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_초이의 IT 휴게실


글쓴 이 - 칫솔(CHiTSOL, PHILSIK CHOI) | 인사이드 디지털/커넥티드 카 l 2017/06/27 11:4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동 대신 부팅'

모 자동차 광고에서 볼 수 있던 카피지만, 자동차의 달라진 오늘을 말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문구는 찾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차 키를 돌려 '드르릉' 시동을 거는 내연 기관 자동차가 달리고 있음에도 내연 기관이든 전기 자동차가 됐든 안전과 편의를 위한 첨단 전자장비들로 가득 채워진, 이제 디지털 디바이스처럼 변신하는 자동차들의 소식도 쏟아지고 있어서다.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좀더 유연하게 움직이는 커넥티드 카, 운전자의 개입 없이 차가 스스로 목적지까지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는 기계 공학 관점이 아니라 IT 기술의 관점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중이다.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우리 일상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다루듯이, 프로세서를 내장하고 아날로그 대신 디스플레이로 대체된 계기판에 통신망과 연결되어 있으며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하는 자동차는 점점 늘고 있다.

자동차에 다채로운 IT 기술이 접목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나 IT 기술의 침투는 결과적으로 종전 IT 기술 자산을 갖고 있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다. 특히 IT 기술을 접목한 자동차들이 새로운 유형의 컴퓨터로 바뀌면서 컴퓨터 관련 분야의 부품 기업들도 이 시장에 필요한 기술과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웨스턴디지털의 일부분으로 바뀐 샌디스크 같은 저장 장치 업체들도 이 시장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저장 장치 업체들은 단순히 주행 연비를 연산하는 수준의 유닛에서 저장 장치의 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율 주행을 위해 수집된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를 내장한 자율 주행차에서 저장 장치의 비중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는 천문학적인 데이터를 생산하고 저장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러셀 루빈 샌디스크 오토모티브 마케팅 총괄 이사

러셀 루빈 샌디스크 오토모티브 마케팅 총괄 이사가 지난 5월 한국을 찾아 온 것은 이러한 배경에 따라 설계한 자동차용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프레젠테이션에서 흥미로운 점은 샌디스크의 새로운 낸드 플래시보다 자동차의 저장 장치에 관한 부분과 그것이 자동차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바꾸느냐였다.

따지고 보면 오늘 날 자동차들도 저장 장치는 적지 않게 쓰인다. 흔히 블랙박스라 부르는 주행 녹화 장치는 물론 전자식 계기판, 내비게이션 같은 장치에 저장 장치는 적지 않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저장 장치 가운데 자동차를 위해 특별한 기술을 적용한 것이 적은 데다 자율 주행차나 커넥티드 카가 앞으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샌디스크를 비롯한 여러 저장 장치 업체들은 자율 주행이나 커넥티드 카가 앞으로 얼마나 데이터를 소비할 것인지를 예측하려 애썼다. 아우디, BMW 등 여러 자동차 업체들이 2020년부터 자율 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고 밝힌 지금 자동차에서 소비하는 데이터량은 저장 장치 업체에게 앞으로의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정확한 예측은 어렵다. 다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저장 장치 업체들에게 참고할 만한 보고서를 보냈다. 러셀 루빈 이사가 인용한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커넥티드 차량 및 차량군 관리나 교통 관리 센터, 자동화된 배송 시스템 등 도로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만 연간 5제타 바이트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중에서 커넥티드 카 한 대당 하루 동안 평균 72GB의 데이터를 송수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맥킨지는 2030년 커넥티드 카 시장에서 연간 5제타 바이트의 데이터를 무선으로 전송할 것이며 이는 4500억~7000억 달러의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72GB라는 데이터량이 정확한 예측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송수신하는 데이터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그 내용을 전부 파악하기는 어려워도 단순한 센서 데이터로 이 만한 양을 주고 받을 리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안에는 어떤 데이터가 들어갈까? 자율 주행 및 커넥티드 카에 매우 중요한 데이터다. 지금 달리고 있거나 달리게 될 도로 정보나 변경된 정밀 지도, 운영체제 업그레이드, 개선된 인공 지능 알고리즘, 센서 데이터, 주행 기록 등 다양한 형태를 담고 있다.

