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레디 플레이어 원>, 오늘의 가상 현실은 어디쯤일까? (2부)

(1부에 이어서)

다양한 상호작용 도구들
가상 현실과 실제 현실의 상호 작용은 VR 경험자에게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고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게 아니다. 가상 현실 안의 움직임과 현실 세계에 있는 신체의 감각이 일치하지 않으면 곧바로 멀미나 어지러움 같은 이상 신호를 내보내게 되는데, 감각의 이상에 따른 병리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가상 현실 무대인 오아시스에 접속한 이들은 현실에서 뛰고 걷는 그대로 가상 세계에서도 현실과 똑같이 뛰고 걷거나 자동차를 타고 달릴 수 있다. 또한 가상 현실에서 전투를 할 때 총을 맞거나 싸우는 동안 아바타의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물론 아바타를 만질 때 전해지는 느낌까지 현실로 전달되기도 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트레드밀. 이와 유사한 제품은 현재 개발 중이다.(이미지 출처 : 워너브라더스 레디 플레이어 원 홈페이지)

이처럼 영화는 가상 현실과 진짜 현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양쪽 세계가 영향을 받는 모습을 그려냈는데, 영화 속 상상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기술과 제품들이 등장했다. 물론 영화만큼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된 것은 아니다. 단지 현실의 움직임을 가상 현실에 반영하고, 가상 현실의 반응을 실제로 느끼기 위한 여러 연구의 결과를 지금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레디 플레이어 원은 자연스럽게 걷거나 뛰는 상호 작용을 위해 발판이 움직이는 트레드밀을 골랐다. 트레드밀은 런닝머신과 비슷하지만 발판이 앞이나 뒤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고 좌우는 물론 대각선으로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렇게 사방으로 움직이는 트레드밀은 영화 상영 전부터 개발 중인데 <레디 플레이어 원>과 아주 유사한 제품을 인피나데크(The Infinadeck)에서 2016년에 선보인 상황이다. 아마도 레디 플레이어 원의 원형을 찾는다면 이 제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레디 플레이어 원 속 트레드밀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인피나데크.

발판이 움직이는 인피나데크와 달리 고정된 발판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트레드밀도 있다. 고정된 스탠드 위에 몸을 고정한 채 특수한 신발을 신고 제자리에서 걸을 수 있도록 만든 버투익스 옴니는 이미 상용화를 한 상태다. 또한 실버코드-VR에서 공개한 트레드밀 시제품은 버투익스와 비슷한 방식이지만, 몸을 고정한 채 평평하고 작은 발판을 미끄러지듯 걷거나 뛸 수 있는 효율성이 돋보인다. 다만 이들은 시제품만 공개했을 뿐 대량 생산에 들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동을 위한 장치와 함께 가상 현실의 느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여러 장비들도 영화처럼 개발되고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선 X1 햅틱 부트 수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몸에 대충 걸치기만 해도 다양한 반응을 전달하는 세련된 형태였다.

현실은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영화의 초기 버전인 햅틱 슈트는 현재 거의 개발이 끝나가고 있다. 테슬라수트(Teslasuit)에서 개발 중인 더 수트라는 햅틱 피드백 수트는 착 달라붙는 재킷과 바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화의 햅틱 수트와 가장 비슷한 제품이다. 테슬라수트는 가상 현실의 상황에 따라 미세한 진동으로 느낌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열 제어 시스템으로 고온 및 저온 감각까지 재현하기도 한다. 때문에 매우 뜨거운 가상 세계에서 들어가면 그 열기를 수트로 전달하고, 겨울 왕국 같은 곳에 들어가면 냉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매우 얇은 햅틱 피드백 수트가 등장한다. 현재 이와 완전 똑같지는 않으나 테슬라수트는 전신에 가상 현실의 충격이나 미세한 느낌을 피부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덥고 추운 환경까지 재현한다.

