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트3 위해 퀘스트 프로를 완벽하게 희생시킨 메타

여러 소문이 돌기는 했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기습적으로 공개할 줄은 몰랐다. 퀘스트3의 가을 출시는 지난 해부터 예고한 것이지만, 무려 4개월 여나 이른 시점에 제품 외형과 주요 특징, 거기에 가격까지 모두 밝힐 거라는 예상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판매해야 할 제품들이 있기에 메타가 이처럼 무모하게 발표할 것이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던 것이다.

그럼에도 메타가 지금 시점에 퀘스트3를 발표한 것은 두 가지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는 며칠 뒤 애플이 공개한 비전 프로를 견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퀘스트 프로에 대한 현실 인식이다. 전자는 애플 비전 프로 발표에 앞서 몇 달만 기다리면 더 값싼 혼합 현실 헤드셋이 나올 것이라고 예고해 비전 프로에 쏠리는 관심을 조금 돌리려는 의도도 없잖아 보였다. 비전 프로의 발표 이후 반응을 봤을 때 그 의도가 성공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메타 퀘스트2(왼쪽)과 메타 퀘스트3(오른쪽) 크기 비교

문제는 퀘스트3 공개에 따른 퀘스트 프로에 대한 현실 인식이다. 메타의 퀘스트3 공개는 퀘스트 프로를 정말 중요한 제품으로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는 행동이다. 퀘스트3가 퀘스트2의 후속제품으로 등장하므로 퀘스트2는 고민할 대상이 아닐 수 있지만, 퀘스트 프로는 그렇지 않다. 이제 재고를 정리하는 단계에 접어든 퀘스트2와 달리 이제 겨우 출시한 지 7개월 여밖에 지나지 않은 고급 헤드셋인 퀘스트 프로를 감안하면 퀘스트3가 보여줄 것이라는 혼합 현실 성능은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라서다.

물론 메타가 퀘스트3의 주요 제원을 모두 공개한 게 아니라서 아직 섣부른 판단을 할 순 없다. 다만 이전부터 알려진 소문과 비교해 이번 전격 공개를 통해 확실하게 확인된 것 중 한 가지는 퀘스트2가 아니라 퀘스트 프로보다 더 더 나은 혼합 현실 품질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퀘스트 프로 보다 더 나은 혼합 현실 품질이라는 것은 블룸버그의 마크 거먼이 공개 직전 퀘스트3 체험기를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마크 거먼은 퀘스트3의 혼합 현실은 헤드셋 바깥에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볼 수 있을 만큼 매우 선명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퀘스트 프로의 혼합 현실은 외부 스마트폰 화면은 커녕 키보드 자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속된 말로 ‘후졌다’.

메타 퀘스트 프로

퀘스트 프로는 게임보다 업무용 시장에 초점을 맞춘 메타의 첫 고급형 혼합 현실 헤드셋이다. 더 세련된 만듦새를 가졌고, 컨트롤러를 비롯해 충전 패드와 각종 커버 등 여러 구성 요소를 고급화했다. 하지만 외형 및 구성의 고급화에도 불구하고 퀘스트 프로가 출시 이후 지속적인 비판을 받는 이유가 바로 조악한 혼합 현실 품질 탓이다. 혼합 현실 헤드셋이 혼합 현실 품질로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퀘스트 프로는 헤드셋 앞쪽에 있는 두 개의 흑백 카메라로 수신한 스테레오 스코픽 이미지에 하나의 컬러 카메라로 수신한 빛 정보를 조합해 혼합 현실 패스스루 영상을 만들도록 설계됐다. 문제는 컬러 카메라는 400만 화소(2,328×1,748)인데 반해, 두 흑백 카메라의 픽셀은 고작 130만 화소(1,280×1,024)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즉, 색상(빛) 정보를 수신하는 카메라에 비해 정작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흑백 카메라의 품질이 낮다 보니 여기에 색을 입혀도 실제 우리 눈에는 그 어떤 실물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헤드셋 외부 모습만 대략 볼 수 있을 뿐 글자를 또렷하게 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메타 퀘스트3는 듀얼 컬러 카메라와 깊이 센서 등 퀘스트 프로에 없는 부속이 들어갔다.

그런데 퀘스트3의 혼합 현실 품질이 퀘스트 프로를 뛰어 넘는다는 평가를 마크 거먼이 털어 놓은 것이다. 퀘스트3에 2개의 컬러 패스스루 카메라를 탑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실제 혼합 현실 품질이 더 낫다는 평가가 나온 것은 퀘스트 프로의 치명적인 약점을 들춰낸 셈이다. 더구나 마크 주커버그마저 퀘스트3의 혼합 현실이 아주 좋을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퀘스트 프로의 혼합 현실은 더 이상 기대할 만한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못박아 버렸다.