이처럼 무선 망으로 전송하게 될 차량 데이터는 다양하지만, 차량 운전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것은 아니다. 큰 덩어리는 이미 자동차에 저장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갱신하거나 데이터나 덮어 씌울 프로그램이 섞여 있다. 국가 또는 대륙 전체의 정밀 지도나 자동차를 제어하고 보조 운전 장치를 위한 대용량 운영체제, 자율 주행차를 운전할 인공 지능 같은 응용 프로그램들은 자동차가 출고될 때 설치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자율 주행 및 커넥티드 카는 적지 않은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 샌디스크는 자율 주행 자동차에서 적어도 1TB 안팎의 저장 공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TB라면 요즘 기술로 따지면 그리 큰 용량이 아니다. 테라바이트 이상의 하드디스크는 이미 몇 년 전에 대중화가 끝났고, 지금은 고용량 SSD가 테라바이트 시대로 들어선 상황이다. 테라바이트 용량의 저장 장치가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문제는 자동차라는 환경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진동과 물리적인 충격, 여기에 자동차 내부에서 상승하는 열까지 모두 견디는 저장 장치는 다른 이야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 자동차는 저장 장치가 필요한 다양한 전자 장비가 들어있고, 앞으로 더 많은 쓰임새가 요구될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을 감안해 충격과 열에 강한 저장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자율 주행차처럼 저장된 데이터의 오류가 발생할 때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저장 장치의 신뢰도는 더욱 중요한 요소다. 블랙박스를 위한 메모리 카드처럼 탈착식이 아니라 차량 컴퓨터의 메인보드에 실장되는 저장 장치에 필요한 덕목은 차가 달리는 가혹한 환경에서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느냐다.

러셀 루빈 이사는 자동차 업체들이 요구하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iNAND 7250A 같은 낸드 플래시 제품을 출하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SD 크기 만한 메모리 1개에 최대 64GB까지 저장하는 이 제품은 MLC 기반으로 생산되고, 오류 정정 기능도 갖췄다. 샌디스크가 언제까지 MLC 공급 라인을 이용할지는 모르지만, 러셀 루빈 이사는 3D 낸드가 안정되면 옮길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는다. 일단 용량보다 안정성 측면에서 선택했다는 게 러셀 루빈 이사의 말이다.

무엇보다 샌디스크 iNAND 7250A는 향상된 전원 장애 보호, 고급 진단 도구, 빠른 부팅 같은 자동차에 최적화된 기능을 갖고 있다. PC가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과 달리 자동차는 시동을 걸거나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이에 필요한 기능들이다. 자동차가 시동을 끄거나 운전을 마친 이후 다시 운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도 저장 장치의 역할이다. 동작 온도는 영하 40도에서 영상 105도 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0원 동전보다 작은 샌디스크 iNAND 7520 낸드 플래스. 오른쪽은 마이크로SD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MLC와 TLC라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이 낸드 플래시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러셀 루빈 이사가 언급하지 않는 게 하나 있어서 질문을 했다. 수명에 대한 이야기다. 일반적인 저장 장치들은 하루에 몇 시간을 쓰면 몇 년을 쓸 수 있다는 제품 수명을 말하지만 iNAND 7250A에는 그것이 빠졌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러셀 루빈 이사의 설명이 흥미롭다. 그는 어떤 낸드 플래시라도 한계 수명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자동차 업계에서 요구하는 수명 조건은 충족한다고 답할 뿐이다. 그런데 저장 장치의 용량이 증가함으로써 낸드 플래시의 수명이 좀더 길어지는 것은 일반적인 예지만, 어쨌든 저장 장치는 사용량에 따라 수명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자동차를 오래 탈수록 저장 장치의 사용량이 늘어나는 만큼 그 수명도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하루 1~2시간의 출퇴근용이면 몰라도 잠시도 쉬지 않고 운행하는 자율 주행 택시나 운송 수단들의 저장 장치 수명이 같을 수는 없다.

자동차의 전장부품에 들어가는 저장 장치 수명 문제는 당장 깊이 고민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저장 장치 수명을 한번 쯤 들여다 봐야 하는 데는 앞서 말한 대로 자율 주행이나 운전 보조 시스템처럼 자동차의 안전과 직결된 데이터가 있는 장치라서다. 이 저장 장치를 읽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연구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더구나 반도체 제품들은 생산 주지가 일반 기계 부품보다 짧기 때문에 이전 제품과 호환성을 유지하는 것도 쉬워 보이진 않는다. 러셀 루빈 이사도 차량용 기계 부품이 15년의 제품 수명 주기(제품이나 부품이 출시된 뒤 단종될 때까지 걸리는 시기)를 갖고 있다면 프로세서나 반도체 같은 전자 제품의 특성상 15년의 제품 수명 주기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비록 자동차 개발 주기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짧아진 수명 주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처럼 짧은 기간만 쓰는 것이 아닌 자동차 산업에서 전장 장비의 한계 수명과 수명 주기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당장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은 기술과 제품으로 보완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다만 IT 장치화 된 자동차의 고민은 스마트폰이나 PC에서 생각하는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전기 장비의 수명 한계와 수명 주기. 모두 탑승자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이 문제 안에서 찾아야 할 답이 너무 많다.


Add to Flipboard Magazine.

TRACKBACK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 3 4 5  ... 2436 
가깝지만 다른 디지털을 말한다by 칫솔

카테고리

전체 (2436)
인사이드 디지털 (1727)
블로그 소식 (80)
하드웨어 돋보기 (269)
칫솔질 (257)
기억의 단편들 (10)
앱 돋보기 (46)
기타 관심사 (4)
스타트업(Start-Up) (5)