 끊임 없이 탐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설명하는 공상가적 기질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제임스 할러데이(마이크 라일러스 분)
오큘러스 랩의 마이클 애브라쉬

 

가상 현실의 본인 확인 시스템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주인공은 영화 시작 초반 오아시스에 접속하기에 앞서 목에 건 장치를 통해 얼굴을 스캔한 뒤 VR 헤드셋을 착용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VR 헤드셋을 쓰는 동시에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것으로 볼 때 얼굴 인식을 통한 로그인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실제 현실에서 사이버 세계의 캐릭터로 전환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장치기도 하다. 어쨌거나 얼굴을 탐색하는 장치인 만큼 헤드셋을 쓴 이후에 더 이상 이 장치를 활용할 수 없을 테지만, 가상 현실의 인증 시스템에 대해 고찰할 여지를 남긴 장면이다.

영화처럼 가상 현실 헤드셋을 쓰기 전 얼굴 스캔으로 본인 확인을 하는 생체 인증 방식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무대가 되는 2047년에는 존재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고려되지 않는 방식이다. 일단 헤드셋 외부에서 얼굴 스캔을 하더라도 수많은 서비스를 접속할 때마다 인증을 위해 헤드셋을 벗는 것은 이용자 경험 측면에서 고려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라서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목에 건 장치로 얼굴을 스캔하는 모습.(이미지 출처 | 레디 플레이어 원 공식 티저 영상 캡쳐)

대신 헤드셋을 쓴 상태에서 이용자의 본인 확인을 위한 방법은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아직 헤드셋을 벗지 않은 상태에서 쓸 수 있는 표준적인 인증 방식이 거의 없어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에 따라서 본인 인증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PC나 모바일에서 썼던 ID와 비밀 번호로 구성된 전통적인 인증 방식은 가상 현실에서도 쓸 수 있다. 헤드셋을 쓴 상태에서 물리 키보드를 볼 수 없으므로 이용자 ID와 비밀 번호는 가상 현실 안에 가상 키보드를 띄워서 입력하는 것이다. 가상 키보드는 헤드셋을 통해 인식하는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컨트롤러를 움직여 자판을 고를 수 있다.

하지만 키보드를 통한 본인 인증은 누르기 어려운 가상 키보드를 입력해야 하는 까닭에 선호된다고 보긴 어렵다. 더구나 가상 현실의 모습을 다른 이와 공유하지 않는다고 해도 응용 프로그램 내에서 민감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데, 아직 다른 인증 시스템을 넣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적용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헤드셋을 착용한 상태에서 다른 인증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현재 여러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는 VR 헤드셋의 상호 작용을 이용한 신원 확인 프로세스다. 사용자의 머리의 움직임이나 3차원 제스처를 통해 이용자를 확인하는 방법 등 여러 유형의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테면 특정 음악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는 빈도와 움직임의 범위가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이용자마다 VR 헤드셋의 센서로 고개를 움직일 때의 데이터를 수집해 패턴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논문과 연구 결과가 조금씩 공개되고 있다. 다만 VR 헤드셋을 벗지 않고 이용자만 알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지만, 신체적 패턴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증명은 좀더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VR 헤드셋 안에서 안구를 추적하는 모습.(이미지 출처 | 오큘러스 커넥트 5 키노트 영상 캡쳐)

이용자 고유의 버릇을 이용한 행동 패턴 외에도 좀더 직접적인 생체 인증 방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눈은 VR 헤드셋을 쓴 상태에서 유일한 생체 인식 부위다. 홍채 인식은 이미 스마트폰을 비롯해 여러 보안 시스템에서 접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된 생체 인증 방식인데, 이를 VR 헤드셋과 접목하는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이다.

다만 홍채 인식을 위해선 헤드셋 안쪽에 홍채를 인식하는 부품을 넣어야 한다. 그런데 홍채만 인식하는 헤드셋은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초점 거리 조절 및 렌더링 성능 향상을 위해 안구를 추적하는 눈 추적 기술이 적용되는 상업용 VR 헤드셋이 등장하면서 향후 홍채 인식을 통해 본인 인증에 대한 가능성이 더 높아서다. 현재 가상 현실 헤드셋에 적용된 안구 추적 역시 외부 빛이 반사된 홍채의 움직임을 따라가지만, 헤드셋 렌즈 둘레에 안구 추적 센서가 들어가는 터라 이를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홍채 같은 생채 정보에 기반한 보안 인증 프로세스가 적용된다면 헤드셋을 벗는 일 없이 가상 현실에서 좀더 간편하게 전자 상거래를 비롯한 더욱 다양한 작업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첫 이스터 에그를 풀고 받은 상금으로 가상 현실의 여러 아이템을 구매한 뒤 그 중 일부 상품을 현실 세계의 주소지로 발송한 것을 볼 때 확실한 본인 인증 시스템 없이 구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2부에서 계속)

덧붙임 #

이 글은 한국 인터넷 진흥원 KISA 리포트 8월 특집호 MOVIE IT에 기고한 글로 잡지 형태의 편집본을 원하는 이들은 KISA 리포트에 접속한 뒤 ‘특별호_영화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만나다‘를 다운로드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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