이러한 품질 차이는 결국 핵심 부품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퀘스트 프로에선 단가 상승을 이유로 제외했던 깊이 센서가 퀘스트3에는 포함됐다. 또한 퀘스트 프로의 깊이 센서를 제외한 것은 2개의 스테레오 카메라만으로 공간을 계산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메타는 퀘스트 프로의 스테레오 카메라가 어떻게 공간을 계산하는지 해당 기술에 대해 세세히 설명했지만, 퀘스트3에 깊이 센서를 포함하면서 깊이 센서 제거에 대한 당위성을 스스로 버린 셈이 됐다. 물론 퀘스트3의 깊이 센서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핫 미러를 추가해 문제를 개선한 것이라고 메타에선 설명했지만, 퀘스트 프로 출시 땐 프라이버시 문제로 제거했다는 변명을 들어보지 못했다.

퀘스트3 컨트롤러. 3개의 카메라를 내장한 퀘스트 프로에 비해 훨씬 단촐하지만, 기능적인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최근 알려진 퀘스트3의 새로운 기능은 스마트 가디언이다. 스마트 가디언은 이용자가 장애물이 있는 공간에 미리 보호 경계를 그릴 필요 없이 헤드셋이 주변의 사물을 인지하고, 이용자가 필요에 따라 책상이나 사물에 대한 보호 경계를 만든다. 이 기능은 퀘스트3의 스테레오 카메라와 깊이 센서를 활용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기능이 깊이 센서를 갖추지 못한 퀘스트 프로에 적용될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결국 퀘스트 프로가 지향했던 여러 방향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던 혼합 현실 성능은 고작(?) 73만 원(499달러)에 출시될 퀘스트3에 밀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분명 퀘스트 프로를 발표할 당시 업무 환경에 더 적합한 목적을 갖고 만들었다고는 하나, 핵심 기술은 혼합 현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높은 수준의 혼합 현실을 달성하기 위한 부품과 기술을 갖춘 퀘스트3의 공개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이번 퀘스트3의 이른 공개는 퀘스트 프로에 대한 기대치를 접게 하는 원인이 될만한 사건이다. 첫 출시 때 219만 원에 판매했던 퀘스트 프로가 불과 반년도 되지 않아 145만 원으로 가격을 인하한 것은 기대에 비해 너무나 덜 팔렸기 때문이다. AR 인사이더에 따르면 퀘스트 프로가 출시된 지난 해 4분기 퀘스트 프로 판매량은 고작 2만5천여 대에 불과했다. 가격 인하 이후 판매량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난 2년 동안 2천만대 이상 판매된 퀘스트2와 비교하면 너무 형편 없는 판매량으로 실제 실패작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상황에서 퀘스트 프로보다 더 나은 혼합 현실 품질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퀘스트3의 등장은 퀘스트 프로를 살리는 노력이 아닌 포기를 선택한 것처럼 비치기에 딱 좋은 그림일 수밖에 없다.

퀘스트 3를 쓴 모습을 공개하며 혼합 현실 품질에 자신감을 드러낸 메타 CEO 마크 주커버그. 하지만 그의 행동으로 퀘스트 프로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잃게 됐다.

메타는 퀘스트 프로와 퀘스트3의 지향점을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나 눈 및 표정 추적 센서, 고성능 컨트롤러, 그리고 더 좋은 만듦새라는 장점을 퀘스트 프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장점들이 있다고 해도 혼합 현실 같은 핵심 기능의 품질과 부품, 기술 수준을 낮춰도 되는 이유로 주장할 수 없다. 퀘스트 프로가 퀘스트3에 들어갈 부품과 기술 대부분을 탑재한 상황에서 프로세서 같은 일부 사항만 변경됐다면 퀘스트 프로는 그 나름대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혼합 현실 헤드셋의 핵심 기술이 뒤쳐진 제품임을 일찍 인정한 것만으로 이미 퀘스트 프로를 포기한 행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메타가 퀘스트 프로 후속 제품을 언제 출시할 지 지금은 모르지만, 일단 퀘스트 프로는 좀더 일찍 무덤 속으로 들어가게 될 운명을 맞이할 듯하다. 애플 비전 프로 발표 이후로 메타는 그 대척점의 제품을 퀘스트3에 맞추고 있다. 비전 프로보다 7배나 싼 혼합 현실 헤드셋으로써 퀘스트 3의 경쟁력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 그 이유다. 이미 모든 초점을 퀘스트3에 맞춰 놓은 메타도 퀘스트 프로를 더 낫게 만들 비법은 내놓기 어렵다. 퀘스트 프로는 그 후속 제품이 나올 때까지 그저 조용히 사라질 운명을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을 지도 모른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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