VR 장갑은 영화에 비해 좀더 연구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지금도 가상 현실에서 손을 인식할 수는 있다. 헤드셋의 외부 카메라나 손을 인식하는 센서를 부착하면 실제 손을 가상 현실에서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상 현실과 제대로 상호 작용하려면 맨 손이 아니라 가상 세계의 상황을 손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해줄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가상 현실에 있는 공을 잡을 때 맨손을 쓰면 공을 잡는 것처럼 손 모양으로 흉내를 낼 수 있어도 공을 만지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하는 탓이다. 이럴 때 VR 장갑을 쓰면 가상 현실의 사물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는데, 아직 영화처럼 평범한 장갑의 모습으로 현실감을 주는 장치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햅틱X에서 개발 중인 햅틱X 글로브는 실제감을 높이는 한편 손가락 끝의 압력까지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페이스북도 일반 장갑 형태의 VR 글로브에 대한 특허를 출원 요청한 상황이어서 앞으로 이와 관련된 더 많은 VR 장갑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인공 지능으로 완성되는 가상 현실의 아바타
사실 영화에 등장한 여러 가상 현실 장치들이나 솔루션은 현실에서 쉽게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VR 헤드셋이나 몰입감을 높이는 상호 작용 장치를 쓰더라도 가상 현실 안에서 그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퍼시벌이나 아르테미스 등 오아시스의 가상 현실의 3D 아바타들은 매우 정교한 그래픽으로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 사람처럼 어색함 없이 말을 하거나 표정을 짓기도 하고 걸음 걸이까지 실제 현실처럼 자연스럽다. 물론 영화니까 자연스러운 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과연 가상 현실 헤드셋만 쓰고도 이렇게 현실처럼 자연스러운 아바타를 만들 수 있는지 분명 고민할 점이다.

현재의 가상 현실 서비스에는 다양한 아바타를 만들 수 있지만, 대부분의 아바타는 사람의 모습을 띨 뿐 현실성은 매우 떨어진다. 신체 부위에 대한 묘사 정도는 되어 있지만, 세밀한 표현은 거의 찾기 어렵다. 더구나 대부분의 아바타는 하체에 대한 정보를 입력받을 수 없으므로 상체만 있는 상태다. 말을 할 때는 입만 ‘벙긋’ 댈 뿐 실제 말에 따른 입 모양은 아니다. 영화만큼 완성도 높은 아바타는 아직 어렵다.

학습된 인공 지능을 통해 말을 하면 그에 따라 입과 얼굴 근육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아바타를 공개한 오큘러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용자의 모습을 외부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실시간으로 아바타에 적용하는 방법을 잘 찾아 나가는 중이다. 특히 오큘러스와 페이스북은 인공 지능으로 더 많은 하드웨어를 추가하지 않고 현실의 움직임을 아바타에 적용할 수 있는 성과를 공유했다.

일단 가상 현실 아바타의 모습은 그래픽 처리를 통해 유사성을 만들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람과 유사한 아바타를 만들어도 말을 할 때 입 모양이 실제와 다르면 역시 어색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페이스북과 오큘러스는 입 모양에 따라 얼굴의 근육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학습한 뒤 이를 가상 현실 아바타에 적용해 실제 같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이다. 다만 눈에 부분의 동작 묘사를 위해선 하드웨어의 도움이 필요하다. 눈을 깜빡이거나 하는 현상은 말을 하는 것과는 다르므로 헤드셋 안쪽의 안구 추적 장치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의 이용자(아래)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는 가상 현실의 아바타(위).

아바타의 대화에서 얼굴 근육의 움직임과 별개로 최소의 장치로 몸 전체의 행동을 묘사하는 것도 인공 지능의 도움을 받고 있다. 단순히 움직임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움직일 때 뼈와 근육, 피부 등 신체 구조의 움직임을 분석한 뒤 이를 실시간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든 것이다. 페이스북은 헤드셋과 컨트롤러 등 기본 하드웨어만 갖고도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가상 현실 아바타에 반영할 수 있는 기술을 지난 F8에서 발표해 기대를 높이고 있다.

누가 오아시스의 주인이 될 것인가?
기술적 측면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과 유사점은 상당부분 찾아낼 수 있는 반면, 오아시스 같은 가상 현실 플랫폼은 아직 없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마인크래프트나 카지노 등은 개별 서비스로 이미 등장한 상태지만, 오아시스처럼 디지털로 구축된 거대한 가상 사회에 가까운 플랫폼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아시스에 가장 가까운 진화를 보이는 곳을 꼽으라면 페이스북이다.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성장한 서비스이나 오큘러스를 인수했을 때 평면적인 소셜 미디어에서 벗어나고픈 의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바일을 통해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나 페이스북은 소셜 미디어보다 사회적 활동이 가능한 진화된 커뮤니티 서비스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다면 당장 돈이 되지 않음에도 가상 현실에 많은 투자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페이스북이 미래의 오아시스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것이지 오아시스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 기회는 가상 현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덧붙임 #

이 글은 한국 인터넷 진흥원 KISA 리포트 8월 특집호 MOVIE IT에 기고한 글로 잡지 형태의 편집본을 원하는 이들은 KISA 리포트에 접속한 뒤 ‘특별호_영화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만나다‘를 다운로드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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